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새벽(윤아)이가 호세(박재정)의 아버지에게 예쁨을 받기 시작했다. 호세 어머니는 아직 둘의 결혼을 반대하지만 머지않아 새벽의 진심을 깨닫고 마음을 돌릴 것이다. 한국방송 을 포함해 모든 일일 드라마의 운명은 그런 법이다. 가난은 기본에 오갈 데마저 없는 신세는 옵션인 어린 아가씨가 재력은 기본에 전문직과 빵빵한 배경까지 갖춘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무수한 반대와 방해를 넘어 마침내 결혼에 이른다. 이 과정에서 여자는 남자의 어머니에게 “근본도 없는 계집애”라며 따귀를 맞고, 남자의 정략결혼 상대에게는 물세례를 받으며, 남자의 부모는 마침내 여자에게 돈봉투를 내밀며 헤어질 것을 종용한다. 두 남녀에게 허락되는 짧은 행복의 순간이 있다면 역시 여자가 살고 있는 옥탑방 마당의 빨간 플라스틱 빨래통에 들어가 함께 이불을 밟는 거다. 그게 든, 이든, 든 마찬가지다.
하지만 중학생 시절 읽던 할리퀸 로맨스를 언젠가부터 손에서 놓게 되었듯, 등장인물만 바뀐 채 자기복제를 거듭하는 일일 드라마 역시 점점 시청자에게 외면당하는 길을 걷고 있다. 그리고 뒷이야기를 기대하는 대신 ‘예언’하는 시청자를 앞질러가 시선을 붙들어놓기 위해 제작진에게 필요한 것은 간단한 발상의 전환이다.
이를테면, 일일 드라마에 동성애 커플이 등장한다면 어떨까. 새벽이 사장의 아들과 사랑에 빠지는 고아 소년이라면, 혹은 호세가 전 애인의 각막을 이식받은 소녀를 사랑하게 되는 커리어우먼이라면? 일단 시작부터 만만치 않다. 이들은 서로의 감정을 고백하기 전 상대가 게이 혹은 레즈비언인지 아닌지를 먼저 탐색할 것이고, 연애를 시작한 뒤에는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만날 수밖에 없고, 부모에게 애인을 소개하며 커밍아웃을 해야 한다. 그러면서 부딪힐 수많은 난관과 벌어질 해프닝은 ‘사장님 아들 실장님’과 ‘고졸 말단 여직원’의 연애와는 비할 바도 아니게 드라마틱할 것이다.
물론 동성애 커플이 주인공이 아닌 주변인으로 등장해도 상관없다. 이성애자로 살면서도 동성애자인 친구나 동성애 커플과 알고 지내는 경우가 우연치 않게 종종 생겼던 나로서는 오로지 100% 이성애자들로만 구성되고 이성애 커플의 연애사만 펼쳐지는 드라마 속 세상이 오히려 부자연스럽고 어색해 보일 때가 많다. 이나 처럼 남장 여자를 소재로 한 유사 퀴어 드라마는 인기를 끌어도, 동성애자의 존재를 그대로 인정하고 드러낸 드라마는 수년 전 홍석천이 게이 캐릭터를 맡아 출연했던 (2003) 이후 거의 대가 끊긴 채라는 것도 아쉽다.
그래서 나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이 펼쳐지는 일일 드라마에서 평범한 동성애 커플의 일상과 연애가 함께 그려지기를 여전히 소망한다. 커밍아웃은 쇼에서 보여주어야 할 이벤트가 아니라 누군가의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맞이하는 하나의 전환점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드라마가 등장하고 남녀노소 시청자가 그것을 본다면 그 효과는 어떤 구호나 강연, 혹은 법안보다도 클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최지은 〈매거진t〉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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