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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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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사랑, 슬픔의 발견

등록 2005-04-20 00:00 수정 2020-05-03 04:24

상류층 여성과 사형수의 ‘변화’를 다룬 공지영의 신작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공지영의 소설은 서점에 나오기가 무섭게 베스트셀러가 된다. 왜일까? 그는 늘 같은 지점에서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울어댄다. 그의 화자들은 상실감에 가득 차 있고, 아파죽겠다고 연방 하소연한다. 심지어 무대를 독일로 옮겨도 마찬가지다(<별들의 들판>). 독자들은 이런 통속적인 눈물에 반응한다. 그런데 이것은 이미 시효가 지나버린 엄살이고 허위다. 하지만 그의 소설들은 동어반복이니 퇴행이니 하는 비난을 쏟아붓기에는 너무 사랑스럽다. 허위도, 한 인간의 인생을 지배하고 있다면 진실이 된다. 그러니까 공지영 소설의 눈물은 공지영의 진실로 봐줘야 한다.

신작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푸른숲 펴냄)에서 화자인 유정은 입버릇처럼 “상투적인 것은 싫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작가에게 돌아오는 질문 같다. 공지영은 이 신작에서 자신의 소설 문법의 상투성을 벗어났을까.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사형제의 문제를 ‘공지영의 방식’으로 다룬다. 유정은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돈만 갖다주면 졸업장을 던져주는 파리의 작은 대학을 나와 아버지가 이사장으로 있는 대학의 교수가 된다. 그는 세 번째 자살을 시도한 뒤 수녀인 고모의 손에 이끌려 윤수라는 이름의 사형수를 만난다.

소설은 다른 계급간의 애틋한 사랑을 다룬다. 그 사랑의 계기는 ‘공감’이다. 유정과 은수는 저마다의 슬픔을 갖고 있다. 유정은 중학생 때 사촌오빠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사촌오빠 집안의 영향력이 필요했던 어머니는 유정의 성폭행 사실에 대해 “계집애가 꼬리치고 다닌다”는 말로 일축한다. 유정은 어머니를 용서할 수 없었고, 그만큼이나 세상을 용서할 수 없었다. 그에게 사랑이나 믿음과 같은 가치들은 너무 ‘상투적인’ 것들이다. 윤수의 아버지는 알코올중독자였고 연방 가혹한 매질을 해댔다. 어머니는 일찌감치 도망을 쳤다. 은수의 동생은 어린 시절 열이 끓어오르는 몸을 돌보지 못해 장님이 된다. 아버지가 농약을 먹고 죽은 뒤, 그들은 고아원과 거리에 방치되고, 끝내 동생을 거리에서 잃는다. 윤수는 유정과 마찬가지로 세상을 용서할 수 없었고, 끝내 공범의 살인죄까지 뒤집어쓴 채 사형을 선고받는다.

유정과 윤수는 창살을 사이에 두고 서로의 슬픔을 발견한다. 그리고 서로를 변화시킨다. “누구에게나 슬픔은 있다. 누구나 자신이 소유한 비극은 있다. 그 비극은 영원히 자신이 소유해야 할 상흔이다.” 공지영은 이 비극적인 사랑에 사형제라는 현실의 문제를 끼워넣는다. 유정과 윤수가 세상을 차츰 용서해갈 때, 용서의 여지가 없는 ‘합법적인 살인’이 찾아온다. 유정은 어머니의 병실에서 눈물을 흘리며 당신을 용서한다고, 그러면 혹시라도 윤수가 살아날지 모른다고 말한다.

이 사랑의 이야기는 단조롭다. 상투적인 것을 싫어하는 유정의 사랑은 상투적이다. 계급을 초월한 사랑은 곧바로 용서와 화해 속으로 비약한다. 유정과 윤수가 겪는 변화의 계기들은 너무 뻔하며, 공지영은 평소답지 않게 너무 성급한 화해를 시도한다. 성급한 화해는 현실을 가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지영의 소설은 의심의 여지없이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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