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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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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세대들 전쟁을 희망하다

오사카 시장 선거에서 압승한 하시모토 인기의 비밀 권력·자본가보다 정규직 증오하는 파시즘의 파토스
등록 2012-02-03 13:52 수정 2020-05-03 04:26

지난해 11월에 치러진 오사카부 지사와 오사카 시장 선거에서 ‘예상대로’ 지역 정당인 ‘오사카 유신의 회’가 압승을 거뒀다. 승리를 예상한 사람은 적지 않았지만 압승까지는 전혀 점치지 못했다. 압승을 이끈 것은 오사카부 지사를 그만두고 오사카 시장 선거에 출마한 42살의 하시모토 도루다. 하시모토는 와세다대 정경학부를 나와 변호사로 활동하며 법률 관련 프로그램이나 예능 프로그램에서 인기를 얻었고, TV 등에서 쌓아올린 대중적 인기를 바탕으로 2008년 1월 오사카부 지사 선거에서 당선된 인물이다. 선거 쟁점은 뚜렷했다. 하시모토는 오사카부와 오사카시를 통합해 행정을 효율화하고 고속도로·고속철도를 건설하고 카지노 등 도박시설을 유치해 오사카의 지역 진흥을 꾀하겠다는 이른바 오사카도(都) 구상을 밝혔다. 그리고 교육기본조례안과 직원기본조례안을 제정하겠다고 했다. 하시모토의 득표수는 75만 표, 득표율은 59.98%였다. 대항 후보인 히라마쓰 구니오의 득표수 약 52만 표에 23만 표나 앞섰다. 압승이었다. 오사카 시장 선거의 투표율은 무려 60.92%. 2007년의 투표율이 43.61%였던 점을 고려하면 4년 전에 비해 무려 20% 가까이 상승한 셈이다. 오사카 시장 선거에서 투표율이 60%를 넘은 것은 1971년 이래 무려 40년 만이다. 높은 투표율이 하시모토 압승의 배경이 된 것만큼은 분명하다.

한 사람 인기에 기존 정당 추풍낙엽
하시모토의 압승은 2009년 9월 정권을 잡은 민주당의 계속되는 실정에 유권자가 등을 돌렸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공약(公約)은 공약(空約)이 되었다. 그런데 선거도 없이 총리만 세 번이나 바꾸면서 산소호흡기로 연명한 지 벌써 2년6개월이 지났으니 유권자가 지방선거에서 여당인 민주당을 내친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그래서 하시모토 압승은 민주당의 처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지방의 반란이 민주당 정권의 몰락과 자민당 재집권이라는 중앙정치의 격변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현재로서는 어렵다. 민주당의 인기 하락이 제1야당인 자민당의 인기 상승으로 그대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시모토의 경쟁 후보인 히라마쓰는 선거 당시 현직 시장이었다. 게다가 여당인 민주당과 제1야당인 자민당의 공인 후보였다. 공산당도 하시모토 승리를 저지하기 위해 독자 후보를 내지 않고 히라마쓰 후보를 지지했다. 항상 독자후보론을 고집하던 공산당으로서는 이례적인 선택이었지만 하시모토 바람을 막지는 못했다. ‘오사카 유신의 회’라는 지역 정당이 하시모토 개인 정당의 성격이 강한 점을 고려하면, 하시모토 한 사람의 인기에 민주당·자민당·공산당이 추풍낙엽처럼 나가떨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하시모토의 승리는 기성 정당에 대한 반란의 성격을 지닌다. 실제로 하시모토는 선거운동 기간인 11월26일 거리연설에서 “여러분의 한 표가 자민당·민주당·공산당·시청, 그리고 시청에 꼬여 있는 단체를 이길 수 있는” 힘이 된다고 말했다.
하시모토의 압승은 새로운 미디어 세대의 출현을 뜻하기도 한다. 규슈대학의 히라이 가즈오미 교수가 말한 것처럼, 신문이나 잡지 같은 활자 미디어를 대신해 트위터·인터넷·블로그·TV 등과 같은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새로운 스타일의 정치가의 출현이다. 탈정당화와 새로운 미디어의 활용이라는 점 때문에 한국의 미디어에서는 하시모토 승리를 한국의 안철수 현상이나 박원순 서울시장의 승리에 비견하기도 한다. 표면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박원순 서울시장과 달리, 하시모토의 승리는 정치적으로 보면 ‘우향우’다. 물론 하시모토의 정치이념은 한 가지 색깔로 정의하기 어렵다. 더구나 지방선거이기 때문에 특히 외교안보 노선이 드러나기도 힘들다. 하지만 부분적으로 나타나는 그의 언설을 모아보면, 그가 신자유주의적 극우 개혁 노선의 신봉자라는 점을 알아차리기는 어렵지 않다. 그는 재일조선인의 지방참정권에 반대하고, 헌법 개정과 핵무장에 찬성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재일조선인이나 노동조합 건물 등에 대한 고정자산제 감세 조치 폐지도 주장한다. 또 오사카부 지사 시절인 2011년 6월에는 기미가요 제창시 시립학교 교직원의 기립을 의무화하는 조례를 성립시킨 전력이 있다. 그의 행동력과 정치철학은 일본의 대표적 극우파 정치인인 도쿄의 이시하라 신타로 지사에 뒤지지 않는다. 그래서 혹자는 그를 히틀러에 비견하기도 한다.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쓰는 ‘하시즘’이라는 말은 ‘하시모토이즘’을 줄인 것이지만 파시즘의 동의어다. 그래서 그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선거전에서 하시모토를 독재자이고 파시스트라 비난했다. 아마 유권자가 하시모토의 본질을 모르고 있으니 그의 정치적 본질을 폭로하기만 하면 대중이 그에게서 등을 돌릴 것이라 판단했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왜일까? 유권자가 하시모토가 독재자이고 파시스트라는 점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독재자이고 파시스트이기 때문에 그에게 표를 던졌을 가능성조차 있다. 파시스트나 독재자도 ‘개혁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의 개혁 대상이 무엇이길래 유권자가 열광했을까?

왜 비정규직 등 사회적 약자의 불만이 파시스트를 ‘백마 타고 온 초인’으로 여기는 열광으로 이어지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독일 뉘른베르크 나치 전당대회에 참석한 히틀러 유겐트 단원들. 교양인 제공

왜 비정규직 등 사회적 약자의 불만이 파시스트를 ‘백마 타고 온 초인’으로 여기는 열광으로 이어지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독일 뉘른베르크 나치 전당대회에 참석한 히틀러 유겐트 단원들. 교양인 제공

약자에게는 잃을 것이 없다

그는 직원복무조례와 교육기본조례의 제정을 주장한다. 직원복무조례는 지방자치체의 간부 공모제를 도입하고 직원에 대한 상대평가를 실시해 평가가 낮은 직원에게 징계 및 면직을 내릴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교육기본조례는 교장 공모제를 도입하고 교직원에 대해 상대평가를 실시해 평가가 낮은 교직원에게 징계 및 면직 처분을 내릴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마디로 민간기업에서 실시하고 있는 성과주의적 인사정책의 도입을 골자로 하는 내용이다. 그는 “오사카 시청을 부숴버리겠다”고 말했는데, 이는 ‘성역 없는 구조개혁’을 부르짖으며 자신의 소속 정당인 “자민당을 부숴버리겠다”고 공언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와 닮아 있다. 하시모토가 부수고 싶은 것은 오사카시의 공무원이고 교사다. 그렇다면 유권자는 왜 거대한 국가권력이나 자본가에 적대하지 않고 이른바 중간층인 공무원이나 교사에 적대적 태도를 취하는 하시모토에 공감한 것일까?

이런 심성을 대표하는 ‘잃어버린 세대’(한국의 ‘88만원 세대’에 비견된다) 중 한 사람이 1975년생인 아카기 도모히로다. 아카기는 도쿄의 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는 대표적 88만원 세대다. 그가 유명해진 것은 2007년 한 잡지에 실은 ‘마루야마 마사오를 때려주고 싶다. 31살 아르바이트생. 전쟁을 희망한다’는 자극적인 글 때문이다. 아르바이트생이 일본의 최고 지성이라 불리는 마루야마 마사오를 때려주고 싶다고 한 것은 왜일까? 아카기는 아무런 희망 없이 하루하루를 연명한다. 그런데도 일본은 평화롭고 안정돼 있다. 희망 없는 그에게 희망이란 일본의 안전과 평화를 깨뜨리는 전쟁밖에 없다. 전쟁은 비참하다. 하지만 비참함은 “가진 자가 무엇인가를 잃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약자에게는 잃을 것이 없다.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가 확실하게 나뉘어져 그 사이에 유동성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전쟁이 더는 금기가 아니다.” 전쟁에 반대하는 것은 “우리를 일생 동안 빈곤 속에 가둬두려는 가진 자들의 오만”이다.

가학적 쾌락과 ‘끌어내리기 민주주의’

이 자극적인 파괴 본능의 글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일본판 88만원 세대에 대한 폭넓은 공감도 낳았다. 하지만 그가 비판한 것은 국가권력도 자본가도 아니었다. 그는 말한다. “권력자가 전쟁에 휘말려들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나 같은 가난한 노동자(비정규직)를 내치면서 자신의 생활을 유지하고 있음에도 마치 약자처럼 권리나 금전을 요구하는 다수의 안정적인 노동자층(정규직)이 전쟁에 휘말려들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좋은 집안이나 배경을 지니지 못한 안정 노동자는 우리 같은 빈곤 노동자와 교환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가 공격하는 것은 국가권력이나 자본가가 아니라 정규직 노동자다. 하지만 아카기가 말하는 것처럼 정규직 파괴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아카기의 주장은 기존 질서의 파괴 자체에만 있다. 그렇다면 하시모토의 인기 비밀은 지방공무원이나 교사 같은 안정적인 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공격에 유권자가 공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사상사학자 우치다 다쓰루는 하시모토에 열광하는 유권자의 심성을 ‘가학적 쾌락’이라 부른다. 자신에게 아무런 이득이 돌아오지 않는데 누군가의 이득이 줄어드는 것에 쾌락을 느끼는 심리를 말한다. ‘끌어내리기 민주주의’라는 말도 있다. 일본의 정치학자 마루야마 마사오가 고안한 말이다. 그는 “민중은 위대하다, 민중의 힘을 믿어라 같은 일본 지식인의 포퓰리즘처럼 웃기는 일은 없다”며 오직 다른 사람을 끌어내림으로써 자신의 만족을 채우려 하는 경향을 ‘끌어내리기 평등주의’ ‘끌어내리기 민주주의’라 정의한다. 지식인들의 빗나간 서민주의와 반지성주의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말이다. 이 말이 유명해진 것은 2010년 7월의 일이다. 당시 민주당 관방장관이던 센고쿠 요시토 의원은 국회의원을 지나치게 우대한다는 여론에 대해 “(국회의원의) 급여 수준이 지나치게 높으니 평균치로 내려야 한다는 논의는 문제가 있다”며 “‘끌어내리기 민주주의’ 같은 점에 주의해야 한다”고 말해 물의를 일으켰다. 또 정치학자 히라이 가즈오미는 하시모토 현상을 ‘시샘에서 비롯된 증오(jealousy)의 정치’라 하면서 “타자에 대한 공격이나 배제에 동조하기 쉬운 사회로 일본이 변용하고 있다면 증오의 정치는 어디에서나 작동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왜 파시스트에 열광하나 생각해야

‘가학적 쾌락’이든 ‘끌어내리기 민주주의’든 ‘증오의 정치’든 이들 언설의 공통점은 하시모토 압승의 원인을 유권자의 빗나간 심성 탓으로 돌리고 있다는 점에 있다. 그렇지만 이들 언설의 이면에 일종의 대중 멸시와 엘리트주의가 자리하고 있다는 점도 놓쳐서는 안 된다. 왜 비정규직 등 사회적 약자의 불만이 국가권력이나 자본가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 정규직 등의 사회적 중간층에 대한 증오로 나타나는가, 그리고 이런 심성이 ‘백마 타고 온 초인’ 같은 파시스트에 대한 열광으로 이어지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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