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1년 전이다. 2006년 1월25일 팔레스타인 자치의회(PLC) 선거가 ‘점령의 땅’ 가자지구와 동예루살렘을 포함한 요르단강 서안지역 전역에서 일제히 치러졌다. 팔레스타인 자치의회 선거가 실시된 것은 1996년 이후 처음이었다. 자치정부와 의회를 모두 장악한 파타당이 이스라엘의 점령과 탄압정책을 빌미로 자치의회 선거를 번번이 미뤄온 탓이다.
선거 결과에 대한 예측은 얼마든지 가능했다. 가자지구를 중심으로 피폐한 민심을 다독이며 대중적 지지를 모아온 이슬람 저항단체 하마스가 약진할 것임은 불을 보듯 뻔했다. 하지만 이런 ‘소극적 전망’은 막상 투표함을 열었을 때 보기 좋게 빗나갔다. 켜켜이 쌓여온 집권 파타당과 팔레스타인 옛 지도부의 무능과 부패에 대한 반감의 정도는 ‘예상 수준’을 뛰어넘어 있었다.
최종 집계 결과 자치의회 전체 132석 가운데 ‘변화와 개혁’을 내건 하마스가 절반을 훌쩍 넘어선 74석을 얻었다. 파타당은 45석을 얻는 데 그쳤다.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통해 이슬람주의 진영이 집권에 성공한 최초의 사례였다. 같은 해 2월19일 이스마일 하니야 신임 총리가 이끄는 하마스 정부가 구성되면서 중동 민주화는 분명 한 단계 나아가는 듯했다.
하지만 ‘민주화의 봄’을 거부하는 ‘꽃샘 추위’는 열사의 땅에서도 위력을 떨쳤다. 기득권 세력은 권력의 끈을 놓지 않으려 버텼고, 민주주의를 외치던 미국을 비롯한 서방 진영은 예상치 못한 이슬람주의 진영의 집권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신생 하마스 정권은 출발부터 원조 중단을 무기로 한 서방의 목 조르기와 이스라엘의 봉쇄과 무력시위, 파타당의 저항과 반발에 밀려 흔들리기 시작했다.
지난해 여름 이후 이스라엘이 노골적 무력 개입에 나서면서 하마스 정부는 거국내각 구성을 통한 내부 단결을 도모했다. 그러나 마무드 아바스 자치정부 대통령이 이끄는 노회한 파타당은 미국과 이스라엘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가며 잃어버린 권력을 되찾기 위한 도발을 멈추지 않았다. 하산 아부 니마 전 유엔 주재 요르단 대사는 지난 1월20일 에 쓴 기고문에서 이런 상황을 두고 이렇게 지적했다.
“(아바스 대통령은)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것이다. 지배 엘리트 계층이 필요로 하는 사치품을 마련하는 데 필요한 돈이 넘쳐나고, 헛된 ‘평화협상’으로 뭔가 진전이 이뤄지고 있다는 망상이 유지되던 그때 말이다.” 1년 전 팔레스타인 민중들이 선거를 통해 거부한 ‘현상’이 바로 이것이다. 국제사회의 침묵과 ‘적극적 묵인’ 아래 지금 팔레스타인에선 역사의 시계가 거꾸로 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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