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자리 차지하기 경쟁이 치열한 이유는 급변하는 정치에 있다는데…
▣ 베이징=박현숙 전문위원 strugil15@hanmail.net
중국에서 결혼하고 아이를 가진 뒤 처음으로 산부인과에 갔다. 그날따라 병원 안은 임산부들과 그 가족으로 꽉 차서 제대로 서 있을 자리도 없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무슨 신기한 구경거리가 있거나 상점에서 폭탄할인 행사라도 벌이는 줄 알았을 것이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내가 간 산부인과는 ‘그날따라’ 사람이 많았던 것이 아니라 언제 가도 그렇게 늘 임산부들로 넘쳐나 있었다.
장장 두 시간 이상 기다린 뒤에야 겨우 진찰실 앞의 대기번호를 받을 수 있었다. 오랜 시간 기다린 탓에 갑자기 요의가 느껴져 화장실을 다녀오고 난 다음이다. 내 번호표 자리에 다른 임산부가 앉아 있는 게 아닌가. ‘새치기’를 당한 것이다. 번호표를 보여주며 “내 자리예요”라고 했더니 그 중국 임산부는, “먼저 자리를 차지하면 그게 내 순서인 거지 번호표가 무슨 상관이에요?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 순서는 무슨 순서….”
병원에서 당한 그 ‘새치기’ 일화를 들려주었더니, 중국인 남편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런 말을 들려준다. “중국 사람들은 엄마 뱃속에서부터 자리싸움 하는 법을 배우면서 태어난다”고. 좋은 뜻으로 해석하자면, 중국 아이들은 엄마 뱃속에서부터 ‘생존경쟁’의 치열함을 체득하는 셈이란다.
하지만 엄마 뱃속을 벗어나 세상에 나온 뒤의 ‘자리경쟁’은 더 살벌하다. 좀더 좋은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보내기 위해 학교 앞에서 밤새 줄을 서야 하는 일은 보통이고, 일류 중·고등학교, 대학교에 가기 위해서는 머리가 박터지도록 공부, 또 공부를 해야 한다. 대학, 대학원을 나와도 전쟁은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더 살벌한 ‘밥그릇 전쟁’이 기다리고 있다. 이른바 취직전쟁이다.
취직한 뒤라고 걱정이 다 사라질까? 취직하고 결혼한 뒤에도 온갖 ‘자리 차지하기 경쟁’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리고 아이를 낳은 뒤에 그 전쟁의 악순환은 똑같이 되풀이된다. 오죽하면 ‘자리 차지하기’라는 말이 중국 사회를 설명하는 ‘사회학 용어’로까지 등장했을까. 최근에는 ‘자리 차지하기 게임’이라는 신종 놀이도 유행하고 있단다. 혹자는 한국도 이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한번 상상해보라. 13억 사람들 속에서 ‘내 자리’를 찾는다는 것이 얼마나 살 떨리는 전쟁일지를.
한 회사에서 대학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구인 면접을 했다. 중국 전역에서 구직 희망생들이 몰려들었다. 그런데 면접실 앞 대기실에는 의자가 딱 하나밖에 없었다. 오직 한 사람만 그 자리에 앉을 수 있는 것이다. 먼저 와서 그 의자에 앉을 수 있었던 베이징 출신의 한 졸업생은 뒤에 서 있던, 밤새 기차를 타고 힘들게 올라온 지방 학생에게 그 자리를 흔쾌히 양보했다. 밤새 기차를 타고 올라왔을 지방 학생이 서 있기 더 힘들 거라며 자기 자리를 양보한 그 학생은 과연 ‘보답’을 받았을까? 결론은 ‘비극’(?)이다. 그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면접관은 비록 그 학생의 양보는 칭찬받아 마땅할 행위이지만, 정글 같은 시장경쟁 사회에서는 적합한 ‘인간형’이 아니라며 그를 불합격시켰던 것이다. 회사에서 필요한 사람은 자리를 양보하는 사람이 아니라 남의 자리를 뺏을 수 있는 ‘경쟁력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부언도 했다. 하나밖에 없었던 그 의자는 또 다른 시험이었던 셈이다.
새치기나 자리싸움이 마치 중국인들의 오래된 습관 같다는 나의 투덜거림에, 어릴 때부터 ‘자리싸움’에 익숙한 남편은 이런 ‘변명’을 했다. 자고 일어나면 주택정책이나 교육정책이 바뀌어 있고 또 자고 일어나면 홍위병들이 날뛰며 계급투쟁 만세를 외치다가, 또 어느 날은 시장사회라며 돈, 돈을 외치는 세상이 되었던 게 중국인들이 겪어온 ‘현실’이라고. 때문에 자기가 자기 자리를 지키거나 먼저 차지하지 않으면 누구도 내 자리를 챙겨주지 않는다는 걸 중국인들은 너무나 뼈저리게 경험해왔다는 것이다. 남편은 조금 씁쓸한 표정이 되어 얘기를 마무리지었다. 새치기든 자리 뺏기든 중국인들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내 자리 만들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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