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요새는 전문성을 쌓을 수 있는 부서나 팀이 상종가를 친다. 정치팀 기자는 여간해서 전문성을 인정받기 쉽지 않다. 그러저러한 정치팀 기자는 아무나 할 수 있다. 당장 정치의 계절이 돌아오면 관심 있는 국민 모두가 전문가가 된다. 누구는 이렇고, 어떤 당은 저렇고, 이렇게 하면 되는데 그 쉬운 걸 왜 못하는지 몰라…. 선술집에 전문가들이 넘쳐난다. 또 인터넷은 어떤가. 누가 언제 어디서 누구와 만나 어떤 말을 했다 식의 ‘소재’는 도처에 깔려 있다. 이를 분석하고 전망하는, 오늘 당장 모셔다가 기사를 쓰라고 해도 충분할 ‘내공’ 높은 논객들이 한둘이 아니다. 정치팀 기자의 희소가치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전공’을 바꿔보고자 했던 이유다.
개인적으로 이 판을 뜨고자 했던 또 다른 이유가 있다. 2001년부터 4년 가까이 주로 국회와 정당을 취재하면서 별 일을 다 겪었다. 2002년 노무현 대통령이 후보가 된 민주당 경선을 시작으로 본선까지 온 나라를 몇 바퀴 돌았다. 그리고 2004년 선거법 위반 논란과 탄핵 정국, 그리고 이어진 총선까지. 한국 현대사를 통틀어보면 그보다 더한 일이 셀 수도 없이 많았고 앞으로도 그런 일이 없으리란 보장이 없지만, 관심과 흥미가 시들해졌다. 너무 강한 빛에 노출되자 다른 빛이 빛으로 보이지 않았다. 안면 장사가 절반 이상인 정치판에서 별로 새로울 것 없는 새 사람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어가야 하는 것도 고통스러웠다. 그런데 ‘강호’를 떠난 지 2년 만에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정치팀이 선배 스타일이야~”라는 후배의 격려 아닌 격려에 떼밀려.
그래서 나의 첫 뒷담화는 그 시절 얘기를 풀어쓸 수밖에 없다. 노 대통령의 탄핵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던 날이다. 그날 본회의장에 있었다. 회의장이 내려다보이는, 극장의 특별석같은 기자석에서 조금은 여유 있게 사태를 지켜봤다. 한나라당이 표결 처리 시도만 하고 “사실상 가결된 것으로 본다. 이제 한나라당과 국민들은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며 노 대통령에 대해 ‘정치적 사망선고’를 하고 총선 국면으로 넘어가겠지 하고 예상했다. 그런데 그 사단이 벌어진 것이다. 수를 잘못 읽었다.
현장의 생동감은 생중계의 수십 배는 된다. 잠시 멍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몇몇 기자들도 눈시울이 벌게졌다.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들려나간 뒤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투표가 진행됐다. 정상적이라면 기표소에서 기표를 한 뒤 바로 옆 투표함에 넣었을 텐데, 그날 투표함은 기자석 바로 아래 있었다. 탈취를 막기 위해 통로에 두고 주로 한나라당 의원들이 이를 둘러싸고 지켰다. 4~5m 높이 아래여서 투표함 위로 뛰어내리면 약간 다치고 의원들 발에 밟히고 어떤 죄목으로 감옥에 갈 수 있겠지. 몇 시간 뒤 거리로 촛불을 들고 나와 ‘이건 아니다’라고 외쳤던 이들의 심정과 꼭 같은 크기로 투표를 방해 혹은 무산시키고 싶었다.
그랬다면 참 많이 바뀌지 않았을까. 두 갈래의 길을 두고 고민하다 이쪽저쪽 삶을 모두 비춰주는 오락 프로그램처럼 여러 공상에 빠져든다. 본회의장에서 의원들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 “이만섭 기자, 조용히 하세요”라는 문구를 속기록에 남긴 이만섭 전 국회의장처럼, ‘역사’에 이름 석 자 남겼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 야심한 시각에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고통은 없었을지 모른다. 이젠 그저 이름 내걸고 쓰는 기사가 부끄럽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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