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우리 모두는 민주주의의 평화적 지지자들이 탄압의 공포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개혁된 이집트의 미래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정권의) 긴급조치가 정당한 법 집행으로 바뀌고, 자의적 법 적용이 사법부의 독립으로 이어지는 날은 반드시 올 것입니다.”
지난 2005년 6월20일 이집트를 방문한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이 카이로 아메리칸대학에서 행한 강연의 일부다. 20분 남짓한 이날 강연에서 그는 ‘민주주의’란 단어를 29차례, ‘자유’란 단어를 14차례 입에 올렸다. 그때나 지금이나 조지 부시 행정부의 중동정책은 ‘민주화’가 핵심이자 뼈대로 거론된다.
지난 1월11일 부시 대통령이 내놓은 ‘새 이라크 정책’에 대한 중동 각국의 싸늘한 반응은 라이스 장관의 중동 순방으로 이어졌다. 그의 방문지는 ‘분쟁의 땅’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을 빼면 이집트·요르단·쿠웨이트·사우디아라비아 등 전통적인 미국 우방국들로만 채워졌다. 가는 곳마다 새 이라크 정책에 대한 지지 발언이 나왔으니, 순방을 마치고 유럽으로 향하는 라이스 장관의 발걸음은 가벼웠을 것이다.
최근 이집트에서 ‘새벽손님’이 부쩍 활개를 치고 있다. 우리의 ‘밤손님’과 같은 존재는 아니다. 새벽 서너 시에 양심적 지식인과 비판적 언론인의 집을 찾는 이들은 좀도둑이 아니라 보안기관원들이다. 전체 454석인 이집트 하원에 88명의 의원을 진출시키고도 여전히 불법단체로 묶여 있는 무슬림형제단에 대한 탄압도 더욱 노골적으로 바뀌고 있다.
라이스 장관의 방문을 앞두고 이집트 현지 언론보도는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의 만연한 부패와 특혜 의혹, 고문과 정치적 탄압 사례로 들끓었다. 경찰에 체포된 버스기사가 빗자루 막대로 성고문을 당하는 장면과 체포된 여성이 철봉에 거꾸로 매달린 채 조사를 받고 있는 모습을 휴대전화로 찍은 동영상이 잇따라 인터넷을 통해 퍼져나갔다. 집권 여당 고위인사가 지분을 소유한 회사가 오염된 혈액을 이집트 전역의 병원에 공급했다가 덜미를 잡혔고, 라이스 장관이 도착하기 불과 24시간 전에는 경찰이 피의자를 고문하는 장면을 촬영한 방송 기자가 ‘국익을 해쳤다’는 혐의로 체포되기도 했다.
1월15일 이집트 고대도시 룩소르에선 미국과 이집트 양국 외무장관 회담이 열렸다. 이날 아메드 압둘 게이트 이집트 외무장관은 국내 여론을 무시한 채 미국의 새 이라크 정책에 대해 확고한 지지의 뜻을 밝혔다. ‘민주주의’란 낱말은 이날 회담에서 화두가 될 수 없었다. ‘중동 민주화’를 내세우며 이라크를 침공했던 미국이 ‘안정’을 이유로 독재를 껴안고 있다. 흔들리는 제국의 ‘자가당착’은 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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