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의 핵심은 두 가지다. 첫째, 의전. 격식이 맞아야 한다. 둘째, 논리. 말에 두서가 있어야 한다. 의전에 맞게 논리를 전개해 상대를 설득하는 게 외교의 본령이다. 외교사가 그렇다. ‘의전’을 맞추지 못해 더러 상대국에서 모욕당하기도 하고, ‘논리’가 안 돼 본국에 돌아와 매를 맞기도 한다. 외교관이란 직업은 원래 ‘산재’가 많다.
‘아관파천’을 기억하는가? 한 나라의 원수가, 특정 국가의 위협을 피해 제3국의 외교공관으로 도망한 사건이다. 외교고 ‘나발’이고 없던 때다. 그러니 장호진 대한민국 외교부 1차관이 2023년 9월13일 안드레이 쿨릭 주한 러시아대사를 불러 항의(초치)한 것은 ‘글로벌 중추국가’(GPS)를 표방한 윤석열 정부 외교의 ‘백미’라 할 것이다.
그런데 바로 되치기를 당하고 말았다. 외교 관례상 ‘초치’에 저항한 쿨릭 대사를 ‘본국으로 돌려보내는 조치’라도 해야 할 텐데, 러시아대사 출신인 장 차관이 또 그건 안 하고 있다. 그러니 이 정부는 대체 무엇으로 의전과 격식을 맞출 것인가.
새겨보자. 쿨릭 대사가 주한 러시아대사관 누리집에서 밝힌 입장은 한국 외교부가 공개한 ‘초치 대화’ 내용과 전혀 다르다. 앞서 외교부는 9월19일 낸 보도자료에서 쿨릭 대사가 “우리 정부의 입장을 주의 깊게 들었으며, 이를 본국 정부에 정확히 보고하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쿨릭 대사는 당일 누리집에 올린 자체 보도자료에서 이렇게 밝혔다.
“우리는 한반도는 물론 대한민국 안보에 실질적인 위협은 무력으로 북한을 억압하겠다는 목표로 한반도에서 한-미 양국이 벌이고 있는 맹렬하고 불균등한 군사활동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한국 쪽에 상기시키고자 한다.” 아뿔싸, 누가 누굴 불러 항의한 건가?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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