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의 실체를 채 알 수 없을 때, 이게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모를 때 우리 눈은 반짝 빛나곤 한다. 연암 박지원이 중국 북경 천주당에서 본 성모 마리아상. 그는 이렇게 묘사했다. “그림에는 한 여자가 무릎에 5∼6세 된 어린애를 앉혀두었는데, 어린애가 병든 얼굴로 흘겨서 보니, 그 여자는 고개를 돌리고 차마 바로 보지 못하는가 하면 옆에는 시중꾼 5∼6명이 병든 아이를 굽어보고 있는데, 참혹해서 머리를 돌리고 있는 자도 있었다.”(고미숙, )
고종의 어진화가로 알려진 석지 채용신(1850~1941)도 성모 마리아상을 알고 있었다. 그가 그린 안경 쓴 선비나 복장을 잘 갖춰입은 왕의 초상화 가운데 가장 미스터리하게 느껴지는 그림이 하나 있다. (1914). 어린 시절 ‘운낭자’라 불렸던 최연홍(1785~1846)을 담아낸 전신 입상이다. 그가 그린 (1932)이나 (1925) 속 여인들이 당시 등장한 사진기법의 영향으로 어딘가 귀기 어린 세밀함으로 박제돼 있다면 그림 속 운낭자는 호기롭고 의연하다. 여인이 안고 있는 벌거숭이 아이의 얄개 표정을 보자. 아이의 존재는 야릇한 감정 상태를 표현하는 신조어 ‘므흣’하다는 말로도 충분치 않는 새로운 도상이다.
운낭자를 그린 이유는 채용신이 콕 집어낸 ‘스물일곱’이라는 나이에 있다. 관가에 소속된 기생이던 최연홍은 홍경래의 난(순조 11년) 당시 평안도 가산 군수의 소실이었고, 불에 타는 집을 뚫고 들어가 군수의 아우를 구해냈다. 스물일곱의 연홍은 기생에서 ‘구국의 열녀’로 은유됐고, 이는 1812년 1월에 기록됐다. 화가 채용신은 이 여인을 실제 보지는 못했으나 대신 자신이 보았던 이상적인 여인상을 그림에 투영했다.
사당에 모셔질 목적으로 제작된 은 채용신의 붓질에 의해 열녀도인 동시에 미인도로 그려졌다. 중국을 통해 유입된 서구의 ‘성모자상’에 영향받은 화가는 젖가슴을 드러낸 한복 입은 여인에게 아기 한 명을 안겨주었다. 아가는 아직 채용신의 시대에 채 강림하지 않은 아기 예수를 닮았다. 그림 속 아이가 들고 있는 둥근 물체는 아기 예수가 손에 들고 있던 잘 익은 사과 한 알을 흉내낸 것일까. 이 그림은 서양 화법의 영향으로 인한 ‘미감의 혼돈과 절충’으로 의심받기도 하지만 열녀와 마돈나(성모 마리아)를 동시에 알았던 채용신의 눈은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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