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환자 대상 ‘희망중재 프로그램’ 참여로 밝아진 말기 암환자 신명숙씨
▣ 대구=글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인권 OTL-30개의 시선 ⑤]
“엄마보다 먼저 죽기는 싫어요. 왜 내가 이런 병에 걸린 건지…. ”
2006년 3월, 유방암 3기말 진단을 받은 신명숙(49)씨는 처음 만난 엄명숙 대구 수성구 보건소 간호사를 붙잡고 눈물을 흘렸다. 신씨는 당시 ‘죽는다’는 두려움,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닥쳤는지’에 대한 분노로 꽉 차 있었다. 벽을 치면서 울기도 여러번이었다. 맏딸로서 어머니에게 효도한 적이 없다며 벌써 죽으면 어떡하냐고 한탄을 풀어놓는 그의 목소리는 항상 풀이 죽어있었다. 간혹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으로 불안해하기도 했다. 남명숙 간호사는 그런 그에게 “견딜 수 있다”고 힘을 주고 ‘희망중재프로그램’에 따라 대화를 시도했다.
호스피스 전문 간호사 둔 보건소의 효과
그 뒤 2년. 5월2일 만난 신씨는 눈물 대신 웃음을 보이며 기자를 맞았다. 남편과 이혼한 뒤 버스운전·대리운전 등을 주로 하며 거친 생활을 해온 신씨는 본래의 밝고 적극적인 성격과 유머감각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암이라는 거, 사형선고 같지만 생각해보면 누구나 다 죽잖아요. 내가 꼭 죽는다는 게 아니라…. 저는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거예요.” 교과서에 나오는 말만 골라하다가, 예전 버릇대로 욕도 툭툭 뱉어내면서 거침없이 농담도 했다.
현재 상태도 좋은 것은 아니다. 간과 폐 등에 다발성 물혹이 생기고 있다. 등 쪽에도 포도송이처럼 혹들이 생겨 암인지 계속해서 검사를 받고 있는 중이다. 등쪽에 통증이 계속 있다. “통증을 10이라고 하면 3~4정도의 통증은 항상 있어요. 밤이 되면 온 몸에 땀이 나고 아파서 잠을 못 잘 때도 많아요. 그럴 때면, 아무 생각도 안 나고 머리 속이 하예지지만, 아침이 되면 ‘나는 이겨낼 수 있다’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프로그램은 10주짜리로 주마다 주제를 정하고 환자와 대화한다. 첫 주에는 환자의 솔직한 심경과 희망을 묻고, 셋째 주에 목표를 설정하고, 희망을 갖기 위한 방법도 제시한다. 5주째에는 좋아하는 사람과 원한이 있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관계를 정리하고, 6주째에는 ‘삶이 24시간만 남는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죽음을 준비할 수 있는 단서를 마련한다.
일반 보건소에서는 말기 암환자를 전문적으로 도와주는 호스피스 과정을 이수한 간호사가 드물다. 하지만 수성구 보건소는 계약직이긴 하지만 1년짜리 호스피스 양성과정을 이수한 간호사를 따로 뽑아 이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계명대와 함께 진행하는 이 프로그램을 거친 환자는 거치지 않은 환자에 비해 ‘미래에 대한 기대’와 ‘삶에 대한 긍정도’가 훨씬 높아졌다. 프로그램 진행 뒤 미국에서 개발된 희망 지표를 통해 희망지수를 측정한 결과, 프로그램을 거친 환자는 희망에 대한 기대가 14점 높아진 데 비해, 거치지 않은 환자는 2점 높아진 데 그쳤다. 특별히 환자와 대화하는 노력이 없을 때는 보건소의 ‘돌봄 서비스’를 받아도 삶에 대한 인식이나 자세의 변화는 거의 없는 셈이다.
신씨 역시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나와 공감대를 형성하고, 나에게 희망을 주려는 간호사의 노력에 감사했고, 그것자체가 다시 나에게 삶에 대한 의지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해가 뜨는 희망적인 사진 선물도 좋았다”고 덧붙였다.
두려움과 무력감을 씻는 ‘마음 조절’
물론 개인적인 어려움은 여전히 많다. 아직 이혼한 남편에 대한 분노를 완전히 지우지 못했고, 경제적인 어려움도 크다. 얼마 전 혼자 대리운전을 하다가 결국 일주일을 드러눕기도 했다. “늘 밖에서 움직이던 사람이었는데, 집에만 있으려니 너무 무력하고 답답하다. 내 정신은 이렇게 멀쩡한데, 내 나이도 이렇게 젊은데,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에 우울하다.” 신씨는 “그래도 그럴 때면, 간호사가 알려준 대로 ‘아 좋다, 아 좋다’를 여러 번 외친다”고 말했다. ‘일기쓰기’도 즐긴다. 화도 우울도 있는 그대로 써버리고 나면, 우울이 씻겨 내려가는 느낌이다. 계속되는 통증,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일할 수 없다는 무력감을 신씨는 ‘대화’와 ‘마음 조절’로 지워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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