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에 온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산’이었다. 안데스산맥을 타면서 남쪽으로 내려오는 경로를 택한 것도 산이 좋아서였다. 산을 알아가는 것은 마치 ‘신’을 알아가는 것 같았다. 운동을 하기보다는 도를 닦으러 가기에 우리에게는 최고급 장비나 기능성 등산화가 필요 없었다. 유황이 뿜어나오는 콜롬비아 남부의 활화산 푸라세(Purace)에 오르기로 했다. 버스를 타고 구불구불 산길을 오르다가 중간에 내려 한참을 걸어야 했다.
그렇게 도착한 대피소에는 아무나 잘 따르는 개가 두 마리 있을 뿐 아무도 없었다. 한참을 기다렸다. 몇 시간 뒤 학교에서 돌아온 8살이나 먹었을 듯한 꼬마가 텐트를 칠 수 있는 곳으로 우리를 안내해주었다. 아이는 우리가 쉴 수 있도록, 놀고 싶어하는 개들을 쫓다시피 데리고 돌아갔다가 어둑해질 무렵 대피소 소장 겸 농부인 아빠와 함께 우리에게 왔다. 그곳엔 본래 관광객이 많이 찾는 유황 온천이 있었는데 몇 해 전부터 온천수가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자연히 사람들의 발길이 끊겼다. 아저씨의 직업도 대피소장에서 농부로 돌아갔다.
다음날 새벽 일어나니 우리 텐트 주변에서 소들이 풀을 뜯고 있었다. 우리가 산에 오를 것이라고 알고 있는 영리한 개 한 마리는 함께 오르기로 약속이나 한 듯 텐트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방에는 빵 한 덩어리와 햄 한 덩어리, 오렌지 두 개와 물병이 이미 들어가 있었다. 오르는 동안 우리는 조금씩 음식을 나눠먹었다.
최대한 부지런히 준비하고 나왔는데도 농부들은 벌써 밭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방목하는 소들은 하나같이 건장했지만 그 큰 몸으로도 우리가 지날 때마다 ‘쫄아서’ 도망갔다. 온통 초록색이던 풀과 울창한 나무들이 점점 사라지면서 곧 풀 한 포기도 안 보이는 돌산이 나왔다. 작은 돌멩이들이 깔린 가파른 경사면에서 내 발은 자꾸만 미끄러졌다. 고도가 높아지고 경사가 급해질수록 잠깐씩 멈추는 횟수가 늘어났고, 그 짧은 시간 동안 바람은 또 얼마나 부는지 추위 때문에 바로 몸을 움직여야 했다. 하지만 다리오는 고도에 전혀 힘들어하지 않았다. 출발한 지 6시간 만에 푸라세 꼭대기 해발 4646m에 도착했다. 다리오는 가지 말라는 나의 윽박지름도 무시하고 유황 가스가 노랗게 뿜어져나오는 분화구 가까이에 기어코 갔다.
우리는 미친 듯이 불어대는 바람을 피해 큰 바위에 몸을 숨기고 가방 안의 점심을 나눠먹었다. 동행한 개에게도 똑같은 양을 나눠주었다. 그런데 가까이서 보니 개의 배가 볼록한 게 임신을 한 모양이었다. 만삭의 배로 우리와 함께 이 고생을 한 이유가 무얼까? 가방 속의 ‘햄 덩어리’ 때문이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때까지도 피곤함과 추위에 지쳐 이 아름다운 자연이 만들어낸 작품을 감상할 겨를이 없었다. 내려오는 길에야 여유를 찾은 나는 내가 얼마나 높이 있는지 실감했다. 그제야 아름다운 안데스의 얼굴과 만났다.
산에서 내려와 대피소에서 이틀을 더 머물렀다. 특별히 할 일 없이 산길을 어슬렁거리며 평화로운 에너지를 느꼈다. 떠나는 날 아침, 1시간은 족히 걸어서 드문드문 버스가 지나가는 비포장도로까지 나왔다. 버스가 온다는 믿음은 버리지 않았지만 1시간이 넘도록 그곳을 지나는 차는 한 대도 없었다. 그러던 중 차 한 대가 도착했다. (물론 버스는 그 뒤로도 오지 않았다.) 차주인의 이름은 ‘디에고’였다. 그는 인근 도시 포파얀(Popayan)에 사는 대학생인데, 작은 트럭에 빵을 잔뜩 싣고 가게가 없는 시골 오지마을을 돌며 빵을 팔아 학비를 댄다고 했다. 차를 타고 오는 동안 그는 우리에게 자신의 사업 구상을 얘기했다. 영리하고 사업 아이디어가 풍부한 것으로 보아 이 청년이 부자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그는 우리의 다음 행선지인 산아구스틴으로 가는 버스가 있는 마을까지 데려다줬다. 물론 우리 때문에 조금 더 돌아가야 했지만 그는 상관없다고 했다. 가는 길에 먹으라고 빵도 한 봉지 주었다. 디에고는 스스로 삶을 개척하고 노동을 즐기는 멋진 청년이었다. 남에게 베푸는 일을 기꺼이 하는 그가 꼭 부자가 되기를 바란다. 그는 부자가 될 자격이 있기 때문이다.
지와 다리오 ‘배꼽 두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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