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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나이프로 내 오른팔을 톡톡톡

등록 2005-09-08 00:00 수정 2020-05-03 04:24

스탈린의 고향 그루지야의 트빌리시에서 겪은 험한 일, 그 두번째

▣ 아테네=하영식 전문위원 youngsig@teledomenet.gr

고르바초프가 실각하고 옐친 정부가 들어서면서 당시까지 유지되던 제도가 무너지고 새로운 제도가 세워지는 과정이었다. 이때 러시아를 휩쓸었던 물결이 마피아였다. 그들은 권력의 공백을 채우고 들어가서 정부 권력 못지않게 활동했다. 예를 들어 시장의 상점들은 두 가지 세금을 내야 했다. 하나는 정부에 내는 합법적인 세금이고 다른 하나는 마피아에 내는 세금이었다. 상인들이 정부에 불만을 토로해보지만 정부 관료들도 이미 마피아의 일원이 된 상태라 어쩔 수 없었다. 이렇게 합법적인 공간에 들어간 마피아는 경찰, 군, 공무원 세계를 장악하면서 세력을 키워갔고 제3의 권력으로 행세했다.

그루지야 출신 중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은 스탈린이다. 스탈린은 그루지야의 수도 트빌리시 근방의 고리에서 태어나 트빌리시에서 성장했다. 스탈린이 권력을 잡은 시기 같은 고향 출신들이 소비에트를 좌지우지한 사실은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스탈린이 죽은 뒤, 수백만명을 학살한 책임을 지고 사형당한 국가보안위원회(KGB) 의장으로 스탈린의 오른팔이었던 베리야도 그루지야 출신이었다. 그 뒤 그루지야는 권력의 토양이 됐고, 견제의 역할을 맡은 지식인층이 완전히 파괴됐다. 마피아 두목들은 자연스럽게 그루지야 사회의 지도층으로 자리잡았고, 범죄의 자유가 인권으로 둔갑하는 형편에까지 이르렀다. 이들은 정치 지도자로 변신해 합법적인 권력을 누리고 있어, 이들의 보호막 없이는 누구도 그루지야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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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스탈린의 고향인 고리시는 역사적으로도 마피아 도시로 유명한데 지금도 그루지야인들조차 방문하기를 꺼린다. 고리시를 방문할 계획을 세웠던 나도 그루지야 대학교수의 끈질긴 만류로 방문을 포기해야 했다. 그는 “외국인인 당신이 고리시의 거리를 거니는 모습이 현지인의 눈에 띄면 반드시 납치나 강도를 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어쨌든 지난 3월에는 고리시의 경찰 지도부가 마피아와 함께 밀수 등의 범죄를 저질렀다는 혐의로 대대적으로 구속된 일도 있었다.

경찰이 마피아 조직의 한 부분이니 억울한 일을 당해도 호소할 데가 없는 그루지야인들의 삶은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마피아가 아름다워 보일 때 세상은 어지러울 수밖에 없다. 바로 청소년들까지 오염되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청소년들이 마피아 문화에 빠져 마피아의 삶을 선망할 때 그 나라의 미래는 암담할 뿐이다. 그루지야 청소년들은 검은색의 마피아 복장을 하거나 잭나이프를 손에 들고 거리를 활보했다.

트빌리시에 머물던 어느 날이었다. 오후 다섯시, 한여름이니 해가 지려면 서너 시간은 족히 남아 있었다. 트빌리시 중심가에서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버스의 두 번째 뒷좌석에 앉아 있는데 곧 20대 초반의 청년 둘이 버스에 올랐다. 이들의 차림새와 행동거지에서 이들이 마피아에 속해 있다는 것을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한 청년의 손에 무언가 쥐어져 있었다. 이들은 버스에 오르자마자 나를 빤히 쳐다보다 내가 앉은 곳으로 와서는 바로 나의 뒷좌석에 앉았다. 승객들은 대부분 내가 앉아 있던 곳과는 조금 떨어진 앞쪽에 앉아 있었다. 범죄자들처럼 보이는 이들과 함께 있는 상황이 조금은 꺼림칙했지만 많은 승객들이 있는 버스 안에서 무슨 일이야 당하겠느냐는 생각도 들었다.

버스가 중심가를 벗어났을 때 갑자기 누군가 내 오른팔을 두드렸다. 내려다보니 뒤에 앉아 있던 사내가 칼을 쥔 손으로 내 팔을 두드리고 있었다. 앞이 캄캄해졌다.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의 이 위협은 돈을 달라는 뜻일 것이다. 공공버스 안에서 외국인을 협박하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그는 계속 내 팔을 은근히 두드렸다. 나는 그의 협박을 무시하기로 작정했다. 정면만 바라보면서 이들을 뒤돌아보지 않았다. 나의 머릿속은 어지러웠다. 이들의 행동 여하에 따라 어떻게 할지를 준비해야 했다. 긴장의 끈을 잠시도 놓지 않고 앞만 주시했다. 이들은 몇번 더 내 팔을 두드리다 반응하지 않으니 두드리는 것을 포기했다. 이들은 더 이상의 행동은 포기한 듯했다. 잠시 뒤 나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일어나 버스에서 내렸다. 자연스럽게 행동하려 했지만 내 마음은 극도의 긴장감으로 얼어붙어 있었다. 버스에서 내리고 나니 긴 한숨이 새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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