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팔불출과 성령 충만 부흥회

마블링이 제대로인 경기도 광명 ‘신농한우’
등록 2012-03-03 04:49 수정 2020-05-02 19:26

와잎아~.
오늘도 한(열)잔 야무지게 걸치고 떡이 된 채 주무시는 너님을 보며 편지를 쓴다. 근데 애랑 좀 떨어져 자지 그러니? 님의 술냄새에 애 취하겠다. 그래서인가, 녀석이 오늘따라 곤히 잠들었구나. 자는 순간까지 아들의 숙면을 책임지는 너님은 천생 엄마구나. 아들녀석을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이 장면을 보여주면 좋으련마는. 암튼 남다른(!) 모성애로 충만한 그 방을 들어갈 엄두가 안 나는 못난 아비는 그저 소파에서 잘밖에.

그동안 우리 참 많이도 마셨지. 연애할 때, 할 일 없어서 마시고, 누구 있어서 마시고, 싸워서 열받아 마시고, 좋아서 기뻐서 마시고, 결혼해선 영화 보며 마시고, 집들이해서 마시고, 맛난 안주 했다고 마시고, 목이 마르다고 마셨지. 그래, 우린 노상 마셨어. 자기는 그 돈 다 모았으면 아파트를 샀을 거라고 말하지만, 빈말인 거 다 알아.

만약 누구 하나 술을 싫어했다면, 우린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 갑자기 술꾼 아버지가 피눈물 나게 고맙네. 물론 내가 술을 못 마셨어도 우린 여기까지 왔을 거야. 결국 우린 서로 (술을) 사랑하게 되(지 않으면 제정신이 아니)었을 테니까. 천생연분을 만나게 해준 이번 생이 너무 감사해서 다음 생에는 안 태어나라고. 다음 생에는 축생의 이름을 빌려서라도 태어나지 말아야지. 사람이 너무 욕심을 부리면 안 되잖아.

천생연분아, 오늘 아주 잘~했어. 울 엄마 모시고 시외로 드라이브를 가자는 내 의견에 연로한 시어머니 신경 쓰실까봐 메뉴까지 직접 선정해주는 세심함을 보여주시고, 시어머니 앞에서도 전혀 위축되지 않고 맥주를 마셔대는 자기를 보며, 자기는 정말 시어머니를 친엄마처럼 대하는구나 놀랐지 뭐야. 운전하는 남편을 위해 술도 대신 마셔주는 이런 와잎이 세상천지에 어디 있을까. 아주 잘한다는 말이 연방 터져나와 나도 모르게 팔불출이 되었지 뭐야. 교회 권사님이신 울 엄마도 적잖이 감동받으신 눈치셨어. 자기 손을 붙잡고 기도를 하셨잖아. 말 잘 듣는 착한 며느리는 술 마시다 말고 시어머니와 같이 기도를 올리고, 아들 녀석은 기도 끝날 즈음에 “아멘”으로 추임새를 넣고 아주 부흥회가 따로 없더라. 성령 충만한 복된 시간이었어.

자기가 발견한 ‘신농한우’, 거기 맛 괜찮더라. 자기도 괜찮았지? 가격 대비 고기 등급이 좋더라고. 마블링이 제대로더군. 고기 잘 안 드시는 엄마도 기도 뒤 잘 드시더라. 엄마와 나, 자기와 아들 녀석, 두 모자 커플의 고기 대항전이었지. 모두 자기 덕분이야. 약간 취기가 오른 자기가 울 엄마의 팔짱을 끼며 “어머니~ 시댁에 가서 한잔 더 해도 돼요?”라고 물을 땐 너무나 사랑스러운 나머지 짜증이 날 정도였어. 시어머니를 자기처럼 대하면 고부 갈등은 없을 거야. 고부 갈등 대신, 이 땅의 시어머니들은 더 열심히 교회나 절에 다니시겠지.

엄마가 자기 몰래 한 말씀 하시더라. 자기한테 잘해주라고. 그 말씀 들으니 정말 잘~해주고 싶더라. (술을) 사랑하는 와잎아, 난 정말 결혼생활이 너무 좋아~. 그래서 한 번 더 하고 싶은 내 맘 알지? 2012년 2월19일 와잎의 남편 X가. 문의 02-899-7077.

xreporter21@gmail.com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