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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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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자장면 계란의 행방

등록 2008-09-10 11:19 수정 2020-05-03 04:25
왜 이렇게 세상이 각박해진 걸까요. 오늘은 혼자 자장면을 먹다가 문득 계란이 그립네요. 냉면 위에도 계란이 있고, 쫄면 위에도 계란이 있는데, 왜 자장면 위에는 계란이 없을까요. 예전에는 분명히 있었던 것 같은데 언제 사라진 거죠?(ㅋㅋ이씨)

답: 확실히 예전에는 자장면 위에 계란이 있기도 했답니다. 7080 과자 이름과 가격에 정통한 ㄱ기자는 자장면에서 계란이 사라진 건 “분명하지는 않지만, 1990년대 초반인 것 같다. 중학교 졸업식 때는 계란을 먹었는데 고등학교 졸업식 때는 못 먹은 것 같다”고 증언합니다. 서울시 개봉동에서의 일입니다. 비슷한 시기인 1991년 기자는 경남의 아파트 상가 자장면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주방에서 나온 자장면에 아르바이트생이 고명을 직접 올리는 체계였습니다. 그 반점에서는 삶은 완두콩과 오이채를 올렸습니다. 이 조합은 1~2년 사이 옥수수와 오이채 조합으로 바뀌었습니다. 계란을 올린 것은 간자장이었습니다. 계란 프라이였습니다.

결론은 ‘자장면 계란’이 지방과 서울의 차이가 크다는 사실입니다. 지방에서 자장면을 먹은 ㄱ기자와 ㅂ편집장은 “계란을 본 적이 없다”, ㄱ기자와 거의 동시대인 서울 출신 ㅇ기자는 90년대 초반까지 “계란이 올려져 있었다. 내가 계란을 먹지 않아 다른 사람들이 서로 먹으려고 다투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린 시절의 반쪽짜리 계란은 초등학생 시절 4분의 1쪽으로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물론 같은 서울에서도 지역차는 큽니다. 한겨레 매거진 〈ESC〉 고나무 기자는 34년 경력의 백남선 중국집 주방장의 말을 인용해 계란이 사라진 것이 1980년대 초반이라고 추적보도한 바 있습니다. 계란이 사라진 이유로 백남선 주방장은 생활 수준의 변화를 들었습니다. “80년대 초 먹거리 수준이 높아지면서 삶은 달걀을 올려줘도 먹지 않는 손님들이 늘어 결국 자취를 감췄다.”

지역차보다 더 큰 것은 주방장의 차이입니다. 서울 공덕동 신성각의 이문길 사장은 1981년 개업 초반 잠깐 계란을 올렸다고 합니다. “고명은 맛에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소스와 면에 승부를 걸자”라는 생각에서 과감하게 계란을 비롯한 고명을 제외했다고 합니다. 중식당 루이의 여경옥 셰프는 1978년 영등포 번화가의 ‘소복정’에서 설거지와 배달을 하던 초짜 시절 간자장에 올려진 계란을 보았지만 1980년대 고급 중식당으로 옮긴 뒤로는 자장, 볶음밥을 불문하고 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라디오 프로그램 게시판에서는 2001년 말 ‘자장면 계란’에 대한 논쟁이 불타올랐고 그 결과로 다음에 카페 ‘고스 통합 자장면 계란 회복 국민운동’(http://cafe.daum.net/jajangghost)을 꾸리기도 했습니다. 이곳에서 ‘계란 올린 자장면집’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띄엄띄엄 올라온 포스팅에 따르면, 2004년에도 계란 올린 자장면이 목격되었습니다. 참고로 군대에서 나오는 자장면에는 계란이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잠깐, ‘짜장면’이 자장면으로 바뀌면서 계란이 사라졌다는 설도 있습니다. ‘짜장면’이 ‘짜지’ 않게 되면서 계란이 필요 없게 된 거라는 말씀입니다. 쫄면이 졸면이 되어 맵지 않게 되면 계란이 사라지는 것도 가능한 일이겠지요.(구둘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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