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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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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캠핑 안 간다~ 처자식들아~

등록 2012-10-31 17:24 수정 2020-05-03 04:27
서울 동작구 사당동 총각수산은 술값이 싸서 더 좋다. 한겨레21 x

서울 동작구 사당동 총각수산은 술값이 싸서 더 좋다. 한겨레21 x

“캠핑이면 기타지~.” 저녁을 먹고 모닥불에 둘러앉아 맥주를 홀짝이는데 이세영 기자가 가져온 기타를 꺼내 잡았다. 무슨 동아리 MT 왔냐, 여름성경학교냐, 천렵 왔냐는 핀잔이 쇄도했지만 다들 싫지 않은 눈치였다. 이 기자는 노래책을 펴더니 기타를 치며 흥얼거렸다. 고색창연한 7080 민중가요들이었다. 운동권 아니랄까봐 올드패션드하다, 근데 엔엘이었냐, 딴 노래는 없냐면서도 하나둘 노래를 따라불렀다. 마침 일요일 오후라 캠퍼들이 거의 없었기 망정이지, 남들이 봤으면 무슨 중년 복음성가대인 줄 알았을 듯싶긴 했지만, 노래는 어느새 우리를 대학 시절로 데리고 갔다, 고 느낀 순간 와잎이 또 전활 했다. “뭐해? 노래 부르고 신났구만~. 처자식 버리고 가니까 재밌나 보지?” 벌써 세 번째 전화에 있는 재미도 달아나겠다~는 말을 꾹 삼키며 “궁금해요? 궁금하면 500원”(전화 끊어)이라고 응대하며 전활 끊었다.

민중가요가 김광석 노래로 바뀌어서도 와잎의 문자질과 전화질은 잇따랐다. 혼자 있으니까 무섭다(니가 더 무서운 거 알잖니?), 아들 녀석이 안 잔다(이미 자는 거 다 알아~), 술 안 먹고 자기 생각하고 있다(무섭다, 술 먹고 내 생각하지 마라~) 등 무차별 끼어들기에 산통은 이미 다 깨졌다. 맥주와 안주를 다 먹은 우리는, 물과 김치만으로 만든 김치찌개에 소주를 마셨다. 새벽 2시에 겨우 잠들었는데 아침 7시부터 전화가 울렸다. 아들 녀석이었다. 보고 싶다고, 아빠 언제 오냐고 난리였다. 이제 캠핑 안 간다~ 처자식들아~.

사지가 쑤시고 떡진 머리에 만신창이 몰골을 하고 점심께 집에 왔는데, 와잎이 나갈 준비를 하고 앉아 있었다. 어제 니만 원없이 놀았으니, 이젠 내가 지대로 놀아야 할 차례라며 동네 쌍둥이 부부네와 약속했으니 나가자는 것이었다. 그럼 그렇지~. 아주 날을 잡았구만~. 아빠 보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아들 녀석은 ‘닌자고’ 장난감에 정신이 팔려 아는 척도 안 했다. 보고 싶은 거 맞니?

그길로 개 끌려나와 향한 곳은 사당동 총각수산. 선주의 아들이 운영해 싸고 맛 좋은 회를 제공한다는 그곳은 새롭게 뜨고 있는 가게. 쌍둥이네 부부와 쌍둥이들은 이미 와 있었다. 건설회사에 다니는 쌍둥이네 아빠는 이미 집에서 소주로 낮술 한잔을 걸친 상태. 이 양반도 장난 아닌데~. 주적이 2명이 된 상황. 와잎은 메뚜기도 한철이라며 대하 소금구이와 소맥을 주문했다. 도대체 니 철은 언제냐? 쌍둥이 어머니가 이곳은 술값이 싼(소주 1500원, 맥주 2천원) 대신 직접 카운터에서 사와야 한다고 일러줬다. 술값이 싸다는 말에 와잎은 앗싸를 외치며 나보고 술을 사오라고 시켰다. 뭔가 점점 잘못돼가고 있다는 것을 직감하면서도 홀로 놀고 왔다는 생각에 거절할 수 없었다.

대하는 살이 올라 있었다. 어제 그렇게 술을 처먹었는데도 소주 한잔을 입에 넣으니 스르르 넘어갔다. 주야장천 먹는구만~. 파워레인저 흉내를 내는 사내놈 3명은 새우를 먹지 않았다. 칼국수를 시켜 애들을 먹였다. 와잎은 쌍둥이네 아빠와 열심히 폭탄을 말고 있었다. 애들 보랴, 술 사다 갖다 바치랴, 정신이 없었다. 결국 우리 집 135차 집들이로 이어진 그날 술자리는 새벽 3시에 끝나고 말았다. 술상을 치우며 난 이를 갈았다. 다시 캠핑을 가면 내가 개다~. 문의 02-3476-8592. xreporter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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