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말했다. “사랑 때문에 죽는 사람이 없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이 시대의 불명예다”(‘아직’ 부분)라고. 사랑 때문에 죽는 사람이라…, 시인이 아니어서 잘 모르겠다. 하지만 사랑 때문에 목숨을 걸었다가 이름 모를 사람들의 간절한 사랑 때문에 산 사람을 안다.
김진숙이 말했다. “살아 내려올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고. 2011년 1월6일 새벽 3시 홀로 부산 영도 앞바다 85호 크레인에 오르며 그런 생각을 했노라고. 3월13일 서울 백범기념관에서 진행된 창간 18돌 기념 제9회 인터뷰 특강에서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크레인에 오르기 전 남모르게 신변을 정리했노라고. 사는 동안 가장 크게 지른 100만원짜리 사진기와 고어텍스 등산화를 지인에게 선물했노라고. 한겨울에 하늘에 올라 봄·여름·가을을 보내고 다시 초겨울에 땅으로 내려오기까지 지상 35m 크레인 농성 309일. 더는 버틸 수 없을 것 같던 때가 왜 없었겠느냐고 ‘철의 여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말했다. 그때마다 기적이 찾아왔다고 김진숙이 웃으며 말했다. 김여진과 날라리 외부세력이 찾아와 분노와 울분뿐인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에게 웃음을 선사하고, 용역깡패들에게 포위된 ‘김진숙과 85호 크레인’을 보려고 핀란드에서 16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찾아와 2주의 휴가 기간 내내 서성인 ‘트친’(트위터 친구), 개구멍으로 몰래 조선소로 들어온 이름 모를 사람, 사람, 사람, 그리고 희망버스들….
김진숙이 말했다. 그래서 “내가 간절한 만큼 저 사람들도 간절하다”는 걸 깨달았노라고. ‘내가 김주익* 때문에 8년을 냉방에서 자고 찬물로 머리를 감으며 고통 속에 살았듯이, 내가 죽으면 저 사람들도 평생 고통 속에 살겠구나’라고 생각했다고. “그 간절함을 배신할 수 없어” 크레인에서 죽지 않고 버텼노라고. “저를 살아서 내려오게 해주시고, 우리 조합원들을 1년 만에 집으로 돌아가게 해주셔서 너무너무 고맙습니다”라고, 김진숙이, 그 ‘간절한 사랑들’에게 인사했다.
시인이 말했다. “신을 만들 시간이 없었으므로 우리는 서로를 의지했다/ 가녀린 떨림들이 서로의 요람이 되었다/ 구해야 할 것은 모두 안에 있었다/ 뜨거운 심장을 구근으로 묻은 철골 크레인/ 세상 모든 종교의 구도행은 아마도/ 맨 끝 회랑에 이르러 우리가 서로의 신이 되는 길/ (중략)// 우리는 다만 마음을 다해 당신이 되고자 합니다/ (중략)// 사랑을 잃지 않겠습니다 그 길밖에/ 인생이란 것의 품위를 지켜갈 다른 방도가 없음을 압니다/ (중략)// 지금 마주 본 우리가 서로의 신입니다/ 나의 혁명은 지금 여기서 이렇게”(‘나의 무한한 혁명에게-2011년을 기억함’ 부분)
그렇게 간절한 사랑은 낯모를 사람들을 서로의 신으로 섬기게 했다. ‘노동자 살인’인 정리해고가 일삼아 자행돼 비자발적 실업자가 200만 명을 넘어서고, 비정규 노동자가 900만 명에 이르는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기적이다.
2012년 3월15일 0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됐다. 정부는 ‘대한민국의 경제영토를 세계 최강국까지 넓혔다’고 희희낙락하지만, 많은 이들은 1% 강자만을 위한 승자독식의 정글에 갇히게 됐다고 두려워한다. 우리, 다시 ‘간절한 사랑’으로 서로의 ‘신’이 되어, 아무도 가보지 않은 이 정글에서 벗어날 길을 여는 기적을 일으킬 수 있을까.
이제훈 편집장
*김주익은 김진숙과 한진중공업에서 20년 남짓 함께 일한 노동자로, 2003년 정리해고에 맞서 85호 크레인에 올라 129일간 농성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당시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이다.
참고 문헌: (김선우 지음·창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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