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23일, 얼마 전 한국대중음악상 특별상을 받기도 한 콜트·콜텍의 기타 만드는 노동자들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있었다. 5년 만의 판결이었다. 그런데 이날 기막히고도 심각한 일이 대법원 재판정에서 일어났다. 동일 사건에 대한 대법원 1부와 2부의 판결이 판이했던 것이다. 두 공장 모두 고법에서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가 없는’ 부당해고로 판정이 났기에 이변이 있을 리 없었다. 그래서 오전 10시에 있은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의 콜트악기 판결은 당연한 것이었다.
‘장래 위기’로 해고 대상 넓힌 대법원
그런데 오후 2시에 열린 대법원 1부(주심 안대희)는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아니함으로써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고 콜텍악기 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파기환송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파기환송의 사유다. 대법원 1부가 근거로 삼은 것은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라 함은 반드시 기업의 도산을 회피하기 위한 경우에 한정되지 아니하고, 장래에 올 수도 있는 위기에 미리 대처하기 위하여 인원 삭감이 객관적으로 보아 합리성이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도 포함된다’(대법원 2002년 7월9일 선고 2001다 29542)는 과거 판례였다. 이는 그간 십수 년간 수백만 명의 국민을 정리해고로 내몰았던 법적 요건인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라는 모호한 해석조차 훨씬 뛰어넘어 ‘장래에 올 수도 있는 위기’까지로 정리해고 대상을 넓히는 엄청난 내용이다. 헌법에 보장된 안정되게 근로할 자유를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위헌적 판결에 다름 아니다. 사회의 1%도 안 되는 자본가들의 ‘장래에 올 수도 있는 위기’를 이유로 99% 노동자 시민들의 기본권과 생존권을 도매금으로 넘기는 반공공적 판례에 다름 아니다. 그나마 지난해 희망버스와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자 가족들의 죽음 등이 계기가 되어 한국 사회의 모든 정치권이 정리해고제와 비정규직 제도화를 폐지하겠다고 나서는 현실에 찬물을 끼얹는 반사회적 도발에 다름 아니다. 세계 다보스 포럼에 모인 제1세계의 정치인들과 다국적 자본가들이 한목소리로 자본주의 자체의 위기와 반성을 얘기하는 이때 정반대로 가는 반역사적 행태에 다름 아니다.
수술 날짜를 미루고 찾아간 대법원 앞에서 울음보가 터진 콜트·콜텍 기타 만드는 노동자들을 보며 나도 눈물이 났다. 그동안 콜트·콜텍 노동자들은 세계 악기상들과 문화예술인들을 향해 여섯 번의 해외 원정을 다녀와야 했고, 문화예술인들과 함께 3년여째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에 서울 홍익대 앞 ‘클럽 빵’에서 ‘기타 만드는 노동자들을 위한 연대의 콘서트’를 진행해왔다. 생계는 털수세미를 뜨고, 전통 된장과 고추장을 만들어 파는 일로 꾸렸다. 그런데 이제 또다시 얼마를 기다리라는 말인가.
그들만 짐 짊어지게 할 것인가
물론 콜트·콜텍 기타 만드는 노동자들의 사회적 투쟁이 끝난 것은 아니다. 대법에서 승소한 콜트 노동자들에게 콜트·콜텍 문제는 하나이며, 동시에 해결돼야 한다는 원칙이 분명하다. 자신들만을 위해 돈으로 해결하지 않고, 공장 재가동을 통한 원직 복직이 이뤄져야 한다는 5년여 동안의 꿈에서 한 치의 물러섬이 없다. 지금은 비록 다시 눈물을 삼키지만 언젠가 웃을 것이라는 콜텍 노동자들의 결의에 가감이 없다. 본인들의 또 다른 희생이 있더라도 ‘장래에 올 수도 있는 위기’로 또 누군가 일터에서 쫓겨나지 않도록 끝까지 싸우겠다는 의지 또한 단아하다. 그러나 언제까지 그들에게만 이 모든 사회적 투쟁의 짐을 짊어지게 할 것인가? 이젠 우리가 함께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송경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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