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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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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이라크 정책

등록 2007-01-19 00:00 수정 2020-05-03 04:24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1년여 전 이 자리에 섰을 때만 해도 1200만 이라크 국민이 단합된 민주적 국가를 위해 선거에 참여했다. 엄청난 성과였다. 이라크 치안세력에 대한 적절한 훈련이 이뤄진다면 현지 주둔 미군을 감축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1월11일 텔레비전 카메라 앞에 섰다. 지난해 말부터 예고해온 새 이라크 정책을 발표하는 순간이다. 그가 침착하게 말을 잇는다.
“하지만 2006년 들어 예상과는 정반대의 사태가 벌어졌다. 알카에다 테러범들과 수니파 저항세력은 이라크의 선거가 자기들에게 가져올 치명적 위험을 간파했고, 무고한 이라크인들을 겨냥한 무차별 폭력으로 응수했다. …종족 간 유혈사태의 악순환이 시작됐고, 이는 지금껏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 전세계가 알고 있다. 지난해 11월 치러진 중간선거에서 미국 유권자들이 12년 만에 상하 양원을 민주당에 넘겨준 것도 이 때문임을 부시 대통령도 알고 있다. 새로운 인식과 그에 따른 정책 변화가 필요할 뿐이다. 부시 대통령은 “미국민들은 이라크의 현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으며, 나 또한 마찬가지”라며 “(미국의) 이라크 정책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다행스런 인식이다.
한데 이상하다. 그의 말에 힘이 실릴수록 그가 말하는 ‘변화’의 갈피를 잡기가 쉽지 않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라크 정책) 실패의 결과는 명확하다. 급진적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더욱 위세를 떨치며 세력을 넓힐 게다. 온건한 정부를 붕괴시키는 데 더욱 유리한 조건을 확보할 것이고, 중동 전역에서 혼란을 부추길 것이다. …이란의 핵 무장 움직임도 더욱 대담해질 테고, 적들은 미국민을 겨냥한 공격을 준비하고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안전지대를 확보하게 될 게다. 지구 반대편에서 극단주의자들이 피난처를 확보할 경우 미국의 거리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를 우리는 2001년 9월11일 목도한 바 있다.”
이제 그는 “미국민의 안전을 위해서도 미국은 이라크에서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새로운 정책’의 실체도 좀더 또렷해진다. 그렇게 부시 대통령은 병력 2만 명 증파라는 ‘마이웨이’를 선언했다. 지독히도 무능한 누리 말리키 이라크 총리조차 미군 증파는 화를 키울 뿐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는 터다. 증파된 미군은 수니파 저항세력과 시아파 무장세력을 아울러 ‘소탕’할 계획이라니, 유혈의 전장은 더욱 넓어질 게다. ‘승리’를 위한 ‘인내와 희생, 단호함’을 강조하는 것으로 그가 20분 남짓한 연설을 마쳤을 때, 세상은 이전보다 조금 더 암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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