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났으나 끝나지 않았다. 의료가 돈벌이 영역으로 활짝 열리는 날에야 끝날 일인지도 모른다. ‘올해의 좋은 판결’을 뒤집으려는 시대의 흐름은 집요하고 끈질기다.
헌법재판소가 일단 ‘한 번 더’ 문지기 역할을 했다. 지난 4월 국내 모든 의료기관이 국민건강보험 가입 환자를 의무적으로 진료토록 한 ‘건강보험 당연지정제’(국민건강보험법 제42조 1항)를 합헌이라고 확인했다. 대한의사협회가 주도한 위헌소송은 의사 2명의 이름으로 2012년 제기됐다. 청구인들은 해당 조항이 의료기관 개설자에겐 직업 수행의 자유와 평등권을, 의료소비자에겐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사유재산인 의료시설의 수익이 제한되고, 낮은 수준의 요양급여비용을 받을 수밖에 없으며, 의료기관 시설 차이와 관계없이 동일하게 취급된다고 했다. 쉽게 말해 자유롭게 돈 벌 권리를 법이 가로막고 있다는 뜻이다.
돈 벌 권리보다 중요한 국민 건강권
2년 만에 헌재는 재판관 전원 일치로 기각했다. “(당연지정제는) 의료보장 체계의 기능 확보 및 국민의 의료보험 수급권 보장이라는 정당한 입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적정한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지난 6월24일 서울역 광장에서 ‘의료민영화 저지’ 대형 펼침막을 들고 총파업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한겨레 김태형 기자
위헌 결정이 났다면 ㅅ(72·여)씨는 악몽보다 더한 현실에서 절룩이고 있을 것이다. 의료기관은 건강보험 적용을 거부할 수 있다. 진료비도 건보 체계에 구애받지 않고 정할 수 있다. 환자들은 자신을 거부하지 않는 병원을 찾아다녀야 한다. ㅅ씨는 골다공증 환자다. 관절에 물이 차고 다리가 휘어 절면서 청소 일을 나간다. 차상위계층인 그는 병원에서 가끔 물을 빼고 물리치료를 받으며 푸석해진 뼈를 견디고 있다. 칼슘이 필요하다며 병원이 섭취를 권하는 우유도 한 달 수입 80여만원을 쪼개고 아껴야 사먹을 수 있다. 당연지정제가 폐지되면 전 국민이 보험료를 내고 전 국민이 동등한 혜택을 받는 국민건강보험제도는 무너지고 만다.
“그나마 건강보험 때문에 병원을 다녀요. 건강보험마저 안 통하면 이 다리를 끌고 어느 병원을 찾아다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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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 무력화 움직임은 헌재 결정에도 포기를 모른다. 의사와 의료사업자의 집요한 ‘헌법소원 투쟁’은 최소 12년을 훌쩍 넘는다. 벌써 두 번째 합헌 결정이다.
2002년 1차 결정이 있었다. 헌재는 “의료보험의 시행이 인간의 존엄성 실현과 인간다운 생활의 보장을 위하여 헌법상 부여된 국가의 사회보장 의무의 일환”이라며 합헌을 분명히 했다. 2008년엔 ‘헌재도 (2002년 결정 당시) 민간의료기관에 대한 당연지정제 강제 적용의 비효율성을 인정하고 있다’며 의협이 논란 재점화를 시도하자 헌재가 반박에 나서기도 했다. 이명박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당연지정제 대안 모색” 움직임도 분위기를 띄웠다.
지난 6월 의사들은 세 번째 헌법소원을 냈다. 전 의협 이사가 주도하고 11명의 의사가 나섰다. 두 달 전 결정을 고려해 전략도 수정했다. ‘당연지정제 폐지가 아닌 제도에 따른 의료기관의 손실 보상’에 초점을 맞췄다.
이번엔 ‘병원 손실 보상’ 해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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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의 의료민영화 및 영리병원 도입 방침이 휘발유가 되고 있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병원의 존재는 건강보험 당연지정제와 양립하기 어렵다. 낙하산(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이사) 논란 속에 임명된 성상철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은 병원협회장 출신으로 영리병원 도입을 주장해왔다. 의료를 성장 정체의 출구로 여기는 한 건강보험 체계를 흔드는 위협도 끝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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