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기후변화 운동가 그레타 툰베리(20)는 답답할 것이다. “점령된 땅에 기후정의는 없다”는 자신의 외침을 두고, “기후변화 운동 진영을 분열시켰다”는 질타가 쏟아졌다. 평소 진보적이라고 평가받는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조차 2023년 11월18일 표지기사에서 “그레타 툰베리는 반유대주의자인가, 아니면 지독히 순진한 건가”라고 썼다. 툰베리의 외침을 두고 왜 이런 반응이 나올까? 불편하기 때문인 것 같다.
11월12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행동을 촉구하는 ‘미래를 위한 금요일’(FFF) 집회가 열렸다. 주최 쪽 추산 8만5천여 명이 운집했다. 네덜란드에서 열린 기후변화 관련 집회 중 사상 최대 규모였단다. 연단에 올라선 툰베리는 아랍 전통 스카프 케피예를 목에 둘렀다. 검은색과 흰색으로 된 케피예는 팔레스타인을 상징한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탄압받는 이들, 자유와 정의를 위해 싸우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툰베리가 무한 폭력에 노출된 가자지구 주민들에 대한 연대감을 표한 건 이날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10월20일 금요집회 때도 소셜미디어에 사진과 함께 “270번째 금요집회는 팔레스타인, 가자와 연대한다”는 글을 올렸다. 이스라엘군 대변인은 즉각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에 “앞으로 툰베리의 의견에 동조하는 누구든 테러 지지자로 간주할 것”이라고 했다가 나중에 발언을 취소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공식 소셜미디어에 “그레타 툰베리,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무고한 민간인을 ‘도살’하는 데 쓰는 로켓을 지속 가능한 재료로 만들지 않는다. 하마스 학살의 피해자는 어쩌면 당신 친구가 될 수도 있었다”고 썼다. 이스라엘 교육부는 교과과정에서 툰베리와 관련한 내용을 모두 삭제하겠다고 발표했다.
<슈피겔>은 11월12일 암스테르담 집회 관련 기사에서 “툰베리의 연설이 이어지는 동안 불편한 기색을 보이는 참석자가 생겼다”고 전했다. 당시 집회에 참석한 네덜란드인 에르얀 담은 이 매체에 “툰베리와 다른 활동가들이 계속 팔레스타인 얘기를 하면서 (집회장에) 분열이 생겼다. 내가 이용당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상당수 다른 참석자들도 그랬을 것”이라고 말했다. 담은 곧 연단으로 올라가 툰베리의 마이크를 뺐으려다 실패했다. 그는 “기후변화 집회에 참석하러 왔지 정치적 관점을 들으러 온 게 아니다”라고 외쳤다.
에르얀 담뿐이 아니다. 유럽 전역에서 비슷한 현상이 목격된다. 홀로코스트(유대인 집단학살)란 ‘원죄’를 안은 독일에선 정치인들이 “이스라엘의 안보는 독일의 존재 이유 중 하나”란 말만 되풀이한다.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은 ‘반유대주의’로 낙인찍히기 일쑤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점령군의 꼭두각시 노릇을 했던 ‘비시 정권’이 유대인 75만여 명을 추방해 사지로 내몰았던 프랑스에서도 엇비슷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프랑스는 유럽에서 유대인과 무슬림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다. 그럼에도 반유대주의 확산을 경고하는 목소리만 커질 뿐, 똑같이 기승을 부리는 이슬라모포비아(이슬람 공포증)에 대한 우려는 찾아보기 어렵다. <알자지라>는 12월4일 “유럽에서 팔레스타인에 대한 공개적인 지지 목소리가 나오는 곳은 아일랜드뿐”이라며 “아일랜드는 1980년 유럽 국가로는 처음으로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을 지지했다. 제국주의의 침탈과 점령, 분단이란 역사적 경험을 공유했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10월7일 팔레스타인 무장 정치세력 하마스의 기습적인 테러와 이를 응징하기 위해 이스라엘이 시작한 가자지구 전쟁이 두 달째를 맞았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은 12월7일 펴낸 ‘61번째’ 일일 상황보고서에서 “지난 24시간 동안 통계 집계가 중단됐다. 10월7일부터 12월5일까지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모두 1만6248명이 숨졌다. 사망자의 70%가량은 여성과 어린이”라고 전했다. 같은 기간 가자지구 인구의 85%가 피란민 신세가 됐다.
개전 초기 이스라엘 군당국은 가자지구 북부 “가자시티를 벗어나라”고 했다. 사람들은 가자시티에서 대피했다. 그다음엔 가자지구 중부 “와디가자 이남으로 가라”고 했다. 사람들은 와디가자 이남으로 대피했다. 그다음엔 와디가자를 넘어 “가자지구 남부로 대피하라”고 했다. 사람들은 가자지구 남부로 대피했다. 남부 칸유니스에도 다시 대피령이 내려졌다. 사람들은 더는 갈 곳이 없어졌다.
하마스가 붙잡아간 인질과 이스라엘이 구금한 팔레스타인 수감자 맞교환을 조건으로 한 ’일시적 교전 중단’은 말처럼 쉽게 끝났다. 이스라엘군은 땅과 하늘과 바다에서 가자지구 남부를 때려대기 시작했다. 칸유니스 도심으로 이스라엘군 탱크가 들이닥쳤다. OCHA 쪽은 피란민이 몰리면서 “가자지구 인구의 70%가 칸유니스 등 남부에 밀집해 있다”고 짚었다. 가자지구 어디에도 안전한 곳은 없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12월6일 “가자지구의 인도적 재난을 막아야 한다”며 2017년 취임 이후 처음으로 유엔 헌장 제15장 99조를 발동한 것도 이 때문이다. 헌장 99조는 “사무총장은 국제평화와 안전의 유지를 위협한다고 그 자신이 인정하는 어떠한 사항에도 안전보장이사회의 주의를 환기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안보리는 무력증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이른바 ‘기후정의’는 근본적으로 사람과 인권을 존중하는 데서 출발한다. 어떤 이유로든 사람들이 고통당할 때, 자기 집에서 쫓겨나거나 죽임을 당할 때 목소리를 내는 것을 뜻한다. 우리가 ‘과격해졌다’거나 ‘정치적으로 변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우리는 항상 정치적이었다. 정의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툰베리는 12월5일 동료 스웨덴 FFF 활동가 3명과 함께 영국 <가디언>을 비롯한 유럽 여러 매체에 보낸 기고문에서 이렇게 썼다. 그는 이어 이렇게 강조했다. “하마스가 이스라엘 민간인을 끔찍하게 살해한 것이 지금 이스라엘이 벌이는 전쟁범죄를 정당화할 수 없다. 인종학살은 방어권 행사가 아니다. 반유대주의와 이슬라모포비아를 비롯한 모든 형태의 차별에 반대한다. 용서할 수 없는 폭력의 종식을 요구하는 건 기본적인 인류애 차원의 문제다. 침묵은 공범이다. 학살 앞에서 중립은 없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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