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은 2015년 7월31일 이른 새벽에 발생했다. 그날, 금요일이 막 시작된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살풍경이 연출되고 있었다. 팔레스타인 땅 요르단강 서안지구 북부 나블루스에서 남동쪽으로 25km가량 떨어진 두마의 한적한 마을에서다. 이윽고 유리 깨지는 소리가 나더니, 깨진 창 안으로 불 붙은 화염병이 날아들었다. 불은 쉽게도 온 집 안으로 퍼져나갔다.
현지 매체 등의 보도를 종합하면, 이날 불에 탄 집은 모두 2채였다. 첫 번째 집에는 젊은 부부와 어린 두 아들이 잠들어 있었다. 전신에 각각 90%와 80%의 3도 화상을 입은 레함과 남편 사아드는 위중한 상태다. 사건 직후 병원으로 옮겨진 부부는 생명유지 장치에 기대 모진 목숨을 버티고 있다. 4살 아들 아흐메드는 전신 60%의 중화상을 입고 치료를 받고 있다.
건설노동자인 이브라힘 다와브샤(23)는 그 시각 깨어 있었다. 피해자 가족과 사촌인 그는 과 한 인터뷰에서 “약혼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그때 ‘사람 살려’ 하는 사아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화기를 내던지고 달려가보니, 검은 복면을 한 괴한 2명이 화상을 입고 쓰러진 레함과 사아드를 살펴보고 있었다. 생사를 확인하는 눈치였다”고 전했다. 뒷걸음질치는 다와브샤를 쫓던 두 괴한은 주변으로 주민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자 달아났다. 다와브샤는 곧바로 불타는 집 안으로 뛰어들었다.
“아흐메드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목소리는 들리는데, 연기와 화염 때문에 앞을 볼 수 없었다. 간신히 아이를 발견해 끌어냈다.” 아흐메드는 두 다리에 심한 화상을 입었지만 살아남았다. 다와브샤는 두툼한 옷으로 코와 입을 감싼 뒤 다시 집 안으로 뛰어들었다. 아기, 아기를 구해야 한다. 하지만 늦었다. 걷잡을 수 없이 번진 불길이 이미 아기 방을 집어삼킨 뒤였다.
막내는, 끝내 현장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법무부의 부검 결과, 아이는 산 채로 불에 타 숨진 것으로 확인됐다”고 전했다. 살림 알사카 법무장관은 “주검은 완전히 불에 타 검게 변했으며, 폐와 갈비뼈까지 녹아내린 상태였다”고 말했다. 알리 사아드 다와브샤, 향년 1.5.
“폐와 갈비뼈까지 녹아내린 상태였다”날이 밝아올랐다. 불에 탄 집 벽면엔 검은색 스프레이 페인트로 ‘징표’가 새겨져 있었다. 어느 집 창가엔 유대인을 상징하는 ‘다윗의 별’ 아래에 히브리어로 ‘보복’이라 적혀 있었다. 다른 집 벽에는 역시 ‘다윗의 별’ 밑에 히브리어로 ‘메시아 만세’라고 적혀 있었다. 사건 소식이 알려지자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성명을 내어 “충격적인 사건이자, 끔찍한 테러 행위”라며 “범법자를 처단하기 위해 보안 당국에 모든 수단을 동원하라고 명했다”고 밝혔다.
인구 3천 명 남짓한 조용한 시골마을인 두마의 주민 대부분은 이스라엘 쪽에서 건설노동자로 일한다. 주변엔 유대 정착촌 마알레 에프라임과 쉴로가 있다. 1967년 6월 제3차 중동전쟁 이후 요르단강 서안과 동예루살렘, 골란고원 일대를 점령한 이스라엘은 이후 그 땅에 유대인을 이주시키고 있다.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다.
‘세계대전’이라는, 인류 역사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참극을 두 차례나 겪으면서, 인류는 ‘최소한의 양심’을 위한 행동기준을 만들어냈다. 바로 ‘제네바협약’이다. 육상과 해상에서 전투가 벌어진 경우 부상자 등에 대한 처우를 밝혀 적은 제1, 제2협약과 포로의 처우에 관한 제3협약과 함께 전시 민간인 보호 규정을 적시한 게 제4협약이다. 추방·이송·철거 등 점령지에 대한 규정을 밝혀놓은 제네바 제4협약 49조의 마지막 조항은 이렇게 규정돼 있다. “점령국은 자국의 민간인 주민 일부를 점령지역으로 추방하거나, 또는 이동시켜서는 안 된다.”
이미 1970년대 말부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비롯한 국제사회가 지속적으로 유대 정착촌 건설의 불법성을 지적해왔지만, 이스라엘 당국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두마의 학살극이 벌어진 7월에도 네타냐후 총리는 팔레스타인 땅 예루살렘의 라모트·길로 등 4개 지역에서 정착촌 수백 채를 추가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갓난아기가 불에 타 숨지는 사건이 벌어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인권단체 ‘점령지 인권정보센터’(베첼렘)는 7월31일 성명을 내어 “작금의 사태는 팔레스타인 주민의 생명과 재산을 해하는 유대 정착민에 대한 법적 심판을 피해온 당국의 정책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로 인해 증오범죄는 처벌을 피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만들어졌고, 범법자들이 폭력 행위를 지속할 수 있도록 부추겼다. 오늘 아침 참극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라고 강조했다.
불법 정착지의 유대 주민들이 팔레스타인 주민을 산 채로 불태운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7월2일 이른 아침 동예루살렘 지역에서 팔레스타인 청소년 무함마드 아부 카데이르(16)가 괴한들에게 납치됐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이스라엘 경찰은 예루살렘 외곽 기바트 사울 지역에서 불에 탄 채 숨져 있는 소년의 주검을 발견했다. 부검 결과, 소년은 뭇매를 맞은 뒤 숨지기 전에 불태워진 것으로 드러났다.
납치 현장 주변의 폐회로텔레비전(CCTV)에 용의자들의 모습이 잡혔다. 범행에 사용된 차량도 찍혔다. 그럼에도 경찰은 시간을 끌다가, 한참 만에야 유대 정착민 유세프 벤 다비드(30)와 10대 2명을 용의자로 체포했다. 붙잡힌 10대 2명은 “벤 다비드가 시키는 대로 납치와 폭행에만 가담했다”고 주장한다. 벤 다비드는 ‘정신이상에 따른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재판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2012년 8월16일에도 팔레스타인 일가족이 화염병 공격의 표적이 됐다. 자말리아 하산과 남편 아이만, 딸 이맘(4)과 무함마드(6) 일가족은 그날 택시를 타고 요르단강 서안지구 베들레헴 남부를 지나고 있었다. 차 안에는 다른 승객 1명과 운전기사 등 모두 6명이 타고 있었다. 어디선가 화염병이 날아들었고, 택시는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였다. 아이만과 두 아이는 심한 화상을 입었다. 특히 무함마드는 온몸에 중화상을 입어 여러 차례 수술을 받아야 했다.
자말리아는 사건 발생 2주 뒤 과 한 인터뷰에서 “모든 것을 잃었다. 삶이 뒤죽박죽이 됐다. 남편과 아들, 딸은 여전히 치료 중이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이다. 비참하다”고 말했다. 이때도 이스라엘 당국은 ‘정의’를 입에 올렸다. 얼마 뒤 경찰은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지문을 증거로 인근 유대 정착촌에 사는 청소년 3명을 체포했다. 하지만 2013년 1월 예루살렘검찰청은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이들에 대해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폭력은 있지만, 처벌은 없다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의 자료를 보면, 올 들어 7월 말까지 요르단강 서안지구와 동예루살렘 지역에서 팔레스타인 주민과 그들의 재산을 노린 유대 정착민의 폭력 사건은 모두 120건이나 발생했다. 하지만 누군가 처벌받았다는 소식은 거의 들리지 않는다. 이스라엘 인권단체 ‘예쉬딘’이 지난 7월 내놓은 자료를 보면, 팔레스타인 주민을 겨냥한 유대 정착민의 폭력 사건 가운데 85% 이상은 경찰 수사 단계에서 증거 불충분 등의 이유로 종결 처리된다.
“최근 2년 새 유대 정착민이 저지르는 폭력의 수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책을 불태운 정착민은 언젠가는 같은 장소에서 사람도 불태운다.” 현지 인권단체 알하크의 샤완 자바린 사무총장은 8월1일 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유대 정착민은 일종의 면책특권이 있다고 생각한다. 매일이다시피 팔레스타인 주민을 공격하고, 총질을 하고, 불을 지르지만 처벌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과 유사한 사건은 앞으로도 벌어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생후 18개월, ‘잘 웃던 아기’ 알리의 옆집도 반나마 불탔다. 그날 움 무스타파 부부와 다섯 자녀는 천행으로 집을 비운 터였다. 무스타파는 8월1일 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집안 꼴을 보고도 치울 생각이 나지 않는다. 여기선 더 이상 안전하다고 느낄 수 없다. 마을을 떠나 나블루스로 아예 이사를 갈까 생각 중이다. 팔레스타인 주민은 무기를 소지할 수 없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서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주민에겐 안전이란 건 없다. 나는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다. 운 좋게도 불이 났을 때 집에 없었던 것뿐이다.”
정인환 영상센터 기자 inhwan@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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