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출간된 (The Anarchist Cookbook)은 온갖 폭력, 불법행위의 DIY(Do It Yourself·손수제작) 매뉴얼북이다. 책에는 홈메이드 마리화나 쿠키 등 마약 관련 제조법을 비롯해 최루가스·다이너마이트·TNT폭탄·부비트랩 등 무기 제조 및 설치 방법, 폭파작전·도청·백병전 등 다양한 게릴라 전술과 계획이 도표나 그림과 함께 담겨 있다.
어투는 단호하고 선언적이다. 서문에서 작가는 이 책이 단지 “발사되지 않은 총”에 머무는 것을 명백히 거부한다. 그리고 “나는 이 책이 정체된 뇌세포를 흔들어 행동에 나서도록 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희망했다.
경고도 담겨 있다. “이 책을 읽어라. 그러나 여기 쓰인 것들이 불법이고 위협적이라는 사실에 주의하라. 대부분의 제조법들은 위험성이 있으며, 특히 자신이 뭘 하는지 인식하지 못한 채 그것을 갖고 노는 개인들에게 위험하다. 주의, 경고, 상식을 발휘하라. 이 책은 어린아이나 얼간이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저자 윌리엄 파월은 19살 때 이 책을 썼다. 베트남전 반대 시위의 한복판에서 그는 잘못된 전쟁으로 자신을 징집하려는 정부에 분노한 10대 젊은이였다. 책은 예상보다 훨씬 더 큰 성공을 거둬, 전세계적으로 200만 부 이상 팔렸다.
그러나 이 책은 수많은 테러와 학교 총기난사 사건과 연관돼 있다고 알려지면서 악명을 얻었다. 1976년 미국 뉴욕 그랜드센트럴터미널 폭탄테러와 TWA 항공기 납치, 1980년대 미국의 임신중절 병원 폭탄테러, 1995년 168명의 목숨을 앗아간 미국 오클라호마 연방정부청사 폭탄테러, 1999년 콜럼바인고등학교 총기난사, 2011년 하원의원 개브리엘 기퍼즈 암살 기도 과정에서 6명의 사망자를 낸 애리조나 총기난사 등의 사건에서 범인들이 모두 이 책을 소유하거나 읽어본 적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홈메이드 마리화나 쿠키책은 몇몇 국가에서 출판이 금지됐지만, 출간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절판되지 않고 팔린다. 인터넷에서도 쉽게 다운로드해 볼 수 있다. 파월은 오랫동안 에 대해 입을 열지 않았으나, 2000년 미국 온라인서점 ‘아마존닷컴’에 글을 올려 저자로서 의견을 피력했다. 그는 이 책이 “잘못 판단됐고 잠재적 위험성을 안고 있다”고 했다. 자신은 출간 뒤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로서 전혀 다른 삶을 살아왔고, 이 책이 부디 절판되기를 바란다고 썼다. 그러나 저작권은 출판사에 있었고, 파월은 무력했다. 이후에도 그는 2013년 영국 일간지 에 글을 보내 또다시 “이 책은 빠르고 조용하게 절판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책은 4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팔리고 있다.
파월은 2016년 7월11일 캐나다 노바스코샤에서 가족과 휴가를 보내던 중 심장마비를 일으켜 66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당시 그의 죽음은 세간에 알려지지 않았다. 언론에 알려진 것은 최근 미국에서 그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영화 (American Anarchist)가 개봉하면서다. 영화의 클로징 크레디트에 그의 죽음을 알리는 문구가 있었다. 이후 뒤늦게 몇몇 외신에 부고가 실렸다.
의 찰리 시스켈 감독은 방송 [NPR] 인터뷰에서 “이 책과 폭력 행위를 직접적 인과로 연결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 책의 정보는 인터넷의 다른 곳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으며, 당시에도 마찬가지였다. 폭력 행위를 결심한 사람들은 (이 책이 아니었더라도) 방법을 찾아냈을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빌(윌리엄)에게는 어떤 것도 위안이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책은 빠르고 조용하게 절판돼야 한다윌리엄 랠프 파월은 1949년 12월6일 미국 롱아일랜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유엔(UN) 공보관이었다. 아버지의 전출로 어린 시절을 영국 런던의 교외 지역에서 보냈다. 8살짜리가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공부하고 성서를 암송해야 하는 사립학교에 다녔으며, 더듬거리면 매를 맞았다. 중학교 때 미국으로 돌아왔지만 영국 발음으로 놀림을 받았다. 고등학교 때는 기숙사 교사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1969년 19살 파월은 뉴욕 로워 맨해튼의 공동주택에 살며 그리니치빌리지의 서점에서 매니저로 일했다. 전쟁이 오래 지속되면서 베트남전 반대 시위가 격화되던 때였다. 파월은 급진적 운동보다 랭보의 시에 관심이 더 많은 작가지망생이었다. 그가 이 책을 쓴 동기는 단순했다. 당시 그는 징집영장을 받은 뒤 “미국 정부의 성실한 추적을 당하는 중”이었다. 그는 2011년 인터뷰에서 “그 사실은 나를 매우 화나게 했다”고 분노를 터트렸다.
파월은 자신의 소외감과 분노를 어떤 식으로든 세상에 표현하고 싶었다. 서점 일을 그만두고, 뉴욕 공공 도서관에 틀어박혀 ‘미국 전투 섹션’의 책과 공개된 정부의 군사 매뉴얼 등을 미친 듯이 읽어치웠다. 보이스카우트 가이드북, 전자제품 카탈로그, 폭동 선동자들의 팸플릿 등도 참고했다. 그렇게 나온 책이 이다.
파월은 집필을 끝낸 뒤 버몬트 윈덤칼리지에 입학했다. 이후 당시 가장 대담한 출판인으로 여겨졌던 라일 스튜어트에게 원고를 보내, 1971년 1월 책이 세상에 나왔다. 에 따르면 2011년 공개된 ‘연방수사국(FBI) 보고서’는 이 책에 담긴 게릴라 전술과 폭탄 제조법이 “대부분 정확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1인칭 서술된 화자는 전혀 작가 자신과 다른, 가공인물에 가까웠다. “파월은 책에서 이야기하듯 결코 철사로 시동을 건 차를 끌고 마이애미로 가 자신의 실험실에서 LSD를 만든 적이 없었고, 반전 시위에서 급습을 당해 경찰에게 가짜 이름을 알려준 적도 없다.”()
학습장애 학생 가르치는 교육자로정부에는 시민들로부터 “이게 무슨 요리책이냐!” “위험하다!” 등의 항의 편지가 쇄도했다. 이 문제와 관련해 미국 백악관과 법무부, FBI 고위급 인사들 사이에 서신이 오가기도 했다. 이들은 “이것은 혁명적 극단주의자들의 매뉴얼이다.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대단히 파괴적이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FBI는 어느 상점에서 이 책을 판매하는지 추적하거나 파월의 아버지를 불러 심문했지만 파월 개인에게 위해를 가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파월은 점점 더 언론의 주목을 받았지만 그 자신은 주변의 이목을 꺼렸다. 졸업 뒤 그는 뉴욕 맨해튼빌칼리지에서 영어로 석사 학위를 받고, 1979년 해외로 나가 사우디아라비아·탄자니아·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등을 떠돌며 교육자로 일했다. 특히 발달지체, 자폐, 주의력결핍장애 등 학습장애가 있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특수교육학 분야 교사들을 교육했다.
파월은 교육 분야에서 높은 지위에 올랐지만, 여전히 자신의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는 평생 세계 곳곳에서 발생한 일련의 파괴적인 폭력 사태와 자신과의 연관성을 잊으려 애쓴 듯 보인다. 1990년대엔 오히려 과거를 대면하기로 한 듯 이력서 저작 목록에 을 포함시켰다. 2000년대에는 자신의 ‘회한’을 표현하고 책의 절판을 주장하는 글을 썼다. 언론 인터뷰에도 응했다.
과거를 만회하려는 몸짓파월의 삶을 다룬 의 감독 찰리 시스켈의 시각은 흥미롭다. 그는 [NPR] 인터뷰에서 “인터넷이 일반화된 오늘날, 종종 사람들이 아주 어린 나이에 온라인에 쓴 무엇인가 때문에 공개적으로 오명을 쓰는 현상과, 인터넷 전 시대에 벌어진 파월의 이야기 사이의 유사성을 보았다”고 말했다.
파월이 자신이 만든 문제를 ‘만회하려는’ 몸짓은 절실해 보였다. 그는 2013년 에 기고한 글에서 “정서적 공감 능력을 갖지 못했던” 과거와, 성인이 돼서 높은 정서적 지능이 요구되는 특수교육 분야 교사가 된 것의 연관성을 말했다. 또한 자신의 다른 저서 가 교육자를 위해 쓴 책이지만 시절의 정서적 미성숙을 암시적으로 반박하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시스켈 감독은 [NPR]을 통해 “파월은 그 일(교육자 일)을 ‘미국 바깥’에서 했다”며 “나는 이것이 부분적으로 이 삶 전체에 걸쳐 그를 따라다녔다는 사실과 관계있다고 생각한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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