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북아프리카 서쪽 끝자락에 자리한 이슬람 입헌군주국 모로코에 사상 처음으로 여성 성직자가 등장했다. 영국 공영방송 〈BBC〉는 2월25일 ‘모쉬다’로 불리는 이들은 “기도를 인도하는 것을 제외하고 남성 이맘(이슬람 성직자)이 하는 모든 업무를 맡게 된다”며 “이미 50명의 모쉬다가 소정의 교육을 마치고 각각 이슬람 사원에 배치돼 일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모쉬다의 활동 영역은 사원에 머무르지 않는다. 〈BBC〉는 이들이 “종교 관련 토론을 이끌고, 지역 여성들을 찾아 상담을 해주는 구실도 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 방송은 모쉬다로 일하는 카디자 아크타미의 말을 따“신은 여성을 남성에 비해 섬세하고, 사려 깊고, 참을성이 많게 창조하셨기 때문에 여성들은 훌륭한 성직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여성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건 결국 또 다른 여성이 아니겠느냐”고 전했다.
모로코에서 지난 2003년 5월16일은 미국의 9·11 동시테러와 마찬가지인 날로 기억된다. 그날 모로코 최대 도시 카사블랑카에선 잇따른 자살폭탄 공격이 벌어져 41명이 목숨을 잃었다. 폭탄 공격의 배후로 지목된 것은 ‘살라피아 지하디아’란 이름의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였다. 모로코 정부 관계자는 〈BBC〉와 만나 “여성 성직자 제도 도입을 통해 더 건강한 사회를 유지함으로써 테러리즘 등 극단주의가 확산되는 걸 미연에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전혀 다른 시각도 있다. 모로코에 ‘정의와 자선’(알 아들 와 아흐사네)이라는 이슬람주의 단체가 있다. 입헌군주국인 모로코에서 왕정 폐지운동을 벌여온 이 단체는 불법으로 낙인찍혀 정부의 상시적 감시를 받고 있다. 이 단체 압델와헤드 모타와킬 사무총장은 〈BBC〉와 한 인터뷰에서 “남성의 전유물이던 성직을 여성에게도 개방했으니, 겉으로만 보면 당연히 탁월한 개혁정책으로 평가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하지만 제도 도입의 목적과 동기를 조금만 더 깊숙이 들여다보면, 이슬람계를 정부 입맛대로 통제하려는 정권의 숨은 의도를 간파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팔레스타인에서 하마스가 보여준 것처럼, 지역 사회에 기반한 촘촘한 빈민구제 활동과 각종 사회사업을 통해 광범위한 대중적 지지를 쌓아가는 건 이슬람권 전역에서 이슬람주의 운동단체가 보이는 공통점이다. 이들의 커가는 영향력에 위기의식을 느낀 정권이 조직적인 탄압을 가하는 건 ‘개혁 왕정’인 모로코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이슬람권 사상 처음으로 여성 성직자가 배출됐다는 소식에 마냥 기뻐하지 못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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