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비자금수사의 대언론창구, 채동욱 대검 중수부 수사기획관 …삼성 압수수색 안한 건 수사 의지라기보단 수사 여건과 기법의 문제
▣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나, 대검 중수부 수사기획관인데….”
현대자동차그룹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적으로 이뤄지던 지난 4월 중순께 몇몇 대기업에는 이런 괴전화가 걸려왔다. 실명 보도로 유명세를 탄 채동욱(47) 수사기획관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대검 중수부가 대형사건 수사를 시작하면 검찰 출입기자들은 짧게는 한두 달에서 길게는 4, 5개월 동안 그의 ‘입’만 바라본다. 수사검사들이 기자들의 취재 요청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수사기획관으로 언론 창구가 일원화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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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기획관은 수사의 고빗사위마다 재치 있는 비유를 많이했다. 정몽구 회장 부자의 구속 문제와 관련해선 “아들이 대신 총대 멘다고 아버지 죄를 다 뒤집어쓸 수 있나”고 했고, 정 회장의 구속 여부가 불확실해보일 때는 “시간은 항상 정의의 편이다. 역사는 그렇다”고도 했다. 1988년 검사가 된 그는 95년 서울지검 강력부 재직 때 대검 중수부의 전두환·노태우 비자금 사건 수사팀에 차출되면서 특수수사에 발을 들여놓았다. 12·12와 5·18 사건의 검찰 논고문을 작성한 당사자다. 서울지검 특수2부장 때 굿모닝시티 사건 수사에서 정대철 민주당 대표를 구속하는 등 검찰 내 대표적 특수수사통 간부다. 6월8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검청사에서 그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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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수수색 예상 밖 성과로 그림 바뀌어
현대차 수사 과정에서 한 브리핑 내용들이 관심을 끌었다. 사실 검찰 브리핑은 스무고개이거나 선문답일 경우가 많아 기자들도 힘들 때가 많다. 브리핑 준비를 어떻게 하나.
= 그날그날 즉흥적으로 한다. 특별한 매뉴얼은 없다. 수사 기밀을 유출하면 안 되고, 피의 사실을 공표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서도 친절해야 한다. 참 어렵다. 기사가 춤을 추지 않도록 큰 구도를 잡아줘야 할 때도 있고, 넌지시 암시를 줄 필요도 있다.
수사기획관이라는 자리가 기자들과의 의사소통도 중요하지만, 검찰 내 의견 조율도 담당하고 있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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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교라고 생각한다. 8시 출근해 8시30분에 중수부장실에서 수사를 직접 하는 1, 2과장과 함께 수사 상황을 보고받고 메모한다. 그 뒤 5분 정도 언론에 어떻게 공개할지를 정한다. 그러면 바로 브리핑이다. 새벽 5시부터 1시간30분 동안 기자들의 전화공세에 시달린다. 그렇지 않으면 (기자들이) 중수부장과 총장한테까지 전화를 거니까 어쩔 수 없다. (웃음)
우여곡절 끝에 정몽구 회장의 구속까지 이어졌는데, 이번 수사의 의미는 무엇인가.
= 먼저 검찰 내부적으로는 특별수사의 기법이나 방법론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대목이 있다. 이 사건은 원래 현대자동차그룹을 타깃으로 해서 시작되지 않았다. 김재록씨 사건을 내사하다가 글로비스 비자금 관련 제보가 들어왔고, 김씨 사건과 현대차 사건이 오버랩되면서 사건이 커졌다. 그룹 기획총괄본부를 압수수색하면서 사건의 본체라고 할 수 있는 비리에 대한 물증들이 다 확보됐다. 등에 떠밀려 하는 고소·고발·진정·하명 사건이 아니라 스스로 입수한 수사 단서로 이뤄진 점, 보안 유지가 잘된 점, 3월26일에 압수수색하고 4월26일에 정 회장 구속한 점은 평가할 만하다고 본다. 사실 1300억~1400억원의 비자금 조성 사실을 압수수색 이후 2주 만에 규명한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또 사회적으로는 기업의 관행이었던 불법 경영권 승계를 건드렸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기업들이 극도로 보안을 유지하고 싶어하는 부분을 파헤쳐 규명했다는 점에서 다른 기업들에는 경종을 울렸다고 본다.
애초 김재록씨의 정치권 로비 의혹이 사건의 본류였는데 지류인 현대차 사건이 본류가 됐다. 현대차를 수사하기 위해 핑계를 댄 것이 아닌가 하는 시각도 있었다.
= 김씨 사건은 여전히 수사가 진행 중이고, 전혀 끝난 게 아니다. (그는 이 대목에서 목소리가 높아졌다.) 애초 큰 그림을 그린 사건이 아니었기 때문에 수사 초기에는 가시적으로 보이는 목표를 세우고 수사를 벌인 것이고 압수수색의 성과가 예상보다 컸기 때문에 그림이 달라진 것이다.
“강압수사가 아닌 추궁조사한다”
대선자금 수사 이후 대검 중수부가 벌이는 가장 큰 수사다. 검찰 특수수사의 목적은 궁극적으로 사회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불법적인 경영권 승계를 저지르고 있는 다른 기업들로도 수사를 확대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많다.
= 삼성그룹의 경영권 승계와 이번 사건을 비교하면서 형평성을 제기하는 의견이 있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그 사건은 고발 사건이다. 고발하기 전부터 이미 충분히 시끄러워서 기업이 충분히 대비했다고 볼 수 있다. 수사 기법면에서 다를 수밖에 없다. 전면 압수수색을 왜 안 했느냐고 묻는 이도 있다. 사건이 일어난 지 오래됐고, 기업 쪽에서 충분한 대비를 하고 있는데 전면 압수수색이 가능할까. 나는 회의적이다. 구체적인 단서 없이 대기업 전면 수사는 쉽지 않다. 수사 의지라기보다는 수사 여건과 기법의 문제다.
2004년 대선자금 수사 역시 SK그룹을 제외하고 다른 기업들에서는 물증보다는 진술을 통해 수사를 하지 않았나.
= 그 사건과 단순 비교하는 것도 부적절하다. 그때는 대선자금을 줬느냐, 안 줬느냐 하는 구체적인 이슈와 수사 타깃이 있었다. 또 이 기업이 얼마 줬다면 저 기업도 얼마 줬을 것이라는 고도의 개연성이 있었다. 그런데 경영권 승계와 같은 기업 관련 비리는 기업들마다 유형이 다르다.
1천억원이 넘는 현대차그룹의 비자금이 밝혀졌는데 사용처 수사에서 더 큰 범죄 혐의가 드러날 가능성이 있는 것 아닌가.
= 수사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말하기 곤란하다.(이 순간 그는 “인터뷰하다가 갑자기 브리핑이 되네” 하며 웃었다.)
수사 도중 수사 대상자가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져 인권 침해 논란이 있었다. 수사관들이 언어폭력을 쓰는 등 심리적인 압박을 너무 심하게 가한다는 비판도 나왔다. 또 수사 검사가 변호인에게 피의자를 어떤 식으로 설득해달라고 요구하는 등 공명심에 사로잡혀 무리한 수사를 벌인다는 지적도 있다.
= 강압적 언동이나 모욕적 언사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수사 준칙에도 나와 있다. 그래서 감독을 많이 한다. 다만, 합리적인 근거를 가지고 혐의를 추궁하고 자백하고 시인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당연히 허용돼야 한다. ‘자백 안 하고 유죄가 되면 집행유예도 안 되고 실형을 받게 된다’는 정도의 얘기를 하는 것은 ‘강압수사’가 아니라 ‘추궁조사’다. 변호사 문제는 설령 검사가 그런 말을 했어도 의뢰인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라고 얘기할 변호사가 어디 있겠는가.
대검 중수부의 칼은 왜 다른가
중수부 사건은 주임검사가 사실상 검찰총장이라는 말을 브리핑 과정에서 여러 번 언급했는데, 그렇다면 대검 중수부의 칼과 서울지검 특수부의 칼, 그리고 시골 검찰청의 칼이 다 다른 칼이라는 말인가.
= 당연히 그렇다. 대선자금 수사 같은 건 서울지검 특수부에서도 하기 어렵다. 총장의 직접 지휘 사건으로 처리해야 하는 사건들이 있다. 총장이 직접 힘을 실어주고 수사 인력을 확충해주고 유관기관의 도움을 받아주는 게 큰 힘이 된다. 정치적으로 예민하고 경제적 파장이 큰 사건에서는 총장이 나라 전체를 생각하는 종합적 판단을 하게 되고 그것은 오류를 최소화하는 결과로 나타난다. 수사 대상자들이 느끼는 강도도 달라서 우리를 대하는 자세도 달라진다.
힘이 실릴지는 몰라도 검찰총장이 직접 나서면 수사 과정에서 빚어지는 인권 문제 등을 제대로 거론할 수 없게 된다. 내부 통제가 어렵다는 이유를 들어 대검 중수부를 폐지하자는 주장도 있다.
= 미국의 연방수사국(FBI)과 같은 강력한 수사 전담 기구가 생긴다면 모르겠지만, 그런 상황이 오기 전까지는 대검 중수부는 존재 이유가 충분하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해나가는 첨단 기업 범죄에 대처하기 위해 현실적으로 더 시급한 것은 전문인력을 충원하고 특수수사 체계를 전체적으로 정비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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