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 역사에 대한 통찰 <망가·아니메>
▣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망가와 아니메. 한자어 만화와 영어 애니메이션에 대한 이 스시 냄새 나는 발음이 일본 특유의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가리키는 세계적인 고유명사가 됐다는 사실은 일종의 경외심마저 갖게 한다. 두 장르가 전후 일본에서 활짝 꽃핀 과정을 살펴보는 것은, 하위문화가 예술로 등극하는 과정을 밝히는 것뿐 아니라, 일본 사회를 움직이는 동력을 해부하는 일이다. <망가·아니메>(오오쓰카 에이지·사사키바라 고 지음, 최윤희 옮김, 열음사 펴냄)는 바로 그 일을 하고 있다. 지은이들은 80년대에 20대를 보낸 오타쿠(하위문화에 편집증적으로 집착하는 젊은 세대) 1세대로, 출구 없는 소비자본주의의 기습을 받고 자신의 외로움을 만화에 쏟아부은 사람들이다. 따라서 만화의 소비자, 생산자, 비평가의 입장을 두루두루 거친 내공이 엿보인다.
망가를 맡은 오오쓰카 에이지는 전후 만화의 주요 작가들을 ‘기호적인 육체’와 ‘진짜 육체’라는 독특한 관점으로 꿰뚫는다. ‘일본 만화의 신’이라 일컫는 데즈카 오사무는 말년에 자신의 만화 표현을 ‘기호적’이라고 규정한다. 어떤 표정과 행위의 패턴을 조합한 것이라는 뜻이다. 기호적 육체는 실재성을 갖지 못한다. 고층빌딩에서 떨어지면 납작하게 되고 폭탄이 터지면 시꺼멓게 변했다가 금세 원상태로 복귀하는 것이 만화의 몸이다. 그런데 데즈카 오사무의 기호적 육체는 어느 순간, 실재의 몸과 부딪친다. <승리의 날까지>에서 공습을 받아도 멀쩡하던 몸은 마지막 순간에 총을 맞고 피를 흘린다. 이 순간을 지은이는 일본 전후 만화의 비밀을 풀 수 있는 열쇠로 본다.
기호적 육체는 이른바 ‘성장하지 않는 아이’의 문제를 낳는다. 저 유명한 <아톰>에서 아톰은 영원히 어른이 될 수 없는 기호적 육체를 갖고 있다. 아톰은 이 ‘무서운 결점’ 때문에 자신을 만든 텐마 박사에게 버림을 받지만, 마지막 장면에 ‘진짜 육체’를 가질 수 있는 여지를 남겨놓는다. 가지와라 잇키가 만든 <내일의 조>는 ‘아톰의 딜레마’를 되풀이한다. 외로운 복서 조는 라이벌인 리키이시가 죽은 뒤 성장을 거부하고 영원히 밴텀급에 머물려고 한다.
여성 만화에서도 기호적 육체와 살아 있는 육체의 충돌은 되풀이된다. 말풍선 밖의 대사를 통해 ‘내면의 발견’을 이룬 24년조(1948년을 전후해서 태어난 세대)의 여성작가들 중에서 하기오 모토는 <마유코의 일기>에서 성적인 육체를 가진 주인공을 그린다. 인형과 같은 기호적 육체에서 초경이 찾아오는 육체로의 전환은 무척이나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이것은 일본의 60년대에 들불처럼 번져나간 페미니즘의 물결에 힘입은 발견이었다. 이어 1980년대라는 “모든 사물도 브랜드도 한낱 기호에 지나지 않는다고 결론지어버린” 시대에서 오카자키 교코는 고통스럽게 육체성을 찾아나선다.
아니메를 맡은 사사키바라 고는 미야자키 하야오와 다카하타 이사오의 업적을 어린이용 만화영화를 형, 누나 대상의 애니메이션으로 발전시켰다는 데에서 찾으며, 주브나일 작품(성장영화)을 전후 애니메이션의 키워드로 내세운다. 자신보다 강한 사람, 혹은 아버지가 죽음으로써 주인공은 ‘넘을 수 없는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도전하게 된다. <미래소년 코난>이 그랬고, <내일의 조>가 그랬고 도미노 요시유키의 로봇들이 그랬다.
성장이 멈춰버린 아이나 불가능한 성장에 도전하는 아이들. <망가·아니메>는 전후 일본을 보는 날카로운 시선이 담겨 있다. 아버지가 죽어버린 시대, 모든 것이 기호화된 시대에, 삶을 멈출 수 없는 인간들의 고통 같은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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