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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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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에 맞은 잉카의 새해

달의 신전에서 옥수수술과 즉흥 노래로 땅의 어머니

‘파차마마’에게 한 해의 복을 빌다
등록 2011-01-14 14:35 수정 2020-05-03 04:26

우리는 어느덧 잉카의 발자국을 따라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배꼽’이라 부르던 그곳에 가까워질수록 그리운 사람을 만날 날이 가까워진 것처럼 설레었다. 20시간 동안 버스를 탔는데, 여행한 이래 이렇게 편하게 버스에서 하룻밤을 보낸 적은 없었다. 값싼 티켓을 찾던 우리에게 버스 운전사가 요금의 반값에 트렁크를 내주었기 때문이다. 남미에서는 버스 이동 기간이 길어 두 명의 버스 운전사가 번갈아 운전하는데, 우리에게 판 자리는 운전사들이 잠깐씩 눈을 붙이는 곳이었다. 두 운전사는 담요까지 몇 장 주면서 연방 우리가 편한지 물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대자로 누워 편하게 쿠스코에 도착했다. 버스는 쿠스코라는 애인이 우리에게 보내준 리무진이었다.

‘잉카의 배꼽’ 쿠스코에서 지와 다리오는 새해 의식인 ‘파차마마’에 함께했다.지와 다리오 제공

‘잉카의 배꼽’ 쿠스코에서 지와 다리오는 새해 의식인 ‘파차마마’에 함께했다.지와 다리오 제공

오래 있을 작정으로 왔기에 관광객이 머무는 호스텔은 너무 비쌌다. 어떻게든 현지 가격의 월세방을 구해야 했다. 첫날 도착하자마자 방을 찾으러 다녔지만 큰 수확은 었었다. 다리오와 나는 언제나 그렇듯 우리에게 오는 우연을 기다렸다.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원하는 것을 머릿속에 그려두고 편안히 기다리면 언제나 마법처럼 눈앞에 나타났다. 이 방법은 배고플 때, 혹은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때 언제나 먹혔다.

다리오는 술을 좋아한다. 그는 ‘주(酒)님’이 적당히 취한 자에게 자비를 베푼다고 믿었다. 나는 다리오의 주님을 믿지 않았지만, 드디어 전도당할지 모를 상황이 와버렸다. 그가 언제나 새로운 장소에 도착해서 하는 일 중 하나는 지역의 술을 맛보는 것이다. 한국에 서민의 술 소주가 있듯이, 전세계의 각 지역에는 값싼 서민의 술이 존재한다. 다리오는 현지인이 마시는 술에는 그곳의 혼이 서려 있어, 그 술을 나눠 마시면 금세 그곳 사람들과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나는 술을 마시기 위한 그의 변명이라고 생각했지만, 함께 여행하며 관찰한 결과 그것은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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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스코의 방을 얻게 된 것도 다리오의 ‘주님 은혜’ 덕분이었다. 밤에 달짝지근한 ‘카냐소’(페루의 서민 술)를 찾아나선 그는 동네 아저씨들에게 묻고 물어 도착한 한 구멍가게에서 카냐소 1ℓ를 사고 주인 아줌마에게 주변에 혹시 빈방이 있는지 물었다. 그녀에게는 대나무와 황토로 만든 옥탑방이 있었고, 그곳은 우리의 보금자리가 되었다. 다리오의 주님을 찾아가니 그곳에 해답이 있었다. 그것도 쿠스코가 한눈에 보이는, 전면이 유리로 된 펜트하우스였다. 나에게는 더없이 멋진 집이었지만 사람들은 ‘비닐하우스’라고 불렀다. 밤이 되면 온도가 영하 가까이 떨어지는데 안과 밖의 차이가 없다는 것이 흠이었지만 쿠스코에 온 지 3일 만에 그렇게 우리 집이 생겼다.

우리는 쿠스코에서 새해 첫날을 맞이했다. 8월1일은 잉카 이전부터 안데스 사람들에게 한 해가 시작되는 첫날이었다. 그들의 달력은 태양을 중심으로 한 서양의 것이나 달을 중심으로 한 동양의 것과 달랐다. 8월1일, 이날은 ‘파차마마’(땅의 어머니)에게 한 해의 복을 빌고 지난해에 대한 감사를 표하는 의식을 한다. 우리는 집에서 1시간쯤 걸어 파차마마 의식이 치러지는 달의 신전으로 갔다. 피워놓은 불 주위에 둥그렇게 둘러앉은 사람들이 차례로 자신이 준비해온 것을 불에 태우고 기도를 올렸다. 코카 잎과 ‘와이루로’라는 아마존의 빨간색 씨앗으로 한 해 동안 풍족함을 준 자연의 어머니에게 감사를 드리고, 막걸리와 비슷한 옥수수로 만든 인디언의 술 ‘치차’를 나눠 마시며 작은 축제 분위기를 만들었다. 그중 나이가 많고 얼굴에 덕이 드러나 있는 한 인디오 아저씨가 깃발을 흔들자 사람들은 황토로 만든 둥그런 술병을 돌려 마시며 돌아가며 즉흥적인 노래를 불렀다. 나는 이 모든 의식이 낯설지 않았다. 평화를 존중하고 자연과 하모니를 이루며 감사해하는 그 모습이 동양의 정신과 닮아 있었다. 그들에게 ‘파차마마’란 신이자 공존하는 그대로의 자연이었던 것이다.

지와 다리오 ‘배꼽 두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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