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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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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음주례를 만나다

등록 2005-09-09 00:00 수정 2020-05-03 04:24

▣ 김학민/ <맛에 끌리고 사람에 취하다> 지은이 hakmin8@hanmail.net

신화에 따르면, 중국에서 최초로 술을 마신 사람은 하나라의 시조 우(禹)임금이다. 그는 해마다 장마철이면 범람해 백성들에게 큰 피해를 주던 황하의 치수에 성공한 공로로 순임금으로부터 제위를 물려받았다. 황하의 범람을 막으려고 일하는 동안 계속 우를 괴롭힌 것은 매서운 북쪽 바람을 동반한 추위였다. 제방을 쌓고 맨땅을 파헤쳐 물길을 바로잡으려는 어마어마한 토목공사에 동원된 백성들은 강추위로 사기가 크게 떨어졌고, 불평불만도 극에 달했다. 이때 우가 의적(儀狄)을 시켜 배도 부르고 몸도 따뜻하게 하여 추위에 견딜 수 있게 만든 음료가 곧 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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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는 의적이 만든 최초의 술을 마시고 온몸이 나른하면서도 날아갈 것 같은 느낌에 크게 감탄했다. 그러나 우는 “훗날 이 때문에 나라를 망치는 자가 나올 것이다”라고 하면서 다시는 술을 입에 대지 않았으니, 신화대로라면 우임금은 최초의 음주자이자 금주자이다. 우의 ‘예언’대로인지, 은나라의 폭군 주(紂)는 ‘술을 부어 연못을 만들고 고기를 걸어 숲을 이루는’ 주지육림에 빠져 정사를 소홀히 하다 나라를 망하게 했다. 은나라를 이어받은 주나라의 주공(周公)은 이러한 술의 폐해를 깊이 인식하고 <주례>에 술 마시는 예의를 적어넣게 했는데, 이것이 후대에 첨삭 정리되어 ‘향음주례’(鄕飮酒禮)가 됐다. 우리나라에는 고려 인조시대에 향음주례를 행했다는 기록이 있고,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세종이 집현전에 명해 우리 실정에 맞게 향음주례를 상세히 정하게 하여 성종 5년에 편찬된 <국조오례의>에 수록하면서 일반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향음주례는 이후 이 땅에서 음주예절의 경전과 같은 것으로 여겨졌으며, 무절제한 음주에서 오는 폐해를 예방하고 올바른 음주예절을 갖도록 하는 사회교육 과정으로 정착했는데, 자료에 따르면 구한말까지 전국 231개 향교에서 매년 이 예가 거행됐다고 한다. <국조오례의>에 기록돼 있는 향음주례의 절차를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① 주인이 손님 집에 찾아가 초청을 하고 허락을 받는다. ② 향음주례 당일 아침 예를 거행함을 알리고 손님을 모신다. ③ 대문 밖에 나가 손님을 맞는다. ④ 손님에게 술과 안주를 대접한다. ⑤ 손님이 주인에게 술을 권한다. ⑥ 주인이 여러 손님에게 술을 권하며 풍악을 연주한다. ⑦ 사회자를 세운다. ⑧ 서로 차례차례 술을 권한다. ⑨ 주인과 사회자가 여러 사람에게 술을 권한다. ⑩ 음식을 모두 거둔다. ⑪ 폐회한다. ⑫ 손님이 아무 말 없이 돌아간다. ⑬ 손님이 다음날 다시 와서 예를 표한다.

오늘날과 같이 변화무쌍하고 복잡다단한 시대에 향음주례의 절차대로 술을 마시기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하늘이 내려준 술과 음식을 함부로 다루지 않고, 즐겁고 흐뭇한 분위기 속에서 즐기기를 권하는 향음주례의 근본정신은 오늘에도 그 빛을 잃지 않으리라 믿는다. 전주시 풍남동에 소재한 ‘전주전통술박물관’(063-287-6305)은 이러한 향음주례를 현대적으로 재구성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곳은 ‘박물관’이라고 되어 있지만, 누룩 만들기, 전통 술 제조과정, 우리 술 강좌, 술익는 마을 탐방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어 ‘전통 술문화 체험관’이라 함이 더 어울릴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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