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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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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의 아이들

등록 2007-02-15 00:00 수정 2020-05-03 04:24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바그다드 서쪽 외곽의 진창길을 막아선 임시 검문소 앞에 차량이 멈춰섰다. 초병이 운전자에게 다가선다. ‘수니파요, 시아파요?’ 운전자에게 자동소총을 겨누며 거칠게 묻는다. ‘자르카위파요, 마흐디군이요?’ 내처 질문이 쏟아진다.
‘마흐디군이요.’ 운전자의 대답이 나오기 무섭게 음침한 미소와 함께 초병이 소리친다. ‘틀렸어. 끌어내.’ 저만치 껑충한 철제 대문이 열리고 4명의 무장괴한이 달려나온다. 차 안에 있던 운전자를 끌어낸 그들이 목에 칼을 들이댄다. 빠르고 냉혹하게 칼날이 운전자의 한쪽 귀에서 다른 귀까지를 가른다. 운전자가 땅바닦으로 고꾸라지는 사이 괴한들이 승리감에 도취하고 있다.”
지난 2월6일 영국 이 바그다드발로 전한 기사의 들머리다. 이라크에서 흔히 전해지는 종족 간 유혈 폭력사태의 현장 목격담이 아니다. 기사에 등장하는 운전자와 초병, 무장괴한은 모두 바그다드 서부 알아밀 지역에 사는 압둘 무함마드의 아이들이다. 여섯 살에서 열두 살까지 5명의 아이가 집 앞 공터에서 매일처럼 벌이는 ‘살인게임’을 묘사한 게다.
지난 1월 한 달 동안 이라크에선 줄잡아 2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아이들이 나고 자란다. 등굣길에 담임교사가 무장괴한에게 무참히 살해되는 장면을 목격하고, 하굣길에 자살폭탄 공격을 가까스로 피해 집으로 돌아온다. 그러는 사이 아이들은 변한다. 잠자리에서 악몽과 함께 이불을 적시는가 하면, 이유 없이 친구들과 싸움을 벌이거나, 납치와 참수의 살풍경을 재현해내기도 한다.
이라크심리학자협회(AIP)는 지난 1월 말 이라크 전역 18개 주에서 2천 명의 어린이를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 결과를 담은 ‘이라크 전쟁의 심리학적 영향’이란 제목의 보고서를 내놨다. 조사 대상 어린이 가운데 92%는 언제 어디서 폭탄이 터져 목숨을 잃을지 몰라 두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또 60%의 아이들은 매일처럼 이어지는 폭력사태 때문에 외출을 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각급 학교의 출석률이 50~60%를 맴도는 이유다.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유혈사태의 상처는 너무도 분명하다. 이라크 아이들이 겪고 있는 정신적 충격과 혼란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세리프 카라차타니 술라이마니야대 심리학과 교수는 과의 인터뷰에서 “하루도 빼놓지 않고 무고한 아이들이 고아가 되거나, 선혈이 낭자한 끔찍한 테러 현장을 목격한다”며 “이 아이들 세대가 겪고 있는 잔혹극이 몰고 올 파장은 누가 어루만져줄 것이냐”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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