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크바 테러조직 요원 수십명과 하마스 방공망 책임자를 무력화했다.”(2023년 10월14일)
“니림 키부츠 학살 책임자인 나크바 테러조직 사령관을 무력화했다.”(10월15일)
“하마스 무장요원 2명을 추가로 무력화했다.”(10월18일)
“테러 목표물 수백 곳을 타격하고, 10월7일 학살에 가담한 하마스 무장요원을 무력화했다.”(10월20일)
“하마스 포병부대 부사령관 무함마드 카트마시를 무력화했다.”(10월22일)
이스라엘 국방부가 연일 보도자료를 쏟아낸다. ‘빛나는 전공’을 뽐낸다. ‘무력화’(또는 중성화)는 죽음을 뜻하는 전쟁용어다. 전투 도중 민간인이 죽거나 다치는 건 대수롭지 않게 ‘부수적 피해’로 부른다. 10월25일엔 더욱 생경한 용어가 등장했다. 이스라엘군 쪽은 이날 자료를 내어 하마스의 해군 부대장을 지냈고 무기 제조 관련 활동을 해온 하마스 북부 칸유니스 대대장인 타이시르 무바셰르를 “제거했다”고 밝혔다. 2001년 9·11 동시테러 이후 미국이 이른바 ‘테러와의 전쟁’이 한창일 때 횡행했던 “가장 좋은 테러범은 죽은 테러범”이란 말이 떠오른다.
10월7일 개전 직후부터 이스라엘군은 예비군 30만 명을 동원해 가자지구를 에워싸고 지상군 병력 투입을 준비했다. 10월26일엔 “다음 단계 전투 준비 차원에서 (전날 밤) 가자지구 북부에 탱크와 보병부대를 투입해 타격을 가한 뒤 철수했다”고 밝혔다. 인질의 안전을 우려한 미국의 만류로 본격적인 지상군 투입이 미뤄진다는 추측성 보도가 나오기도 했지만, 대규모 공습으로 가자지구를 초토화한 뒤 진입해야 병력 손실을 줄일 수 있다는 전략적 판단에 따른 것이란 분석이 설득력이 커 보인다. 이스라엘 군당국의 지상군 투입은 “시점의 문제일 뿐”이란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10월20일 의회(크네세트) 외교·국방위원회에 출석한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지상군 병력 투입 등 향후 가자지구 공세와 관련해 취해질 조치를 3단계로 나눠 자세히 밝혔다. 현지 일간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갈란트 장관의 말을 따 “이번 전쟁의 목표에 군사 및 국정운영 능력을 파괴함으로써 하마스를 궤멸하는 것이 포함됐다. 하마스 궤멸 이후 최종 목적은 가자지구에서 ‘새로운 안보체제’를 구축해, 이스라엘이 향후 가자지구에 어떤 책임도 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그의 말을 좀더 구체적으로 들어보자.
“우리는 현재 전쟁의 1단계에 있다. 공습을 포함한 군사작전이 진행 중이며, 향후 하마스를 패퇴시키기 위해 지상군 병력을 투입해 무장요원을 사살하고 인프라를 파괴할 것이다. 2단계에 들어서면 전투는 지속되겠지만, 산발적인 저항을 무력화하는 저강도 전투가 될 것이다. 3단계는 가자지구 주민들의 일상생활 유지에 이스라엘의 책임을 없애기 위한 새 안보체제를 신설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가자지구 인근 거주자를 포함한 이스라엘 시민이 새로운 안보 현실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갈란트 장관이 언급한 ‘새 안보체제’는 하마스 제거 뒤 요르단강 서안 지역을 장악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쪽에 가자지구의 모든 책임을 이관하는 것이란 분석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부패하고 무능한 자치정부 쪽이 가자지구의 민심을 달랠지는 미지수다. 실제 2006년 1월 실시된 자치의회 선거에서 하마스는 가자지구에서 얻은 민심을 발판 삼아 자치정부를 대표하는 정당인 파타를 압도적 표차로 누른 바 있다.
그해 6월15일 미 의회조사국(CRS)은 ‘미국의 중동 민주화 촉진 정책: 이슬람주의자 딜레마’란 제목의 보고서를 펴내고, “이라크에서 시아파 이슬람주의 정당이 부상하고 팔레스타인에선 ‘근본주의 세력’인 하마스가 자치정부를 장악했다. 미국이 중동에서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강조하다 의도치 않게 강경 이슬람 세력을 강화한 꼴이 됐다”고 짚었다.
당시 ‘반하마스 연대’에 나선 미국과 유럽연합(EU)을 등에 업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쪽은 하마스에 정권을 순순히 넘기지 않았다. 결국 1년여 뒤 하마스는 무력을 동원해 가자지구에서 자치정부를 몰아내고 집권했다. 이스라엘은 이를 빌미로 가자지구 봉쇄에 나섰다. 하마스 제거 뒤 자치정부 쪽에 가자지구를 넘긴다면, 이스라엘은 17년째 이어온 봉쇄를 풀까? 자치정부에 대한 대중적 반감 속에 하마스 잔존 세력이 저항에 나선다면, 지금보다 훨씬 극단적인 상황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벌써 나온다.
이스라엘과 하마스는 전면전의 상대가 될까?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의 <2023년 세계군사연감>을 보면, 이스라엘은 현역 병력 16만6500명과 언제든 동원 가능한 예비군 병력 46만5천 명을 갖추고 있다. 육군은 탱크 2200대와 야포 530문을 보유했고, 공군은 F-35 전투기 30대와 F-15 전투기 83대, 아파치 공격용 헬기를 포함한 헬기 142대를 보유하고 있다. 해군은 잠수함 5척과 함정 49척을 운용 중이다. 이스라엘의 군사력은 세계 10위권으로 평가받는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는 2022년 이스라엘의 국방예산 규모를 234억달러로 추산했다. 2018~2022년 5년간 1인당 평균 국방예산은 미국(2101달러)보다 많은 2535달러로, 카타르(3379달러)에 이어 세계 2위를 기록했다.
하마스는 어떤가? IISS는 하마스가 1991년 산하 무장조직으로 창설한 알카삼 여단 소속 병력을 1만5천 명 수준으로 추정했다. 미국 쪽에선 3만~4만 명 규모라는 지적도 나온다. 보유한 무기류는 게릴라전에나 어울릴 수준이다. 대전차유도미사일과 휴대용대공미사일 등을 갖췄고, 사거리 10㎞에서 250㎞에 이르는 다양한 로켓을 보유한 정도가 고작이다. 미 정보당국은 “하마스의 무장능력은 이스라엘에 아무런 재래식 군사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그럼에도 미국은 이스라엘에 군사지원을 즉각 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10월23일치에서 “미국은 군사고문단과 최첨단 방공시스템을 이미 이스라엘로 보냈다”며 “파견된 군사고문단에는 이라크 팔루자 등지에서 극단적 테러조직 이슬람국가(IS)에 맞서 싸운 경험이 있는 제임스 글린 미 해병대 중장도 포함됐다”고 전했다. 이어 “군사고문단이 실전에 가담하지는 않을 것이며, (이스라엘 지상군 투입 뒤 벌어질) 도심 전투에 대한 조언과 민간인 피해 경감 방안 등을 전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스라엘 방문을 마치고 돌아온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바삐 움직였다. 그는 10월20일 밤 ‘하마스 테러리스트의 이스라엘 공격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지속하는 야만적 전쟁에 대한 미국의 입장’이란 제목으로 대국민 연설에 나섰다. 하마스와 러시아를 ‘같은 편’으로 치부한 바이든 대통령은 이스라엘(143억달러)과 우크라이나(614억달러)에 대한 막대한 추가 군사지원 예산을 의회에 요청했다.
의회조사국(CRS)이 3월1일 펴낸 보고서를 보면, 이스라엘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최대 대외원조 수혜국이다. 1946년부터 2023년까지 미국은 이스라엘에 △군사부문 1144억달러 △경제부문 343억달러 △미사일방어 부문 99억달러 등 모두 1586억달러에 이르는 천문학적 자금을 지원했다. 2020년 이후 경제원조는 중단된 상태지만, 2021년 이후 3년 연속 연간 33억달러씩 군사원조를 유지했다. 같은 기간 미사일방어 관련 예산은 별도로 총 25억달러를 지원했다. 미국은 이스라엘 쪽에 전투기(F-35)·공중급유기(KC-46A)·수송용 헬기(CH-53K) 등 각종 무기를 공급하는 한편, 첨단 군사기술 이전에도 적극적으로 공들였다. 이에 힘입어 이스라엘은 2021년에만 모두 113억달러 규모의 무기를 수출한 방위산업 강국으로 떠올랐다. 가자의 참극 속에 추가 지원마저 급물살을 타면서 미국 내부에서 ‘자성론’이 고개를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분명히 밝혀둔다. 이스라엘에 대한 하마스의 공격은 그저 끔찍한 정도가 아니라, 끔찍한 중에서도 가장 끔찍한 일이었다. 이란과 연계된 (레바논 무장 정치세력) 헤즈볼라나 이란이 직접 개입한다면 작금의 비극이 더욱 심화할 가능성이 있음도 잘 안다. 하지만 이번 사태에 대한 이스라엘의 대응과 그에 대한 미국의 지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땅 점령 정책 유지를 지지하는 것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쪽 주민들의 고통을 더욱 심화할 뿐이다. 이는 장기적으로 미국의 이익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조슈아 폴 전 미국 국무부 정치군사국(PM) 과장은 10월18일 공개한 ‘사직의 변’에서 이렇게 썼다. 미 국무부 군비통제 및 국제안보 담당 차관실에 딸린 정치군사국은 의회 및 여론 대응과 함께 수천억달러 규모의 대외 군사원조 및 군수지원 업무를 총괄한다. 2012년 4월부터 11년을 넘겨 일했던 자리에서 폴 전 과장이 스스로 물러나기로 결정한 이유는 뭘까? 그는 이렇게 밝혔다.
“(이번 사태에 대한) 조 바이든 행정부와 미 의회의 대응은 확증편향에 따른 즉흥적인 반응일 뿐이다. 정치적 편의에 따른 행태이자, 지적 파산 선언이며, 관료적 관성에 따른 것이다. 대단히 실망스러운 한편, 전혀 놀랍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평화를 위한 안보’란 이름으로 한 치의 변화 없이 수십 년 이어온 정책은 안보도 평화도 가져오지 못했다. 한쪽에 대한 맹목적 지원은 장기적으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쪽 주민들에게 파괴적 효과를 불러올 수밖에 없었다. 지난 수십 년간 지속해온 실수를 다시 반복하는 게 두렵다. 더는 그 실수에 가담하기를 거부한다.”
이른바 ‘평화를 위한 안보’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란 두 국가 건설을 뼈대로 한 오슬로협정(1993년) 체결 뒤 미국이 이스라엘에 군사지원을 지속한 기본 전제다. 곧 미국의 막대한 군사지원으로 이스라엘이 스스로 안전하다고 느낀다면,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수립에 필요한 양보 조처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리라는 계산이다.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 폴 전 과장은 10월23일치 <워싱턴포스트>에 따로 기고한 글에서 이렇게 썼다.
“미국이 제공한 무기는 이스라엘을 평화로 이끌지 못했다. 되레 이스라엘은 요르단강 서안 지역에서 유대 정착촌 건설을 강화해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수립 가능성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그리고 인구밀도가 높은 가자지구에선 지속적인 폭격으로 사망자가 빈발하고, 주민들은 만성적인 트라우마 속에 살아가면서 이스라엘 안전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못했다.”
2023년 10월25일 오후 6시(현지시각) 현재 팔레스타인 땅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 공격으로 인한 사망자는 6547명으로 늘었다. 이 가운데 68%가 어린이와 여성이다. 부상자는 1만7439명으로 집계됐다. 가자지구 보건당국은 사상자 통계와 별개로 어린이 900명을 포함해 모두 1600명이 실종된 상태로, 무너진 건물 더미에 갇혔을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이 내놓은 최신 자료를 보면, 10월24일 오후 6시부터 24시간 동안에만 어린이 344명을 포함해 모두 756명이 목숨을 잃었다. 10월7일 이스라엘의 가자 공격이 시작된 지 19일 만에 최악의 상황이다. OCHA 쪽은 전날 내놓은 자료에서도 “10월23일 오후 6시부터 24시간 동안에만 어린이 305명을 포함해 모두 704명이 목숨을 잃었다. 개전 이래 하루 사망자 최고치”라고 밝혔다.
중동 전문 매체 <미들이스트아이>는 10월26일 “가자지구에서 숨지고 실종된 이들의 규모가 (1992~1995년 발칸반도를 피로 물들였던 보스니아 내전 참극을 상징하는) 스레브레니차 대학살의 희생자 규모를 넘어섰다”고 짚었다. 1995년 7월11일 세르비아계 민병대가 보스니아계 무슬림 남성 약 8천 명의 목숨을 앗아간 스레브레니차 대학살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발생한 최악의 ‘인종학살’이었다. 가자에서, 참혹한 죽음의 기록이 매일 깨지고 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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