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의 컬럼비아대학에서 시작된 팔레스타인 연대 시위가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대학 쪽은 평화적인 집회·시위인데도 경찰을 동원해 이를 강제 진압하면서 상황에 기름을 붓고 있다. 팔레스타인 주민의 고난에 연대를 표시하는 학생들을 ‘테러 동조세력’으로 몰아가는 움직임이 나오더니, 급기야 하원이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을 ‘반유대주의’로 규정하는 법안까지 통과시켰다. 팔레스타인 땅 가자지구 문제가 2024년 11월 예정된 미 대선의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2024년 4월30일 밤(현지시각) 컬럼비아대학 교정으로 시위 진압장비를 갖춘 경찰 수백 명이 장갑차량을 앞세우고 투입됐다. 경찰은 곧장 사다리를 이용해 학생 시위대가 점거농성 중이던 해밀턴홀 2층 창문을 통해 건물 안으로 들어가 50여 명을 체포했다. 경찰이 학교 안으로 진입한 건 4월 들어 이번이 두 번째다. 학교 당국은 4월17일 학생들이 이스라엘 관련 기업에 대한 투자 철회 등을 요구하며 교내에서 텐트 50동을 치고 천막농성에 들어가자, 이튿날인 4월18일 경찰에 ‘시설 보호’ 요청을 했다. 출동한 경찰은 천막농성장을 강제 철거하고, 시위하던 학생 108명을 체포한 바 있다. 학생들은 이튿날 장소를 바꿔 천막농성을 재개했다. 이들은 왜 시위에 나섰을까?
1907년 완공된 ‘해밀턴홀’은 미국 ‘건국의 아버지’ 가운데 한 명으로 초대 재무장관을 지낸 알렉산더 해밀턴의 이름을 딴 곳이다. 4월29일 점거농성을 시작한 학생들은 건물 난간에 ‘힌드홀’이라 적힌 커다란 펼침막을 내걸었다. 가자지구 북부 가자시티에 살던 6살 소녀 힌드 라잡을 추모하기 위해 해밀턴홀을 힌드홀로 개명한 것이다. 무슨 사연일까?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가 2월2일과 4월16일 두 차례에 걸쳐 보도한 내용을 종합해보자.
1월28일 밤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 북부 가자시티로 다시 진입했다. 목표 지점은 이스라엘군이 개전 초기부터 ‘하마스의 온상’으로 지목한 가자지구 최대 규모인 알시파병원이었다. 소셜미디어 ‘엑스’(옛 트위터)를 통한 주민 대피령도 내려졌다.
1월29일 오전 9시32분께 바샤르 하마다(44)는 아내 아남(43)과 자녀 5명, 조카 1명을 한국 기아차의 피칸토(모닝의 현지명)에 태우고 서둘러 피란길에 올랐다. 가족이 살던 가자시티 서부 텔알하와도 대피 대상지역에 포함된 탓이다. 집을 출발한 차량은 북쪽으로 불과 300~400m 떨어진 지점에서 멈춰섰다. 그런데 이날 오후 1시께, 가자지구 최남단 라파로 이미 피란해 있던 사미르 하마다의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 피칸토에 타고 있던 바샤르의 장녀인 조카 라얀(15)이 사마르에게 건 전화였다. 통화를 마친 사미르는 고심 끝에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살고 있는 사촌 무함마드 살렘 하마다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후 2시28분께 요르단강 서안지구 라말라에 자리한 팔레스타인적신월사(PRCS·이슬람권의 적십자사) 응급구조대로 전화가 걸려왔다. 사미르의 연락을 받은 무함마드가 독일에서 건 전화였다. 그는 사미르에게 라얀이 전한 상황을 설명했다. 이스라엘군이 가족이 탄 차량을 공격해 바샤르와 아남 부부는 물론 사나(13), 라가드(12), 무함마드(11), 사라(4) 등 라얀의 동생 4명이 숨졌다는 것이다. 라얀은 부상으로 출혈이 있고 사촌동생 힌드만 무사하다고도 했다. 상황을 설명한 그는 라얀의 휴대전화 번호를 구조대에 알려줬다.
구조대는 곧장 라얀에게 전화를 걸었다. PRCS가 공개한 당시 통화 내용을 담은 27초 분량의 음성파일을 들어보면, 라얀은 다급한 목소리로 “이스라엘군이 총격을 가하고 있다. 탱크가 바로 앞에 있다. 우린 차 안에 숨어 있다”고 말했다. 구조대가 추가 질문을 하려는 순간 갑자기 총성과 함께 라얀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이윽고 총성은 멈췄고, 라얀도 더는 말이 없었다. 통화는 이내 끊겼다.
구조대가 다시 연락했을 때, 전화를 받은 건 힌드였다. 힌드는 숨죽인 채 떠듬떠듬 “가족이 모두 죽었다. 탱크가 앞에 있다. 점점 가까이 다가온다. 빨리 와서 구해달라”고 말했다. 위치 추적을 통해 차량이 가자시티 알아즈하르대학 부근에 있음을 확인한 구조대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보건부로 연락을 취했다. 전장 인근 지역에 접근하기 위해선 사전 협의를 거쳐 이스라엘군의 허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절차를 밟는 동안 구조대는 가자시티 다른 지역에 대피 중이던 힌드의 어머니 위삼 라잡을 수소문해 전화를 연결했다.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은 힌드는 안정을 되찾았지만 통화 시간이 길어지면서 차츰 기운을 잃어갔다. 그는 “배고프고, 목마르고, 춥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5시40분께 보건부가 “현장 진입 허가가 떨어졌다”고 구조대에 알렸다. 이스라엘 쪽은 현장 지도까지 제공했다. 사건 현장에서 약 3㎞ 떨어진 지역에 있던 유세프 자이노, 아흐메드 알마둔 등 구조대원 2명이 다급히 구급차를 몰고 출동했다. 곧 현장에 근접했다는 무전이 걸려왔다. 구조대 본부에선 “천천히 접근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갑자기 다시 총성이 울렸고, 구조 차량과 교신이 끊겼다. “빨리 와서 구해달라”는 말을 끝으로 힌드와도 전화가 연결되지 않았다. 오후 6시께였다.
12일 뒤인 2월10일 이스라엘군이 물러간 사건 현장에 팔레스타인 민방위대가 도착했다.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둔 ‘유럽-지중해 인권 모니터’가 2월12일 펴낸 초기 진상조사 보고서를 보면, 총알로 벌집이 된 차량 안에서 하마다 일가족과 힌드의 주검이 발견됐다. 주검은 이미 부패가 진행된 상태였다. 하마다 가족 차량에서 남쪽으로 불과 50m 남짓 떨어진 거리에 포격을 당해 검게 그을린 채 형체만 남은 구급차가 발견됐다. 숨진 구조대원 2명의 유해는 훼손이 심해 주검이라고 부를 수조차 없는 상태였다. 단체 쪽은 보고서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현장 주변엔 이스라엘군 탱크의 흔적이 선명했다. 사건 발생 약 2시간 전 찍은 위성사진을 보면, 하마다 일가족이 탄 차량 발견 지점에서 200m 남짓 떨어진 곳에 이스라엘군 장갑차량 등이 있다. (…) 구급차 안에선 미국산 ‘M830A1 히트’ 포탄 조각이 발견됐다. 구급차 공격에 미국산 무기가 사용됐음을 뜻한다.”
해밀턴홀 점거농성을 진압한 경찰은 12일째 계속된 천막농성도 강제 해산시켰다. 교내 매체 <컬럼비아 데일리 스펙테이터>는 5월1일 “4월30일 밤 11시40분께부터 경찰이 천막농성장을 철거하고 농성하던 학생들을 해산시켰다. 천막농성장 주변에 진압장비를 갖춘 경찰 수십 명이 배치된 상태”라고 전했다. 이날 밤 해밀턴홀과 천막농성장에서 체포된 인원은 모두 109명까지 늘었다.
컬럼비아대 쪽은 ‘안전’을 이유로 졸업식(5월15일) 이틀 뒤인 5월17일까지 경찰력을 교내에 주둔시켜달라고 요청한 상태다. 앞서 학교 당국은 천막농성 중인 학생들에게 4월29일까지 해산하지 않으면 정학 처분을 내리겠다고 위협한 바 있다. 그럼에도 컬럼비아대학 학생들의 시위가 쉽게 잦아들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이번 농성은 ‘팔레스타인의 정의를 위한 학생연합’(SJP)과 ‘평화를 위한 유대인의 목소리’(JVP)란 두 단체의 컬럼비아대학 지부가 주도했다. SJP는 1993년 출범한 단체로 미국과 캐나다 대학 350여 곳에 지부를 두고 있다. 1996년 만들어진 JVP의 자문위원단에는 주디스 버틀러, 노엄 촘스키 등 미국을 대표하는 비판적 지식인들이 참여하고 있다. 그간 두 단체는 미국의 일방적 이스라엘 지원을 비판하며,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정책에 맞서기 위한 ‘보이콧-투자 철회-제재’(BDS) 운동을 이끌어왔다. 컬럼비아대학을 비롯해 미국 대학가에서 번지고 있는 팔레스타인 연대운동은 그 뿌리가 깊다는 뜻이다.
저항과 연대의 뿌리만큼 의심과 증오의 뿌리도 깊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연대는 곧잘 유대인에 대한 위협으로 인식된다. 4월17일 천막농성이 시작된 직후부터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샤이 다비다이 컬럼비아대학 경영대 교수가 대표적 사례다. 미국·이스라엘 이중국적자인 그는 시위 학생을 ‘테러 동조자’ ‘친하마스 세력’이라 주장하더니, 나중엔 ‘테러범’이라고 비난하며 농성장 난입을 시도하기도 했다. 미겔 카르도나 교육부 장관은 4월30일 상원 청문회에 출석해 “(천막농성 탓에) 일부 유대인 학생들은 강의실에 가는 것도 두렵다고 한다. 학생 보호 의무가 있는 대학들이 ‘차별금지법’에 따라 적절한 조처를 취하지 않으면, 연방 예산 지원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대학 쪽이 천막농성 진압을 서두르는 배경이다.
정치권도 가세했다. 하원은 5월1일 민주·공화 양당이 초당적으로 마련한 이른바 ‘반유대주의 경계법’을 찬성 320 대 반대 91로 통과시켰다. 교육부가 차별금지법 관련 사안을 다룰 때, ‘국제홀로코스트기억연대’(IHRA)가 규정한 ‘반유대주의’ 개념을 적용하는 게 뼈대다. 홀로코스트 교육·연구·추모를 목적으로 유럽을 중심으로 34개국이 참여한 정부 간 기구인 IHRA는 2016년 5월 루마니아 부카레스트에서 열린 총회에서 ‘반유대주의’를 “유대인에 대한 특정한 인식 형태로, 주로 유대인에 대한 증오란 방식으로 표출된다”고 규정했다. 또 세부 항목에선 “이스라엘을 인종차별 국가라고 주장하고, 이스라엘의 정책을 나치 독일의 정책과 비교함으로써 유대인의 자기 결정권을 부인하는 것도 반유대주의에 포함된다”고 했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정책에 대한 비판 자체가 ‘반유대주의’란 뜻이다.
컬럼비아대학 진압작전을 끝낸 직후 경찰은 5일째 이어진 뉴욕시립대학 천막농성도 강제 해산했다. 이 과정에서 모두 173명이 체포됐고, 여러 명이 다쳤다. 비슷한 시각 서부 로스앨젤레스 캘리포니아주립대에선 검은 옷에 흰 마스크를 쓴 괴한들이 대거 몰려와 천막농성장 난입을 시도했다. 시위대와 괴한들 간 공방전이 3시간여 이어진 뒤에야 경찰이 도착했다. 대학 쪽은 곧바로 천막농성을 ‘불법’으로 규정했다. 강제해산이 임박했음을 뜻한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의 최신 자료를 보면 2023년 10월7일부터 2024년 5월1일까지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가자지구 주민 3만4568명이 숨지고, 7만7765명이 다쳤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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