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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가치, 노동의 가치

감옥에서 보낸 편지 ②
등록 2012-06-19 20:04 수정 2020-05-03 04:26

감옥에 들어오던 날, 같이 호송된 사람들 대부분이 벌금을 못 내서 수감된 벌금수였다. 듣자 하니, 하루 수감에 5만원씩 벌금을 깎아준다고 한다. 예를 들어 200만원 벌금형의 경우, 도중에 벌금 잔액을 납부하지 않는다면 꼬박 40일을 갇혀 있어야 하는 것이다. 벌금 낼 돈이 없어 자유를 잃어야 하는 처지도 우울할 텐데, 자유를 잃은 대가는 고작 하루 5만원이다. 물론 징역수인 내겐 그런 대가도 없으니 어쩌면 부러워해야 할 일이겠지만, 하루 5만원이라니 아무래도 자유의 가치가 너무 싸다 싶다.

노동을 값싸게 취급하는 사회

하지만 감옥 밖에서 벌 수 있는 돈을 생각해보니 또 하루 5만원이 그리 적지 않은 것도 같다. 2012년 한국에서 법정 최저임금은 시급으로 4580원. 8시간을 일하면 3만6640원, 10시간을 일해도 4만5800원을 벌 뿐이다. 하루 5만원을 버는 건 중산층이라고도 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최저임금 수준의 돈을 버는 사람들 처지에서 보면 상대적으로 높은 소득이다. 실제로 구치소 직원 중엔 반농담으로 ‘일당 5만원짜리 일자리를 찾기 힘들다. 그냥 감옥 안에서 벌금을 없애는 게 이득이다’ 같은 조언을 해주는 사람도 있었다.

최저임금은 사회에서 노동에 대해 적어도 이만큼의 임금은 줘야 한다고 최저선을 정해둔 것이다. 각종 사회보장제도나 보상 등에서 기준이 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적잖은 영향을 끼치고, 특히 최저임금이 곧 임금이 되는 미조직·비정규·미숙련 노동자들에게는 생활을 결정짓는 숫자다. 어찌 보면 최저임금은 여타의 능력이나 지식, 기술 등에 무관하게 순전히 인간의 노동에 대해 사회가 인정하는 가치라고도 할 수 있다.

내가 최저임금 관련 운동에 처음 기웃거리기 시작한 것은 2007년 무렵이었다. 청소년 노동자들 중 다수가 최저임금을 받으며 일하고, 때론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임금을 받기 때문에 청소년 노동권의 주요 이슈로 청소년인권활동가들은 최저임금 문제에 관심을 가져왔다. 몇 차례 참여한 최저임금 인상 요구 시위에는 청소노동자 등 최저임금을 받는 많은 서비스직·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 청소년들도 노조를 만들어 조직적으로 참여하는 날을 꿈꾸며 피켓을 들고 함께했다.

올해의 최저임금은, 앞서 말했다시피 시급 4580원이다. 2007년의 3480원에 비해 많이 오른 것 같지만, 사람이 사람답게 살 만한 최저생계를 보장하기에는 여전히 많이 부족하다. 2010년에는 물가상승률보다 낮은 인상률로 사실상 삭감을 당하기도 했다. 경제·사회의 구조적 양극화에 따라 중소기업이나 영세 자영업자들은 최저임금도 주기 어렵다며 하소연하고, 미조직·비정규·미숙련, 여성·청소년·이주민 노동자와 같은 사회적 약자들에게는 한층 큰 고통이 전가되는 모양새다. 사실 한국과 경제력이 비슷한 다른 나라들에 비교해보면 물가를 고려해도 한국의 최저임금은 낮은 수준이다. 우리 사회가 인간의 노동을 얼마나 값싸게 취급하는지 가늠하게 해준다.

그리고 인간의 가치

자유와 노동, 인간이 삶을 꾸려가는 데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자유의 가치와 노동의 가치는 곧 인간의 가치, 인간의 존엄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것이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내년도 최저임금을 결정할 시기가 다가온다. 만약 노동의 가치가 충분히 인상되면 자유의 가치도 일당 5만원보다는 좀더 올라가게 될까? 아니면 애초에 노동과 자유에 화폐로 가격을 매기는 것 자체가 잘못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지금 우리 사회에선 자유도 노동도, 그리고 인간도 너무 싸구려 취급을 당한다는 인상은 그리 틀리지 않을 듯하다.

공현 청소년인권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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