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심·삼양식품·오뚜기·한국야쿠르트 등 4개 라면업체가 일제히 라면가격을 담합해 올린 것으로 밝혀진 지난 3월22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이 라면을 고르고 있다.<한겨레> 신소영
부글부글. 쓸 때마다 느끼지만, 칼럼 제목 좋아요. 그주에 독자의 분노를 부글부글 끓게 만드는 사람을 ‘조져보자’는 우아한 취지를 갖고 있어요. 취재 안 하고 써도 별로 티 안 나는 몇 안 되는 칼럼 중 하나예요. 독편위원들 ‘날로 먹냐’고 오해 마세요. 사실 힘들어요. 한살 한살 나이 먹는 섬 아저씨에게 특히 어려워요. 성격 착해서 힘드냐고요? 에이~.
‘신문의 꽃’이라는 1면의 민간인 사찰 기사를 보고도 무덤덤한 건 저만 그런 거 아니죠? 애초 민간인 사찰 수사를 지휘한 서울중앙지검 지휘부가 청와대 수사를 막았대요. 이런 한 달 동안 아침마다 화장실 갈 때마다 피의자신문조서로 밑 닦게 시킬 사법고시 합격생들을 보았나, 글쎄! 괜히 혼자 목소리 높이며 자가발전해봐요. 분노는 끓지 않고 냉소만 번져요. 원래 그래왔던 분들인데. 미국 대법관 올리버 웬들 홈스가 “법은 천재의 영역이 아니라 인간의 영역”이라고 말한 게 벌써 수십 년 전인데. 사법고시에 합격할 지능과 범죄에 대한 분노와 인간에 대한 연민은 별개인데. 검찰 브리핑을 들으면 뭔가 취재되는 것 같지만, 검찰이 브리핑하지 않는 사건은 정보공개 청구 외에 언론도 검찰을 취재할 방법이 딱히 없는 검-언 취재 시스템도 그대로인데. 분노 패스.
3면은 온통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의 여론 조작 소식이에요. 아, 근데 분노 말고 피식 웃음 나와요. 기자가 되기 전 분당 이전의 민주노동당에 당비를 낸 적 있어요. 그때도 ‘그분’들 그랬어요. ‘그분’이 누구냐고요? 북핵을 자위권이라 하시고, 북한에 민노당 정보를 준 해당행위자를 처벌하자고 했더니 국가보안법 찬성하는 사람이라고 비판하던 분들이지요. 그분들 원래 민주주의 같은 거 잘 몰라요.
광고
4면 보며 혼잣말했어요. 이럴 줄 알았어요. 조배숙 민주통합당 의원이 경선에서 떨어지고 무소속 출마한데요. 임께서도 여성 가산점 혜택 보고선, 경쟁자가 그 가산점 덕에 경선에서 승리하자 불복한데요. 그런데도 분노보다 측은지심 생겨요. 이렇게라도 기사에 나오고 싶으신 거잖아요. 유부남인 섬 아저씨 요새 투명인간 취급받아요. (그전엔?) 남의 일 같잖아요.
양육수당과 육아휴직이 말뿐인 현실, 가슴 아파…오지 않아요. 섬 아저씨 무자식 상팔자예요. 6면 기획 기사를 보아도 분노 같은 거 없어요. 역시 무자식이 상팔자란 자부심만 끓어요.
아아, 그래서 결국 이 소시민 가슴을 치는 건 건너건너 17면 라면값 짬짜미 기사예요. 머리 좋으신 경제학과 출신도 검사와 다를 바 없어요. 담합 같은 심각한 기업비리는 공정위든 시민이든 검찰에 고발할 권리가 있어야 하는데, 공정위만 전속고발권 있어요. 공정위가 고발 안 하면 끝이에요. 포스트모더니즘이란 거 제 생각에 철학이랑, 사회학 책 속에만 있어요. 한국, 대체로 전근대사회예요.
‘세상만사 다 그렇지’라는 생각의 빈도가 하루하루 늘어요. 분노는 줄고 냉소는 자라요. 그러니까 이 칼럼 날로 먹는 게 아니라니까요. 섬 아저씨 눈을 감고 지금까지 밥값 5천원 아끼려고 해장국 사먹는 대신 집에서 주섬주섬 라면 끓이던 기억 떠올리자, 겨우, 간신히, 한 줌의 분노가 올라와요. 이런 아침마다 화장실에서 라면 봉지로 밑 닦게 시킬 녀석들, 이라고 자가발전도 한번 해봐요. 오늘 섬 아저씨 가슴에 그나마 성냥불 크기의 불 지른 건 농심 신춘호 회장님(사진).
광고
이제 복수할 차례. 농심 주식 몇 주 사세요. 내년 주총 날짜 확인하세요. 찾아가세요. 라면수프, 물에 불린 라면을 적절히 드레스 코드로 사용하세요. 더 조언하면 총회꾼 선동(업무방해)에 해당하니 패스(아아, 섬 아저씨는 협심증이라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광고
한겨레21 인기기사
광고
한겨레 인기기사
전원일치 여부 몇 초면 알 수 있다…윤 탄핵 심판 선고 ‘관전법’
이것은 ‘윤석열 파면 예고편’…헌재 최근 선고 3종 엿보기
건대입구 한복판서 20대 남녀 10여명 새벽 패싸움
김수현 모델 뷰티 브랜드 “해지 결정”…뚜레쥬르는 재계약 않기로
윤석열 탄핵 선고 ‘목’ 아니면 ‘금’ 가능성…헌재, 17일에도 평의
전세계 인기 ‘폭싹 속았수다’…애순·관식의 유채꽃밭에서 무슨 일이…
권성동 “헌재 결정 승복이 당 공식 입장…여야 공동 메시지 가능”
집회 나온 충암고 이사장 “대한민국 유린한 윤석열, 내버려둘 건가”
민감국가 지정, 보수 권력 핵무장론·계엄이 부른 ‘외교 대참사’
윤석열 복귀 땐 ‘2차 계엄’ ‘공소 취소’ ‘셀프 사면’ 뭐든지 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