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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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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프를 아십니까

등록 2005-08-24 00:00 수정 2020-05-02 04:24

독일 전통 건축양식에 있는 뒷마당, 새로운 문화 지역으로 각광

▣ 베를린=글·사진 강정수 전문위원 jskang@web.de

80년대부터 한국에 생겨난 ‘생맥줏집’은 대개 ‘○○호프’라는 간판을 달고 있다. 맥주의 주원료인 ‘호프’(Hop)에서 따온 것이려니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이는 독일어 ‘Hof’에서 유래한 것이다. 독일어 ‘호프’는 ‘마당’이라는 뜻이며, 독일의 전통 건축양식 중 하나이기도 하다. 즉 건물을 ‘ㄷ’자 혹은 ‘ㅁ’자 모양으로 짓고, 건물 뒤편이나 가운데에 이웃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뒷마당’을 두는 건축양식을 가리킨다. 뒷마당에선 낮시간이면 아이들이 뛰놀고, 또 볕이 좋은 날이면 이웃들이 한데 어울려 식사를 한다. 또 주민회의 등의 장소로도 이용되며, 요즘처럼 ‘주차 공간’이 부족할 때엔 주차장으로도 사용된다. 이웃이 모이는 자리라면 모름지기 ‘맥주’가 빠질 수 없을 것이고, 널찍한 뒷마당에서 여럿이 모여 앉아 맥주를 즐기는 풍경에서 유래해 오늘날 한국의 ‘대형 맥줏집’은 ‘호프’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이다. 물론 독일에선 ‘호프’라는 이름을 단 맥줏집을 찾아볼 수 없다.

이러한 ‘뒷마당’ 구조의 주택들이 유독 많은 도시가 베를린이다. 20세기 초 산업화의 열풍은 대규모 도시를 중심으로 ‘다가구 주택’을 탄생시켰고, 베를린의 다가구 주택은 대부분 ‘호프’ 양식을 따르고 있다. ‘호프’의 형태도 ‘어울려 사는 양식’에 따라 많은 변화를 가져왔고, 다양한 베를린 호프들은 ‘관광지’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사회운동가들이 모여 사는 한 주택의 뒷마당에는 외부인의 발길이 끊기지 않는다. 1, 2층에는 각종 사회단체 사무실들이 모여 있고, 이곳 실무자들의 자녀를 위한 유치원도 들어서 있다. 작은 술집, 대안연극을 하는 극단, 실무자들의 주요 교통수단인 ‘자전거’를 수리하는 점포, 각종 운동단체의 계간지와 쉽게 구할 수 없는 좌파서적을 판매하는 서점 등이 ‘호프’를 중심으로 자리잡고 있다. 3층부터 5층까지는 실무자들이 거주하는 주택이다. 호프에 들어서는 길목에는 각종 시위 포스터들이 붙어 있고, 큰 시위가 있을 때면 이 마당은 참가자들에게 ‘사전 결집 장소’가 되기도 한다. 이쯤 되면 ‘호프’는 독일 사회의 한 단면을 아우르는 역사 공간인 셈이다.

과거 동베를린에 속했던 지역의 ‘호프’들은 최근 새 단장을 마치고 베를린의 ‘최고 관광지’로 떠오르고 있다. 미술가들이 모여 사는 ‘호프’에는 화랑과 각종 미술 관련 업체들이 들어섰고, 이러한 ‘미술가와 화랑’ 호프들이 늘어나면서 새로운 문화 지역으로 주목받고 있다. 또 ‘호프’들이 서로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하나의 ‘미로’를 형성한 ‘호프촌’도 있다. 일부 호프들은 확실한 상업화의 길을 걷고 있다. 아담한 규모의 세련된 옷가게와 신발가게들이 ‘호프’에 들어서면서 쇼핑을 즐기는 이들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하고, ‘카페’와 ‘술집’들이 즐비한 ‘먹자’ 호프들도 생겨났다. ‘하우스 맥주’를 판매하는 ‘호프집’들도 베를린에서 만나볼 수 있다. 한편 이러한 호프 문화의 ‘상업화’를 거부하는 미술가들과 젊은이들이 외곽으로 이주해가면서 베를린의 ‘문화마당’은 그 범위가 점차 확대되는 추세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어느 여름날 어머니가 마당 한구석에서 해주시던 차디찬 ‘등목’을 기억하는 한국인들에게 ‘마당’은 이미 추억의 대상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독일식 ‘다가구 주택’의 마당들은 많은 경우 아직까지 외부 손님들에게도 문이 활짝 열려 있다. 마지막으로 독일 베를린을 여행할 계획이 있는 <한겨레21> 독자들에게 드리는 정보 하나. 지하철 정류장(Hackescher Markt)에 내리면 손쉽게 운치 있는 ‘호프’를 구경할 수 있다. ‘호프촌’을 어슬렁거리다 보면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다.

한겨레 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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