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빼앗은 권리를 법이 되찾았다. 법이 이만치 존재의 맡은 바를 다한 적이 있을까.
“해직교사 9명을 탈퇴시키지 않을 경우 노조가 아님을 통보하겠다.” 지난해 9월23일 고용노동부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에 보내온 경고다. 1999년 합법화 이후 14년, 전교조가 맞은 최대 위기였다. 6만여 명의 전교조 조합원들은 쉬 물러나지 않았다. 해고 조합원들은 사학 비리에 맞서다, 교육 개혁에 앞장서다 거리로 내몰린 교사들이었다. 조합원 86.4%가 투표에 참여하고 그 가운데 67.9%가 정부의 압력을 거부하는 데 뜻을 모았다. 경고를 보내온 지 한 달 만인 지난해 10월24일 고용노동부는 통지서 한 장으로 전교조에 ‘노조 아님’을 선언했다.
해고자 배제, 국제 기준에도 맞지 않아
박근혜 정부만큼 노골적이진 않았지만 전교조의 조합 지위를 박탈하려는 위협은 이명박 정부에서도 여러 차례 있었다. 이명박 정부는 2010년, 2012년 2차례 전교조에 해고자 조합원 규약 개정을 명령한 바 있다. 전교조의 법적 지위를 규정한 교원노조법이 현실과 맞지 않았다. 교원노조법 제2조는 해고된 교원의 경우 “중앙노동위원회의 재심 판정이 있을 때까지 교원으로 본다”고 밝힌다. 정부는 이를 근거로 중앙노동위원회의 재심에서도 구제를 받지 못한 해직교사들은 교원노조의 조합원 자격이 없다고 본 것이다.
정부의 법외노조화 움직임에 맞서 싸우고 있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사무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해고자를 조합에서 배제하는 것은 한국 정부가 아끼는 ‘글로벌 스탠더드’와도 맞지 않는다. 현직 교원이 아닌 사람의 교원노조 가입을 법으로 금지하는 곳은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프랑스·독일·일본·영국·미국 등에서는 해고자에게도 조합원 자격을 주고 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10차례 넘게 한국 정부에 “조합원의 자격 요건에 행정 당국이 개입해서는 안 된다”며 관련 법 개정을 권고하기도 했다.
한국 정부의 ‘스탠더드’와 국제사회의 ‘스탠더드’ 가 엇갈릴 때, 법의 무게중심도 뒤뚱거렸다. 1심 법원은 정부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재판장 반정우)는 지난 6월 전교조가 노동부를 상대로 낸 법외노조 통보 처분 취소소송에서 “전교조가 설립 신고 당시 이미 규약이 노조법에 위배됐는데 거짓 규약을 제출해 설립 신고를 했다. 교사는 일반 근로자와 달리 특히 윤리적·중립적·전문적이어야 하고, 교육권을 가진 학생에게 근로를 제공하는 점에 비춰 더 특별한 규율을 할 수 있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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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는 노동자이기 이전에 교사’라는 정부와 법원의 시각은 지난 11월 항소심에서 뒤집혔다. 서울고법 행정7부(재판장 민중기)는 ‘교사도 노동자’라는 데 방점을 찍었다.
재판부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교원들에게 노동3권 가운데 하나인 단결권은 헌법상 보장된 권리이고, 그 단결권에는 노조의 형태나 조합원의 범위를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포함돼 있다. 두 기본권(단결권·교육권)이 상충하더라도 양립·조화를 모색해야 하며, 노조의 단체행동권도 아닌 단결권 행사에 의해 학생들의 학습권 등 공익이 침해될 여지가 거의 없다.” 재판부는 교원노조가 다른 산별·지역별·기업별 노조에 견줘 합리적 이유 없이 차별받아선 안 된다고 판단하고, 법외노조 통보 처분의 근거가 된 교원노조법 제2조에 대해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 심판을 제청했다.
이유 없이 차별받아서는 안 될 ‘교원노조’‘법 밖의 노조’로 내몰렸던 전교조는 법원의 판결로 다시 ‘법 안의 노조’로 돌아왔다. 지난 12월3~5일 선거를 치른 전교조는 새 집행부와 함께 정부의 법외노조화 전략에 맞선다. 아이러니하게도 내년 1월부터 2년간 전교조를 이끌게 될 변성호 위원장도 한때 해직교사였다. 지난 12월8일 당선 기자회견에 나선 변 위원장은 “정부의 전교조 법외노조화 저지를 위해 교원노조법 등 관련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 공무원 노조,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연대해 노동3권을 쟁취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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