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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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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작 부리지 말자

등록 2005-07-14 15:00 수정 2020-05-02 19:24

▣ 김학민/ <맛에 끌리고 사람에 취하다> 지은이 hakmin8@hanmail.net

고려조의 문신 윤관(尹瓘)은 여진을 정벌하고 9성을 개척한 사람이다. 윤관은 여진과의 첫 전투에서 패하여 저자세의 강화를 맺고 돌아온 뒤, 그 패인을 정확히 분석, 보병 중심의 고려군에 비해 기병 중심의 여진군이 월등히 우세함을 파악하고, 기병인 신기군과 보병인 신보군, 기타 특수군을 조직했다. 그리하여 1107년 스스로 원수가 되어 정벌에 나서 일거에 여진을 쫓아내고 우리 민족의 영역을 청천강 이북까지 넓혔다.
그러나 고려의 정벌로 삶의 터전을 잃게 된 여진은 항쟁을 계속하는 한편, 9성을 돌려주고 생업을 편안히 해주면 대대로 조공을 바치겠다고 하면서 애걸했다. 고려는 9성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어 지키기가 어려울 뿐 아니라, 무리한 군사 동원으로 백성들의 원망이 일어나서 조정에서도 화평론이 대세를 이루게 되었다. 이에 9성을 여진에 돌려주기로 결정하고 철수했다. 이렇게 정세가 바뀌자 윤관은 패전의 죄를 뒤집어쓰고 관직과 공신호를 박탈당했으니, 민족 영웅에 대한 대접이 매양 이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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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슬에서 물러난 윤관은 여진 정벌의 동지이자 사돈인 오연총과 작은 시내를 두고 살면서 종종 만나 술을 나누며 회포를 풀었다. 어느 날도 두 사람은 제각기 집에서 담근 술을 들고 집을 나왔는데, 마침 소나기로 냇물이 넘쳐 흘러 건널 수가 없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냇가 나무 등걸에 앉아 이편에서 “한잔 드시오” 하고 머리를 숙이면, 저편에서도 한잔 마시고는 “한잔 드시오” 하고 머리를 숙이고 하여 가지고 간 술병이 다 비도록 권커니 작커니 했다는 이야기가 <고려사> 열전에 나온다. 두 사람이 벌인 ‘수작’이 참으로 풍류스럽다.

일본 정치인들이 독도를 자기네 영토라며 망언을 내뱉고 있을 때, 이에 대해 북한은 “일제는 우리 조국의 영토를 넘보려는 개수작을 하지 말라”고 논평했다. ‘수작’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다른 사람의 언행을 업신여겨 일컫는 말’로 풀이한다. 또 ‘개수작’은 ‘이치에 맞지도 않는 말을 마구 지껄이는 언동’으로 풀이되니, 북한의 논평은 정말로 정확한 표현이다. 그렇다면 윤관과 오연총이 어느 비 온 날 오후에 벌였던 수작은? ‘수작’은 한자말 수작(酬酌)이고, 그 뜻은 ‘서로 술잔을 주고받음’으로 풀이된다. 이 풀이가 진화하여 ‘서로 말을 주고받음, 또는 그 말’로 되고, 여기에서 다시 발전하여 ‘개수작’에서와 같은 수작의 뜻을 갖게 된 것이다.

음주문화의 유형은 대개 세 가지다. 첫째, 자작(自酌)은 제 술잔에 술을 마시고 싶은 만큼 따라 마시는 음주문화로, 개인주의가 일찍부터 발달한 서양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음주법이다. 둘째, 대작(對酌)은 중국이나 러시아, 동구제국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음주법으로, 잔을 맞대고 건배를 외치며 마신다. 절대 잔을 돌리지 않는다. 셋째, 수작(酬酌)은 우리나라의 독특한 음주문화다. 서로 술잔을 주고받으며 마시는 것이다. 신숙주의 손자 신용개처럼 술 마실 상대가 없자 국화 화분을 앞에 놓고 수작을 벌였다든가, 앞의 윤관처럼 냇가를 가운데 두고 수작을 했듯이, 수작은 우리 선현들의 멋진 풍류였다. 그러나 요즈음은 그냥 상대가 취해 나가떨어지게 하는 공격법으로 수작이 변질됐으니 술꾼들이여, 그런 수작은 이제 그만 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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