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민족보다 가치를 우선하는 유럽인들, 한국인 운동가들의 제안에 갸우뚱
▣ 브뤼셀=도종윤 전문위원 ludovic@hanmail.net
비록 긴 기간은 아니지만, 유럽에서 몇 년 살면서 깨달은 것 중 하나가 ‘수평적 공동체’라는 개념이다. 굳이 설명하자면 정치학자 조지프 나이가 지적한 ‘지식 공동체’ 개념과 비슷한 것인데, 국가적·민족적 공통체 개념보다 직업이나 세계관, 취미 등 가치 공동체가 더욱 중시되는 현상을 일컫는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다.
1971년 결성돼 벨기에에 본부를 두고 있는 ‘국경 없는 의사회’는 전세계 20여 나라에 지부를 두고 ‘인도주의적 의료 원조’라는 공동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모인 단체다. 재정 지원을 약속한 개인이 전세계에 걸쳐 300만 명에 가깝다고 하니, 국가와 민족을 넘어 대단히 많은 사람들이 가치를 공유하는 ‘수평적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속해 있는 단체 중에 ‘가르넷’(GARNET)이란 곳이 있다. 이른바 ‘세계화’와 ‘지역주의’ 두 가지를 연구하기 위해 모인 연구자 단체인데, 유럽 전역 40여 개 대학 학자들이 모여 공동의 관심사를 연구한다.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정기적으로 모여 연구 과제에 대해 토론하고 대화하는 것이다. 물론 상대방의 국적은 중요하지 않다. 같은 가치를 나누다 보니 대화도 잘 통하고 낯모르던 사람과도 쉽게 친해진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공동체라는 의식을 점점 더 공유하게 된다. 역시 같은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수평적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한참 된 얘기이긴 하지만, 지휘자 정명훈이 프랑스 텔레비전
‘수평적 공동체’는 민족이나 국가 단위로 구성된 정치 단체나 일시적으로 모였다 없어지는 팬클럽과는 다르다. 국경이 없어지고 사람과 물건의 이동이 자유롭다 보니 유럽인의 가치 속에는 이제 국가나 민족이라는 관념보다 ‘수평적 공동체’란 정체성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같은 관심, 가치관, 지향점이 민족과 국가를 뛰어넘는 자신의 정체성이 돼가고 있다. 잘 알려진 대로 유럽의회는 국가별이 아닌 이념별로 교섭단체를 형성한다. 우파그룹(EPP), 좌파그룹(PES), 유럽 통합 반대그룹(UEN), 환경그룹(Greens) 등이 그것이다. 국가나 민족보다는 이념과 가치가 자신의 정체성을 더 분명하게 보여준다고 믿는 것이다.
지난 3월21일 브뤼셀에서 ‘한반도 평화원정대’가 기자회견을 열었다. 미국식 ‘인권 패권정책’을 비판하고, 우리 민족의 자주통일과 평화를 역설하며 국제연대를 호소했다. 그런데 한 가지 아쉬움이 남았다. 미국의 폭력성을 고발하는 것까지는 좋았으나 국제사회, 특히 유럽사회에 ‘연대’하자고 제안한 것이 ‘한반도의 자주와 평화’였다는 점이다.
자주통일은 우리 민족 내부의 문제다. 이를 위해 연대를 제안한 것은 이를테면 바스크 독립을 위해 벨기에 사람들에게 연대를 호소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공감할 수는 있어도 연대하기에는 너무나 민족적인 가치다. 비좁은 기자회견장을 꽉 채운 사람들 가운데 벨기에의 어느 언론사에서도, 유럽의 어느 시민단체에서도 나온 사람이 없었던 것이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니었는지 씁쓸히 곱씹게 된다. 이날 회견 내용이나 원정대가 벌인 거리집회는 벨기에 언론에 전혀 보도되지 않았다. 마침 같은 날 브뤼셀에서 초등교육 개혁반대 집회가 열리면서 언론의 관심은 온통 그곳으로 쏠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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