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아버지가 아닌 인간을 묘사하다

파시스트 아버지의 전기 집필로 인간 심연 천착한 작가 니컬러스 모즐리
등록 2017-03-09 23:31 수정 2020-05-03 04:28

2005년 BBC는 지난 1천 년간 영국 역사상 최고의 악인 10명을 선정했다. 이때 연쇄살인범 잭 리퍼 등과 함께 이름을 올린 10명 중 하나가 오즈월드 모즐리다. 그는 1932년 극우정당 영국파시스트동맹(British Union of Fascists)을 창당한 인물로, 가장 최근인 1900~2000년을 대표하는 악인으로 선정됐다. 이유는 “우파에서 좌파 정치인을 오락가락하다 파시즘이라는 사악한 이데올로기를 주창해 오늘날까지 영국 사회에 해악을 끼치고 있다”는 것이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아버지는 반역죄, 아들은 참전군인</font></font>

한겨레

한겨레

오즈월드 모즐리의 장남인 영국의 소설가 니컬러스 모즐리는 평생 아버지의 악명과 싸웠다. 그것은 단순히 아버지를 거부하거나, 혹은 반대로 명예회복을 꾀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그는 1980년대 아버지 오즈월드에 대한 두 권짜리 전기 (The Rules of the Game·1982)과 (Beyond the Pale·1983)를 썼다. 그는 이 방대한 분량의 ‘아버지 연구서’를 통해 아버지의 초상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묘사했다. 그것은 복잡한 한 인간을 세심하게 이해해보려는 행위란 인상을 주었다.

영국의 소설가이자 전기작가 니컬러스 모즐리가 지난 2월28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93.

니컬러스는 소설 19편과 논픽션 11편을 썼다. 그의 소설은 형식과 내용 모두 난해했으며,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잘 팔리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몇몇 소설은 영화로 만들어졌다.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소설 (1965)다. 이 작품은 1967년 더크 보거드 주연, 조지프 로지 감독의 영화 로 영화화됐고, 칸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다. 미묘하게 직조된 단편 연작소설 (1968)은 1973년 존 프랑켄하이머 감독의 영화 로 각색됐고, 1969년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초기 그의 소설은 현실주의적이었고 과장된 산문 형태였다. 후기로 갈수록 지적 탐사에 맞는 형식을 찾아가며 실험적으로 변했다. 서사는 파편화하고, 간결한 문장, 생략된 대화를 썼다. ‘인간이 노력으로 선악을 구별할 수 있는가’ ‘개인이 삶의 혼돈 속에 일정한 패턴을 발견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은 그의 작품에서 중요한 개념이었다.

한국에 번역 출간된 유일한 작품인 은 1990년 영국 휘트브레드 올해의 도서상을 받아, 뒤늦게 그에게 대중의 관심을 가져다주었다. 이 소설은 그의 후기 역작 ‘파국 실습’(Catastrophe Practice) 시리즈의 다섯 번째 작품으로, 1930년대 독일계 유대인인 인류학자와 핵폭탄을 제조하는 영국인 물리학자의 사랑 이야기를 담았다.

550여 쪽 방대한 분량의 이 작품은 그의 가족적 성장 배경과 그 정치적 결과를 가장 직접적으로 반영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제목 ‘희망의 괴물들’은 종의 변화를 촉발하는 돌연변이를 나타내는 생물학적 용어에서 가져온 것이다. (1940년대 유전학자 리처드 골드슈미트는 생물은 서서히 ‘진화’하는 게 아니라, 수천 년에 한 번 새로운 돌연변이, 즉 ‘희망의 괴물들’이 갑자기 튀어나와 새로운 종으로 도약하게 된다고 주장하며 다윈주의를 공격했다.)

그는 동시에 전기작가였다. 제1차 세계대전 때의 시인 줄리언 그렌펠, 러시아의 혁명 리더 레온 트로츠키 등의 전기를 썼다. 트로츠키 전기는 그가 직접 시나리오로 각색해 1972년 이란 제목의 영화로 만들어졌다.

말년에는 회고록 (2006)를 출간했다. 그는 이 책에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아버지 오즈월드가 파시즘을 지지한 반역죄로 체포돼 런던의 감옥에 억류된 동안, 그 자신은 연합군으로 전쟁터에서 파시즘에 맞서 싸우던 시절에 대해 썼다.

니컬러스 모즐리는 1923년 6월25일 영국 런던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인도 총독을 지낸 조지 커즌 경의 딸 신시아 모즐리였다. 초등학교 때 그는 ‘베이비 블랙셔츠(파시스트 당원을 뜻함)’로 불리며 괴롭힘을 당했다.

1932년 아버지 오즈월드가 영국파시스트동맹을 창당했고, 1년 뒤 그가 10살 때 어머니가 복막염으로 사망했다. 오즈월드는 처제를 비롯해 많은 여성들과 관계를 맺으며 바람둥이로 유명세를 떨쳤으며, 1938년 독일 나치 정권의 선전부장 요제프 괴벨스의 집에서 히틀러가 참석한 가운데 둘째부인 다이애나와 결혼식을 올렸다. 니컬러스는 아버지의 재혼 소식을 신문을 통해 알았다. 에 따르면 그는 당시 “어른들은 모두 상당히 미쳐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아버지의 ‘맹렬한 유창함’에 대항해”</font></font>

니컬러스는 7살 때부터 말을 더듬었다. 그는 자신의 언어장애에 대해 이렇게 분석하곤 했다. “강력한 선동가였던 아버지의 ‘맹렬한 유창함’에 대항해,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기제였다.” 그는 언어장애로 연설의 공포를 갖고 있던 영국 조지 6세를 치료한 것으로 유명한 언어치료사 라이오널 로그(영화 에 등장한다)의 치료를 받기도 했다.

아버지 오즈월드는 제2차 세계대전 발발 뒤 영국 정보국 보안부의 감시 대상이 되었다. 영국 정부와 군을 지지한다고 발표했지만 1940년 붙잡혀 투옥됐다. 자녀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니컬러스는 1942년 19살 때 영국군 소총 여단에 합류했다. 자기소개를 할 때마다 “그 개새끼(즉, 오즈월드 모즐리)와는 아무 관계 없는 거지?” 하는 말을 들었다. 그는 1944년 이탈리아에서 독일군 점령지 공격을 이끈 공로로 무공십자훈장을 받았다.

전후 그는 옥스퍼드 발리올 컬리지에서 철학을 공부했으며, 1947년 첫 번째 아내인 화가 로즈메리 샐먼드와 결혼했다. 외가의 재산을 물려받아 웨일스 북부에 농장을 하나 구입해, 글쓰기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이때쯤 아버지 오즈월드 역시 석방돼 윌트셔 지방에서 농장일을 하고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부자의 관계는 괜찮았다.

오즈월드는 다시 정치에 복귀해 1948년 극우당인 연합당을 창당했다. 이후 1959년 총선에 연합당 후보로 출마했고, 니컬러스는 그가 선거 유세 중 “백인들만의 영국” “카리브해 지역의 이민자 금지” 등 인종주의적 발언을 하는 것을 목격했다. 니컬러스에게 이는 전쟁 전 파시즘보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는 아버지를 만나 “당신은 부도덕하고 사악하고 정신 나간 인간일 뿐 아니라, 자멸적이다”라고 말했다. 오즈월드는 격분해 장남을 유언장에서 제외했고 부자 관계는 파탄에 이르렀다.

그러나 20년 뒤인 1980년, 오즈월드가 파킨슨병으로 죽기 2주 전 니컬러스는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아버지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화해할 기회를 얻었다. 그는 1993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아주 늙고 차분한 상태였고, 우리는 과거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아버지, 누군가는 당신에 대한 책을 써야만 해요. 당신의 정치를 정당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이 아주 흥미로운 인간이기 때문이에요’라고 말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괴물 혹은 영웅 신화가 아닌”</font></font>

오즈월드는 결국 아들에게 지하실에 있던 자신의 자료 뭉치를 넘겨주었고, 니컬러스는 아버지에 대한 전기를 쓸 수 있었다. 오즈월드의 전기는 1998년 채널4 드라마 로 제작됐다.

여기에는 약간의 뒷이야기가 있다. 1970년대 후반 그는 난해한 소설 ‘파국 실습’ 시리즈의 첫 편을 완성한다. 이 작품은 기괴한 4편의 에세이와 이라는 제목의 희곡 3편, 그리고 중편소설 로 구성된 독특한 작품으로, 모든 출판사들로부터 출간을 거절당했다. 그때 ‘세커 앤드 워버그’라는 출판사가 그에게 제안해왔다. 이 책을 내줄 테니, 대신 아버지 전기를 쓰라는 것이었다.

그는 1993년 인터뷰에서 아버지 전기를 쓴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는 언제나 괴물 혹은 영웅의 신화로부터 그를 꺼내오기 위해 뭔가 써야 한다고 느꼈다. 나는 이 엄청나게 흥미로운 인간을, 자신의 권력과 재능 속에 때로 악마의 환희에 빠져버리는 ‘생명의 힘’으로 묘사하고 싶었다.”

이로사 객원기자



독자  퍼스트  언론,    정기구독으로  응원하기!


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인터넷신청▶ <font color="#C21A1A">http://bit.ly/1HZ0DmD</font>
카톡 선물하기▶ <font color="#C21A1A">http://bit.ly/1UELpok</font>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