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세이라트는 팔레스타인 땅 가자지구 중부, 데이르알발라 동북쪽으로 약 5㎞ 떨어진 지중해 연안이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과 함께 자기 땅에서 쫓겨난 팔레스타인 주민 1만6천여 명이 옛 영국군 수감시설 터에 난민캠프를 꾸리고 살기 시작했다.
2024년 6월8일 오전 11시 ‘종말의 날’을 연상시키는 공상과학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상황이 누세이라트에서 시작됐다. 하늘에서 미사일이 비처럼 쏟아졌다. 거리 상공엔 무인기가 가득 찼다. 저만치 미국산 아파치 공격용 헬리콥터와 탱크가 육중한 소음을 내며 다가오고 있었다. 작전명 ‘여름의 씨앗’은 약 75분간 이어졌다.
알모그 메이르 잔(21), 노아 아르가마니(25), 안드레이 코즈로프(27), 슬로미 지브(40) 등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이 붙잡고 있던 이스라엘 인질 4명이 구출됐다. 미국 시민권자 1명을 포함한 인질 3명은 작전 중 사망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스라엘은 테러에 굴복하지 않는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줬다”고 말했다.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50년 가까운 군 생활 동안 지켜본 최고의 작전”이라고 말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성공적인 인질 구출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남겨진 ‘지옥’에서 어린이 64명과 여성 57명을 포함해 모두 274명이 주검으로 발견됐다. 적어도 698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당했다. 가자지구 중부 일대에서 유일하게 가동 중이던 알아크사병원은 다시 주검과 유혈로 뒤덮였다. 탐사보도 전문매체 <인터셉트>는 6월10일 현지발 기사에서 피란민 수하일 무틀라크 아부 나세르(60)의 말을 따 이렇게 전했다.
“여기저기에 찢겨 나간 사람 몸뚱어리가 널려 있었다. 다쳐 쓰러진 사람들 몸에서 연신 피가 흐르고 있었다. 구급차는 올 수 없었다. (…) 군사작전이 끝난 뒤에도 한동안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내 생애 지켜본 가장 끔찍한 광경이었다.”
시간은 토요일 낮이었고, 장소는 시장통이었다. 전쟁으로 물자가 끊겼으니, 뭐라도 구해야 살 수 있었다. 사람들이 거리에 넘실대고 있었다. 처음엔 주방 세제 로고를 단 트럭이 다가왔다. 피란 살림을 가득 실은 승합차도 보였다. 구호품 트럭을 봤다는 증언도 나왔다. 그 뒤로 탱크가 따라왔다. 트럭과 승합차에선 중무장한 특수전 요원들이 튀어나왔다. 총알이 사방에서 날아들었다. 사람들이 픽픽 스러졌다. 민간용으로 위장해 살상행위를 벌이는 것은 국제법이 금지한 전쟁범죄다. 케네스 로스 전 휴먼라이츠워치 사무총장은 6월9일 <알자지라>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대낮에 인파로 붐비는 시장 부근에 폭탄이 떨어졌다. 인적이 뜸한 밤 시간대에 작전을 수행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민간인 사상자가 날 수 있다는 점은 충분히 예견 가능했다. 민간인 피해를 줄이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국제법이 정한 의무에 정면으로 반한다.”
가자지구 보건당국은 전쟁 251일째를 맞은 6월13일 현재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가자지구 주민 3만7202명이 숨지고, 8만4932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사망자 가운데 어린이는 1만5694명이다. 어린이 1만7천 명은 부모를 모두 잃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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