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10년 만에 만난 ‘녀석’은 마치 허물을 벗은 용처럼 완벽하게 달라져 있었다. 10년 전 갓 대학을 졸업하고 일본계 외자기업에 취직했을 당시만 해도 녀석은 월세방 임대료와 여자친구와의 데이트 비용, 언제 오를지 모를 얄팍한 월급을 걱정하는 사회 초년생에 불과했다. 1년에 한두 번씩 근근이 연락을 유지해오다가 최근 스마트폰 덕에 ‘소셜커뮤니케이션 질’을 하며 근황을 주고받곤 했다. 그러다 지난해 봄, 노동절 연휴를 틈타 녀석이 살고 있는 톈진에 가서 거의 10년 만에 다시 오프라인으로 ‘낯짝 상봉’을 하게 된 것.
녀석의 변화는 눈부셨다. 운동으로 단련된 듯한 군살 없는 근육질 몸매와 수분팩을 붙인 것 같은 탱탱한 피부, 그리고 최신형 렉서스 스포츠실용차(SUV) 등은 녀석의 성공 스토리를 말해주고 있었다. 녀석은 그동안 회사에서 초고속 승진을 거듭한 뒤 지금은 10년 전 월급의 10배 이상을 받는 영업담당 총괄매니저가 되었고, 주말마다 골프를 즐겨 치며 가끔 골프동호회 회원들과 해외 원정 골프를 치러 나가는 열렬한 골프 마니아가 되었다.
동네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쉬씨 아저씨의 변화는 더 ‘깜놀한’ 사건이었다. 그는 10년 전만 해도 내가 살던 동네 아파트 입구에서 삼륜차를 몰았다. 10년 전 설날, 콩나물시루짝 같은 입석 기차를 타고 그들 부부를 따라 네이멍구 오지에 있는 고향 마을을 방문했을 때 그의 4살 난 어린 아들은 땟국물이 줄줄 흐르는 모습으로 먼지투성이 산 언덕 위에서 엄마·아빠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고향집은 사람이 사는 집이라기보다는 짐승을 키우는 움막에 가까웠다. 시커멓게 굳은살이 박인 노모의 손에 정성껏 차려진 설 밥상은 그들의 움막집처럼 슬프고 우울했다. 그들과 함께 도수 높은 고량주를 마시며 설날밤을 보냈던 그날의 기억은 세월이 흘러도 쉽사리 잊히지 않는 가장 밑바닥 라오바이싱(백성)의 원시적 가난의 풍경으로 각인돼 있다.
하지만 10년 뒤,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쉬씨 아저씨는 삼륜차가 아닌 한국산 엘란트라 승용차에서 위풍당당하게 내리며 먼저 알은체를 해왔다. 어리둥절한 나에게 그는, 지금 한 아파트 경비업체의 총책임자로 일하고 있고 그사이 고향에 번듯한 이층 집을 지었으니 언제 시간 되면 설날에 함께 자기 집에 가자며 초대를 했다. 그는 “중국의 발전이 아주 빠르지 않아? 지금은 중국이 한국보다 더 발전하지 않았어?”라며 스스로도 흡족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엘란트라 승용차와 함께 빠이빠이를 하고 사라졌다.
지난 3월5일, 제12차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개막식에서 원자바오 총리가 재임 기간 중 마지막 정치공작 보고를 한 뒤 지난 10년간의 총리직을 마무리했다. 중국 언론은 원자바오 총리 10년의 세월을 ‘차이나드림’의 시대라고 정의했다.
얼마 전, ‘다시 한번 잘 살아보세’라는 구호를 내걸고 ‘중산층 70% 시대’를 약속한 전 독재자의 딸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에 입성했다.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코리아드림’을 일구며 수많은 ‘녀석’들과 쉬씨 아저씨들 같은 중산층이 생겨났지만 우리는 결국 또다시 ‘잘 살아보세’로 돌아왔다. 한때는 그들처럼 빛나는 황금시대를 누렸을 우리의 수많은 ‘녀석’들과 쉬씨 아저씨들은 지금 다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바야흐로, 우리는 ‘잘 살아보기 위해’ 숨가쁜 질주를 다시 한번 해야 하는 우울하고 슬픈 퇴행의 시대를 맞고 있다.
박현숙 통신원·베이징 거주 13년차 아줌마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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