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아래 네 사람의 범죄 혐의를 살펴보고 실형을 선고받아 복역 중인 경우와 집행유예형을 선고받아 풀려난 경우를 골라보시오(참고로 이들은 모두 촛불집회 참가자들이며, 일반교통방해, 공무집행방해, 야간 옥외집회 참가 등에 대해 공통적으로 유죄가 인정됐음).
① 박○○(49·남). 농민. “ 폐간” 등 구호를 외치다 다른 시위 참가자 3~4명과 함께 계열인 코리아나호텔 직원을 폭행해 전치 2주 상해를 입힘.
② 백○○(29·남). 시민단체활동가. 밧줄로 묶인 전경버스를 흔들고, 박만 한국방송 이사의 차량을 막고 청원경찰을 폭행해 전치 3주 상해를 입힘.
③ 유○○(24·남). 대학생. 전·의경들이 앉아 있는 전경버스 안으로 소화기를 분사하고, 두 차례에 걸쳐 망치를 이용해 전경버스 유리창을 파손함.
④ 김○○(48·남). 퀵서비스 배달원. 코리아나호텔에 쓰레기를 쏟고 ‘조중동 OUT’ 스티커를 부착함. 경찰에 검거되자 시위대의 도움을 받아 도망갔다 재검거됨.
답: 실형이 선고된 경우는 ③번과 ④번, 집행유예가 선고된 경우는 ①번과 ②번. ①번 박씨의 형량은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과 벌금 30만원. ②번 백씨의 형량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과 보호관찰, 벌금 30만원. ③번 유씨의 형량은 징역 10월에 벌금 30만원. ④번 김씨의 형량은 징역 1년에 벌금 30만원.
제103조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
지금 이 기사를 읽고 있는 독자분은 정답을 맞혔는가? 만약 그렇다면 신기에 가까운 능력을 가졌다고 할 수 있겠다. 똑같은 성격의 집회에 참여했는데, 주변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폭력을 휘두른 이들은 집행유예를 선고받아 풀려나는 반면, 기물을 파손하거나 영업을 방해하다 도주한 이는 실형을 선고받아 감옥에 갇혔다는 것은 일반인의 상식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사실 이는 ‘상식’뿐만 아니라, 형사범에 대한 일반적인 형사처벌 수준과도 다소 배치된다. 법원에서도 다른 조건들이 비슷하다면, 기물을 파손한 행위보다는 사람에게 상해를 입힌 행위에 더 엄한 책임을 묻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이례적이고 공평하지 않은 듯한 결과가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판사들은 보통 “재판부별로 독립돼 판단하기 때문”이라는 답을 내놓는다. ①번 박씨를 재판한 이는 서울중앙지법 박재영 판사이고, ②번 백씨를 재판한 이는 서울남부지법 박병삼 판사, ③번 유씨와 ④번 김씨를 재판한 이는 서울중앙지법 조한창 부장판사이다. 여기에 덧붙여 “양형을 정하는 데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하기에, 범죄 사실만 두고 사안을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는 설명도 따라붙는다. 조직 차원에서 일괄적인 기준을 만들고 그에 따라 업무를 처리하는 검찰과 달리, 법원은 각각 독립된 재판부별로 유죄로 인정되는 범죄 사실과 피고인의 태도나 반성 여부, 배상이나 피해 변제 노력 여부와 정도, 피해자의 선처 요청 여부, 재범 가능성 등을 두루 감안해 어떤 형을 선고할지 결정한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들은 일면 일리가 있다. 우리나라 헌법에서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제103조)고 밝히고 있다. 재판을 진행하는 기준으로 헌법과 법률이라는 객관적인 요소과 함께, 양심이라는 이름으로 판사 개개인의 주관적 재량권을 인정해주는 것이다. 이 때문에 같은 사안을 두고 재판부마다 서로 다른 판결을 내리기도 하는 만큼, 서로 다른 피고인들에 대해 서로 다른 재판부가 제각각의 형량을 내놓는 것은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일이 된다.
검찰, 경찰과 과잉수사 경쟁하는 듯하지만 피고인의 처지에서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비슷한 죄를 지었는데 어떤 판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자유의 몸이 되는지 감옥에 갇히는지 결정된다면, 이를 공정한 재판으로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이같은 양형 편차는 사법부의 고질적인 문제로 국민 사이에서 사법 불신을 불러일으키는 주된 이유로 지목돼왔다. 몇몇 지방법원에서 구속영장 발부 기준을 만들어 판사들이 이를 활용하도록 하는 것도, 또 대법원이 양형위원회를 꾸리고 최근 양형 기준의 기본틀을 마련해 내놓은 것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다.
이런 맥락을 종합해보자면, 앞서 예로 든 네 사람 가운데 뒤의 두 사람은 아무래도 억울함이 클 수밖에 없다. 상대적으로 앞의 두 사람에게는 온건한 판결이 내려졌고 뒤의 두 사람에게는 강경한 판결이 선고된 모양새지만, 일반적인 형사범 처벌 수위에 비춰보면 뒤의 두 사건 판결이 이례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③번 유씨의 경우는 아직 학생이고, 전과도 없고, 학과장을 포함한 교수 전원 등 2천명가량이 탄원서까지 냈음에도 실형이 선고돼, 주변을 놀라게 했다. 경찰관을 폭행한 경우도 정도가 심하지 않으면 집행유예가 선고된 사례가 여럿인데, 경찰관이 타는 버스에 망치를 휘두른 혐의로 징역을 살라는 것은 형평성을 잃은 조처란 것이다. 또 그 배경엔 촛불집회에 관한 판사 개인의 시각이나 가치관이 자리잡고 있지 않겠냐는 해석까지 나왔다.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의 한 변호사는 “촛불과 관련해 한 재판부만 유독 양형이 세니 변호사들 사이에서 ‘그 재판부에 사건이 배당되면 실형 선고를 예상하고 있어야 한다’는 말까지 돌더라”며 “특별히 전문 지식이 요구되는 분야도 아니고 일반 형사재판에서 이렇게 들쑥날쑥한 결과가 나오다니, 재판이 ‘복불복 게임’도 아니고 너무 희화화된 것 같다”고 말했다.
촛불집회 참가자를 둘러싼 법원의 판결이나 결정에 대한 아쉬움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촛불집회는 국가가 협상을 잘못 진행한 결과 건강권을 지키기 위한 국민의 정당한 행위”라는 변호인의 주장에 대해 “경찰의 해산 명령에 불응… 차량 통행 방해… 경찰 방어판 강제적 손괴”(조한창 부장판사)라며 위법성 조각 사유를 인정하지 않고 피고인의 유죄를 인정했으며, 조·중·동 광고 게재 거부운동을 하던 누리꾼들의 구속영장과 시민단체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잇따라 발부하기도 했다. 문화방송 〈PD수첩〉 재판과 한국방송 정연주 전 사장 해임 과정에서도 법원은 비슷한 태도를 유지했다. 이용훈 대법원장이 나서 검찰과의 충돌을 불사하며 엄격한 영장 발부를 강조하고, 일선 판사들 또한 영장을 잇따라 기각시키며 “피고인의 인권”을 강조하던 2년 전 모습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모습들이다.
물론 촛불집회 참가자들과 관련한 전반적인 형사사법 처리 절차를 놓고 보자면, 법원으로서는 이런 비판에 억울해할 대목들도 많다. 촛불집회를 증오에 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듯한 검찰이나 경찰에서 이뤄지는 ‘이례적으로 강경한 조처’들은 일일이 예를 들기 어려울 정도로 많기 때문이다. 경찰은 촛불집회에 참여한 ‘유모차 엄마’들과 예비군 수사에 박차를 가하더니 개별적인 혐의가 명확하지도 않은 촛불자동차연합 회원 25명의 자동차면허를 일괄 취소했다. 경찰의 과잉 수사를 제어해야 할 검찰 또한 누리꾼들을 상대로 엄포를 놓고 강경한 수사를 주도해 경찰과 과잉수사 경쟁이라도 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에 반해 법원은 그나마 오세철 연세대 명예교수 등 사회주의노동자연합 사건에서 영장을 기각하는 등 검경의 무리한 공안 드라이브에 최소한의 제동을 거는 모습을 보인 것이 사실이다. 또 ‘현행범을 체포한 뒤 48시간 내에 석방하거나 영장을 청구해야 한다’는 조문을 악용해 촛불집회 연행자들을 대부분 48시간 가까이 구금한 경찰의 관행에 서울중앙지법 장용범 판사가 법정에서 따끔한 일침을 놓은 것도 그런 사례 가운데 하나다.
종합해보면 최근 촛불집회와 관련해 인권과 민주주의, 공권력 남용 문제 등에서 법원은 ‘민주주의의 보루’로서 제 역할을 다하지는 못했지만, 최소한의 구실은 했다고 볼 수 있다. 우려와 기대가 교차하는 지점에 서 있는 셈이다.
그나마 역할도 얼마나 유지할지그렇다면 앞으로 법원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까? 하태훈 고려대 교수(법학)는 ‘비판적 지지’와 ‘비관론’을 함께 얘기한다. “요즘 수사나 영장 관련 보도들을 보면, 검찰이 청구하면 법원은 웬만하면 발부해주던 ‘자판기 영장’ 시절로 되돌아간 느낌이 든다. 하지만 경찰이 무리하게 수사에 나서고 이를 통제해야 할 검찰마저 똑같이 나서는 상황에서, 그나마 기댈 곳은 사법부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이 대법원에 찾아가 보란 듯이 ‘사법 포퓰리즘’ 얘기를 하고, 판사 출신 여당 국회의원이 법원장에게 ‘후배 판사들 밥이나 사주라’고 하는 마당에, 그나마 법원의 역할도 얼마나 유지해나갈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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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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