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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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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한 집속탄

등록 2007-02-09 00:00 수정 2020-05-03 04:24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부총리가 지난해 레바논 침공 당시 자국군이 집속탄을 사용한 사실을 시인했다. 그는 1월29일 아랍 위성방송 와 한 인터뷰에서 “집속탄을 사용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스라엘군 참모총장도 (당시엔) 이를 몰랐을 것”이라며 “이는 명백한 실수였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군 당국은 지난해 등 자국 언론이 제기한 집속탄 사용 의혹에 대해 “합법적 방법으로 무기와 탄약을 사용했을 뿐”이라고 일축한 바 있다.
집속탄은 한 개의 큰 폭탄이 폭발하면 함께 탑재된 수많은 작은 폭탄이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연쇄 폭발을 일으킨다. 이 때문에 살상 반경이 넓고, 그 대상도 무차별적이다. 아직까지 집속탄 사용을 제한하는 국제법 규정은 없지만, 유엔과 국제 인권단체들은 민간인을 겨냥한 집속탄 사용을 제네바협정 위반으로 간주하고 있다.
지난해 여름 34일 동안 계속된 이스라엘군의 공세로 줄잡아 1천여 명의 레바논인들이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같은 해 8월 휴전이 발효된 이후에도 살상은 멈춰지지 않았다. 곳곳에 흩어져 있는 불발탄이 터지면서 휴전 이후 최근까지 모두 218명이 죽거나 다쳤다는 게 레바논 일간 의 보도이다.
유엔이 지난해 내놓은 보고서를 보면, 이스라엘의 공세 기간 동안 레바논엔 약 100만 발의 집속탄이 투하됐다. 이 가운데 90%는 교전이 멈추기 72시간 전에 뿌려졌는데, 아직도 약 1만9천여 발의 불발탄이 방치돼 있다고 한다. 〈AP통신〉은 1월29일 유엔 관계자의 말을 따 “지금까지 레바논 남부 250개 지역에서 이스라엘군이 투하한 불발 집속탄을 발견했다”고 전했다. 당시 사용된 집속탄 대부분이 미국산인 탓에 미 국무부는 유엔 보고서가 나온 직후 진상조사에 들어갔다.
페레스 부총리의 ‘고백’이 나오기 하루 전인 1월28일 숀 매코맥 미 국무부 대변인은 “(조사 결과) 이스라엘이 레바논 침공 당시 집속탄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밝혔다. 미 국무부는 이런 내용을 의회에 전달했으며, 의회는 보고서를 토대로 추가 조사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이스라엘군이 사용한 집속탄 대부분은 미국에서 수입한 것으로, 미 무기수출통제법에 따른 제한을 받는다. 이 법은 민간인 지역에 대한 집속탄 사용을 금하고 있으니, 미 의회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두고볼 일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이스라엘 공군은 미 보잉사로부터 1억달러 상당의 ‘스마트 폭탄’을 구입할 예정임을 밝혔다. 레바논 침공 당시 헤즈볼라를 겨냥해 막대한 양의 폭탄을 퍼부어댄 탓에 비어버린 탄약고를 채우기 위한 게다. 미국은 매년 이스라엘에 20억달러 상당의 군사원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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