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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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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시어머니와 살기

등록 2006-01-20 00:00 수정 2020-05-03 04:24

<font color="darkblue">한국과는 다르다더니 웬걸, 아이 키우기부터 일상용품에서 벌어지는 신경전 </font>

▣ 베이징=박현숙 전문위원 strugil15@hanmail.net

아침부터 시어머니와 또 한바탕 신경전이 벌어졌다. 이제 막 세 달 가까이 돼가는 딸아이의 태열 때문이다. 참고로 시어머니는 중국인이다. 밤새 아이한테 시달리다 아침에 시어머니와 교대를 하고 막 단잠에 들려고 하는데 아이가 갑자기 자지러지게 운다. 한참을 지나도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아 떠지지 않는 눈을 반쯤 감은 채 거실로 나갔다. 두툼한 중국산 유아용 겨울 솜옷과 솜바지를 입고 있는 아이는 한겨울이기는 해도 조금 덥게 보였다. 더군다나 태열이 있는 아이는 되도록 시원하게 입히라는 소아과 의사의 말이 생각났다.

“어머니, 아이 솜옷 벗기고 제가 한국에서 가져온 내복 입히는 게 어때요? 옷이 너무 무겁고 더워 보여서요. 태열에 안 좋대요.” 말 떨어지기가 무섭게 중국 시어머니는 화가 잔뜩 난 목소리로 내게 따지듯이 ‘대답’을 한다. “애 태열기가 어째 이 솜옷 때문이냐? 그건 네가 임신했을 때 김치 같은 매운 음식을 많이 먹어서 그런 거야.”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더니, 듣고 나니 머리에서 열이 모락모락 오른다. 그럼 김치 먹고 사는 한국 사람들은 다 어릴 때 태열을 앓았단 말인가. 어쨌든, 별것도 아닌 아이 옷 때문에 아침 댓바람부터 중국 시어머니와 한국 며느리는 살벌한 신경전을 치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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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아이를 낳은 뒤, 후베이에 사는 시어머니가 오셔서 아이를 함께 돌보고 있는 중이다. 중국인 남편과도 사랑을 하고 결혼해서 사는데 중국인 시어머니라고 같이 못 살까 싶은 마음에 별다른 고민 없이 그만 ‘덜컥’ 오시라고 했다. 게다가 주변에서 보고 들어보니, 중국 시어머니는 한국 시어머니와 달리 그다지 ‘깐깐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이람. 우리 시어머니는 그런 일반적인 상황에 들어맞지 않는, ‘예외에 속하는’ 분이셨다.

중국 시어머니는 베이징에 있는 우리 집에 오자마자 가장 먼저 음수기의 전원부터 껐다. 뜨거운 물은 마시기 3분 전에 전원을 켜면 된다며 평소에는 꺼두라고 하신다. 그리고 다음으로 한 일이 소형 냉장고 두 개 중 하나의 전원을 끄고 그 안의 음식물을 몽땅 다른 냉장고로 옮긴 일이다. 시어머니의 ‘설교’인즉, “큰돈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물 한 방울 전기 한 방울 아껴 모아지는 것이란다. 고로 무조건 절약, 절약, 또 절약하고 살아야 한다.” 물론 천만번 지당하신 말씀이다. 절약해서 나쁠 게 뭐 있겠는가. 하지만 몸에 좋은 약도 과하게 먹으면 독이 되고, 아무리 좋은 말도 골백번 들으면 넌덜머리가 나는 법. 남편이 출근하고 없는 낮 동안 시어머니는 틈만 나면 나에게 ‘돈 강의’를 하신다. 요지는 “돈이 있어야 힘이 있고 힘이 있어야 세상 사람에게 대접받는다”다. 시어머니의 ‘돈 강의’를 듣고 있노라면 나는 지금 중국 사회가 왜 이렇게 초고속 경제 성장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왜 중국이 자본주의 사회보다 더 자본주의적인지를 저절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얘기가 조금 샛길로 빠지긴 했지만, 시어머니가 오고 난 뒤부터 내 인생에는 또 다른 고민이 하나 더 추가됐다. 남 얘기로만 알았던 고부갈등이다. 아이 키우는 방식에서부터 소소한 일상용품 사는 일에까지 끼어드는 중국 시어머니의 간섭과 잔소리는 하루가 멀다 하고 우리 고부지간을 들들 볶아댔다.

그런데 ‘속았다’고 생각한 건 시어머니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어느 날 밤, 마루에서 남편과 시어머니의 언쟁 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마누라 말이면 다 듣는 거냐. 어미 말은 말 같지도 않냐!” 시어머니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마룻바닥을 울렸다. 나에 대한 화를 남편에게 대신 퍼붓는 중이었다. 나중에 남편한테 들으니, 한국 며느리들은 다 고분고분하고 싹싹하다는 말을 들었는데 우리 집 며느리는 어째 그리 무뚝뚝하고 자기 주장만 앞세우면서 한 번도 안 지려 하냐며 서럽게 우시더라는 것이다. 세상에나! ‘깐깐한’ 중국 시어머니와 ‘고분고분하지 못한’ 한국 며느리의 지지고 볶는 ‘국제적’ 고부갈등의 해법은 과연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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