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도 보지 못한 걸 그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직접 두 눈으로 혹은 실눈을 떠서라도 본 적이 있는 대상과 그렇지 않은 대상에 대해 말할 때의 상태는 천지 차이다. 거장의 반열에 오른 독일 출신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1471~1528)라면 어떨까. 터럭 하나도 놓치지 않았던 정교한 손놀림으로 무엇이든 복구 가능할까. 뒤러도 이런 고민에서 자유로웠던 것은 아니다.
꼿꼿한 자신감이 화면 전체에서 스멀스멀 기어나오는 뒤러의 이 누가 뭐래도 ‘내가 가장 잘나가’ 정신의 표상이라면, 그가 그린 는 ‘내가 가장 잘 아는’ 백과사전식 그림으로 보인다. 1515년의 뒤러는 갈색 잉크로 밑그림을 그렸고 목판화로 를 새겨놓았다. 토끼 귀를 닮은 쫑긋한 귀가 이상하긴 한데 뭉뚝한 발과 피부 질감까지 실제 코뿔소의 모습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는 세밀한 묘사다. 뒤러가 그린 코뿔소는 인도 항로를 따라 인도에서 포르투갈로 스무 달 만에 건너온, 왕을 위한 진귀한 선물이었다.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에 산 채로 도착한 코뿔소는 존재만으로도 환상 섞인 풍문이 됐고, 유럽인들에겐 생전 처음 보는 신기한 스타로 격상됐다.
뒤러는 코뿔소 그림 곁에 ‘색깔은 얼룩 반점으로 뒤덮인 바다거북과 같다’는 문장을 남겼지만 사실 한 번도 실제로 코뿔소를 본 적이 없었다. 풍문으로 그렸는데, 진실처럼 전하는 이 확신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뒤러에 관해 책을 쓴 디터 잘츠게버는 당시 뒤러가 이런 동물이 세상에 있다는 데 깜짝 놀랐다고 한다. 잘츠게버가 말하길, “뒤러는 귀동냥으로 주워들은 신빙성 없는 이야기를 무시하고 상상력에 기대 새로운 괴물을 지어내기로 작정했다”. 뒤러는 코뿔소를 상상하는 그 순간만큼은 그가 그린 코뿔소가 실제 살아 있으며 자신이 분명 목격했다고 믿었던 것 같다. 이 코뿔소 판화는 아주 많이 팔렸다.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 ‘대성당’에도 실제 대성당을 보지 못한 시각장애인에게 대성당의 모습을 설명하는 한 남자가 나온다. 텔레비전에서 대성당 이야기가 흘러나오자 대성당은 어떻게 생겼느냐고 묻는 시각장애인. 남자는 시각장애인에게 대성당의 형태를 어떻게 전했을까. 그건 설명도 아니고 설득도 아니었다. 시각장애인이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대로 따라가보는 것. 둘이 펜을 같이 잡고 대성당을 함께 그리던 소설 속의 순간은 내가 실제 보지는 못했지만 알고 있는, 가장 멋진 그림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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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9일 한겨레 그림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