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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을 적으로 아는’ 나라

한국전쟁 통해 국가권력의 남용과 이기심을 폭로한,

신기철의 <국민은 적이 아니다>
등록 2014-05-01 16:54 수정 2020-05-03 04:27

2014년 4월16일, 승객 476명을 태운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했다. 선장은 승객의 안전은 뒤로한 채 제일 먼저 탈출하고 승무원들은 승객에게 대피하라는 안내방송도 하지 않았다. 정부도 대형 참사 앞에서 부실한 재난 시스템을 드러냈다. 6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이승만 대통령은 피란을 떠났으면서도 “의정부를 탈환했으니 서울시민은 안심하라”는 거짓 방송을 하며 서울 피란민의 발길을 막았다. 방송이 나간 다음날 우리 군은 ‘인민군의 남하 저지’라는 명분을 내세워 한강 인도교를 폭파했고, 민간인 80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반세기가 넘는 시간의 간극만 있을 뿐 무능하고 무책임한 국가는 닮아 있다.

“대한민국 제1호 피란민 이승만”

한국전쟁 당시 홀로 울고 있는 아이의 모습.미국 국립문서기록보관청 소장 자료

한국전쟁 당시 홀로 울고 있는 아이의 모습.미국 국립문서기록보관청 소장 자료

한국전쟁이라는 과거의 시간으로 돌아간 는 당시 민간인 학살을 통해 국가권력의 남용과 이기심을 폭로한다. 저자는 2006~2010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조사팀장으로 활동하며 “국가는 왜 국민들을 향해 총부리를 들이댔을까”라는 물음을 안고 베일에 가려져 있던 민간인 학살 사건의 진실에 다가갔다. 그 물음의 답을 이승만과 이승만 정부에서 찾는다. 한국전쟁을 “이승만의 친위 쿠데타”로 규정한 저자는 전쟁을 통한 정권 연장의 묘수가 숨어 있었던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다.

이승만은 전쟁 와중에 인민군 협조자들의 처벌을 위한 ‘비상사태하의 범죄처벌에 관한 특별조치령’(비상조치령)을 공포한다. 이승만 정부가 침략하는 적보다 적에 협력할 것으로 보이는 국민을 더 두려워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하지만 전쟁 전후로 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고 감옥에 가두었던 ‘비상조치령’은 1952년 헌법위원회(헌법재판소의 전신)의 위헌 판결을 받았다. “비상조치령은 국방경비법과 함께 수많은 사람들을 재판이라는 형식으로 학살한 사이비 법률이었다. 1999년까지 무려 40여 년간 감옥에 있었던 장기수 상당수가 한국전쟁 당시 바로 이 국방경비법을 위반했다는 것 때문이었다. 그후 60년이 지나도록 이렇게 법살 당한 피해자들에게 어떠한 후속 조치도 일어나지 않았다.”

저자는 진실화해위에서 과거사 진상 조사를 하며 마주한 국민보도연맹 사건, 부역 혐의자 학살, 거창 양민 학살 사건, 영동 노근리 사건 등 전쟁 중에 일어난 민간인 학살의 전모도 밝힌다. 노근리 양민 학살을 벌인 미국 군부대 전투일지와 활동보고서에 담긴 “전투 지역 내로 들어오는 모든 피란민들은 적으로 간주되어야 한다”라는 기록을 꺼내고 민간인 희생자 수가 군경의 전투 성과로 보고된 사실을 폭로한다.

반성 없는 역사의 되풀이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전국유족회는 민간인 학살로 희생된 이들이 약 1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 60여 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억울하게 죽어간 그들의 명예 회복, 진실 규명, 피해 보상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저자는 아직도 ‘국민을 적으로 아는’ 국가권력의 흔적이 지워지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정부를 비판하는 세력을 종북으로 매도하며 소모적인 이데올로기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사회에는 반목과 증오감이 커지고 있다고. 그렇게 국가는 아직도 잘못된 과거를 되풀이하며 반성 없는 역사에 미래는 없다는 경고를 외면하고 있다.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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