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친구에게 소개팅을 주선했다. 소개팅남은 친구와 내가 성향이 비슷한 것 같다고 말하더랬다. 무슨 뜻이냐고 하니 삶에 무심한 태도가 비슷하다나. 그런가, 곰곰 생각해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시험을 볼 때, 대입 준비를 할 때, 취업을 앞두고 매번 경쟁에 부닥치는 순간마다 “넌 왜 그리 치열하지 못하냐”는 말을 들어왔다. 종이 한 장의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종이 100장의 고군분투를 하기에 나는 너무 게으르고 의지가 없었다. 누군가를 밟고 이기고 싶다는 생각도 없었다. 삶은 어쨌거나 순리대로 흘러갈 것이란 믿음으로 나는 서른 해를 살아왔다. 집요하게 군다는 것은 뭔가 조금 부끄럽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니 나는 집착과 거리가 먼 인간인가… 라고 결론을 내리려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그렇지만도 않다. 잠재한 집착이 종종 엉뚱한 순간 고개를 내밀 때가 있으니.
한동안 같은 음식을 계속 먹을 때가 그렇다. 주로 소박한 차원의 것들. 자주 들락거리는 어느 블로그에서 짜파게티에 통후추를 갈아 뿌려먹으면 맛있다는 글을 보고 따라해봤다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그걸로 끼니를 때운 적이 있다. 출근 전에도, 숙취로 머리가 아픈 날에도. 그러나 나는 무심하므로 이런 집착이 그리 오래가지는 못한다. 금세 다른 곳으로 옮겨갈 뿐. 요즘 내가 집착하는 음식은 피자다. 이것도 어느 블로그에서 보고 따라한 것인데(그러고 보니 나를 먹여살리는 것은 인터넷을 떠도는 레시피인가), 시판 토르티야에 화이트 소스를 바르고 치즈 뿌려 구워서 꿀에 찍어먹는 것. 해봤더니 그럴듯하다. 아침에는 주스랑, 밤에는 맥주랑 짝이다. 집요할 때는 난 좀 열심이다. 귀찮음을 무릅쓰고 이태원에 가서 내 종아리만 한 치즈 덩어리도 사왔다. 든든하다.
피자 이야기가 나와서 말이니 오늘은 그동안 꼭 한 번 지면에 소개하고 싶었지만 도통 연결할 음식이 없어 어찌하지 못했던, 그리고 이미 좋아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 소개하기 왠지 저어됐던 (문학동네 펴냄)을 끌어와보기로 한다. 피자를 먹을 때마다 자주 이 아이가 생각났으므로.
소설의 큰 줄기는 세대를 이어 내려오는 오래된 저주(‘푸쿠’)에 맞서 미국에서 살아가는 이민자 오스카 와오와 그 가족의 이야기다. 주인공 오스카는 “고등학교 2학년 때 몸무게가 자그마치 110kg이 나가고 전형적인 도미니카 남자의 사내다운 허풍도 없었고, 목숨이 달렸다 해도 여자 하나 낚지 못할 인간”에다 운동에는 젬병, 음악, 춤, 세상과의 타협, 꼼수, 편법, 협박에는 소질이 없으며 반곱슬머리에다 공업용 고글 같은 커다란 안경을 쓴 소년이다. 도서관 구석에 처박혀 톨킨과 힉맨의 소설을 흠모해 마지않고, 종말론에 집착하며, 어느 여자도 그를 사랑하지 않지만 누구에게든 쉽게 사랑에 빠지는 열정적인 남자다. 실제로 만난다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 아이가 좋았다. 책에서는 그리 쓰이지 않았지만 나는 그가 방에 틀어박혀 제2의 톨킨을 꿈꾸며 같은 소설을 100번씩 읽을 때 종종 그 통통한 손으로 피자를 집어 우적우적 씹어먹었으리라 상상했다. 오늘 밤에도, 그리고 내일 밤에도 나는 커다란 치즈 덩어리를 다 먹어치울 때까지 피자를 구우며 오스카는 어떤 모습일까 그려보겠지.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사진 한겨레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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