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과 성의 문제를 진지하게 파고들다…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만화가 현실이란 재료를 다루는 전형적인 방식은 대략 두 가지다. 현실의 인물과 사건들을 비틀고 희화화해서 웃음을 선사하거나, 온갖 음모와 폭력을 과장하여 공포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만화는 판타지의 절대강자다. 그러나 만화의 형식적 자유로움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때도 힘을 발휘한다. 다시 말하면, 리얼리즘 만화도 재미있다.

최근 두 젊은 만화가가 현실을 응시하는 만화책을 각각 펴냈다. (오영진 지음, 길찾기 펴냄)과 (정송희 지음, 새만화책 펴냄)이 그것이다. 이들은 분단과 성의 문제를 진지하게 파고들면서도, 만화적 재미를 잃지 않는다.
오영진씨는 한국전력 도서전력팀 설계사로 일하면서 다양한 작품들을 발표해온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그는 2000년부터 1년6개월 동안 경수로 건설을 위해 함경남도 신포에 파견돼 일한 뒤, 자신의 체험을 만화로 펴냈다. 은 북한의 복잡한 체제와 사상 대신,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그것도 3인칭의 시점으로 북쪽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남쪽 사람’인 지은이가 북쪽 사람들과 오해를 빚는 접점을 찾아내고 인간적 교감의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이 만화는 어떤 사회과학 서적보다 북한을 둘러싼 편견과 오해를 벗겨내는 강력한 힘을 가진다.
만화를 읽다 보면 절로 너털웃음이 터져나온다. 북한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지은이는 연일 좌충우돌이다. 운전 중 북한 노동자의 뒤에서 경적을 울렸다가 “총폭탄이 되겠다”는 말에 기겁하기도 하고, 식당에서 술에 취해 ‘한국식’으로 봉사원에게 지분거리다가도 “여긴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입네다”라는 한마디에 정신이 번쩍 들기도 한다. 이런 충돌의 와중에서 지은이의 눈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교감이 포착되기 시작한다. 남쪽 노동자들을 위해 몰래 감자와 옥수수를 가져다놓은 북한 주민들, 비오는 날 아이를 등에 업고 양손에 짐을 든 아주머니를 의정서 규정 때문에 태워주지 못한 경험 등이 애틋하게 다가온다.
은 우리의 일상을 수술용 메스처럼 예리한 칼로 해부한다. 지은이 정송희씨의 작업은 너무나 교묘하게 은폐돼 있어서 미처 우리가 깨닫기 전에 지나가버리는 관계의 폭력, 억압, 부조리를 폭로한다. 그리고 지은이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들이 그렇게 숨기려던 것, 사실은 별것 아닌 것들이다.”
남녀가 한적한 공원에서 서로를 애무한다. 남자의 손이 가슴에 닿으려는 순간, 여자가 말한다. “가슴은 싫다고 했잖아!” 여자의 기억 속에는 학창시절 여학생들의 가슴에 손을 대던 교사에 대한 끔찍한 기억이 숨어 있다. 그 얘기를 듣고 미안하다고 말하는 남자의 기억 속에는 고3 때 옆집 초등학생을 습관적으로 성추행했던 자신의 괴물 같은 모습이 숨어 있다. 일상이란 그런 것이다. 아버지에게 “이래서 딸자식은…”이란 욕을 듣고 오줌소태에 걸린 여자, 화장실 자판기에서 콘돔을 뽑다 민망한 상황에 처한 남자…. 지은이는 ‘민망한 것들’을 한번 터놓고 얘기해보자고 채근하는 듯하다.
두권의 만화책은 우리 만화에 애정을 갖고 있는 독자들을 흐뭇하게 한다. 90년대부터 쏟아져나온 젊은 만화가들은 이렇게 다양한 길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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