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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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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만의 중국

등록 2005-07-22 00:00 수정 2020-05-03 04:24

중국인을 비아냥거리는 그 말이 한국인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 상하이=우수근 전문위원 woosukeun@hanmail.net

“자동차가 아니라 아예 로켓이야, 로켓!” “런민(人民)들은 어쩔 수 없다니까.” “한국이라면 이러지 않았을 텐데. 정말 한심한 사람들이군!”

빨간 신호등임에도 아랑곳 않고 오히려 빵빵거리며 멈추지 않는 자동차들을 보고 재중 한국 학생들이 말한다. 주위의 어른들도 비슷하다.

“중국인들하고 일하다 보면 얘네들 정말이지 원….” “역시 중국은 안 돼! 중국인들은 너무 못 믿겠다니까!” “중국인들에게는 그저 목소리 크고 강하게 나가야 한다니까, 역시 한국이 제일이야.”

중국인들과 거래하는 한국 기업들, 혹은 중국인을 고용한 한국 기업주들로부터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다. 한국인보다 느리고 일 처리도 야무지지 못하면서 이 핑계 저 핑계만 대려 하니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들 중국인에게는 강하게 나가는 것이 최고라는 것인데….

그렇지만 조그마한 동전에도 양면이 있거늘 13억 인구가 북적이는 중국이야 오죽하겠는가. 단지 몇몇 사례에 의한 침소봉대로 전체를 바라볼 때 빚어지는 오류, 이로 인한 편견과 선입견일 뿐이다. 중국 사람을 싸잡아 비난하며 한국이 제일이라는 사람들이 말하는 그 한국을 다른 제3의 국가들은 어떻게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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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들은 일처리를 대강대강 하니 도무지 원….” “호언장담만 잔뜩 늘어놓고 신뢰하기 힘들다.” “한국인들은 양보나 타협을 모르는 것 같다. 목청 높여 우기면 다 되는 줄 안다.”

거의 중국인들에 대해 한국인들이 했던 말들이다. 이 말들을 나는 일본에 거주할 때 한국인과 거래 관계에 있는 일본인들로부터 심심찮게 들었다. 지금은 한류니 욘사마 열풍 덕으로 일본 사회에서 한국의 이미지가 어느 정도 개선된 것 같아 보이지만 이런 오랜 인식이 쉽사리 바뀌지는 않는다. 일본 사회에서는 아직도 뿌리 깊은 대한(對韓)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채 한국의 다면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 또한 적잖이 존재하는 것이다.

“당신은 일본인? 혹은 중국인?” “한국? 아, 한국….”

10여년 전 독일과 프랑스에 갔을 때 그곳 사람들로부터 한국인임을 소개할 때 돌아온 첫 반응이었다. 강산이 한번 바뀔 만한 세월이 흘렀건만 이와 같은 반응은 아직도 그대로인 것 같다. 여전히 미국인들은 동양인을 보면 반사적으로 일본이나 중국을 떠올린다. 6·25 전쟁과 1980년대의 극렬한 민주화 시위 모습 등으로 점철된 우리의 기존 이미지가 잘나가는 한국계 기업 등의 선전으로 다소 개선된 듯하지만, 아직도 미국의 TV 화면에 비친 한국에 대한 영상은 끊이지 않는 각종 시위와 진압 경찰의 모습, 그리고 각종 무기와 미사일로 무장한 채 행진하는 북한 인민군, 북한의 모습 등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에 대해 특별히 관심을 지닌 미국인들이 아닌 한 외국인들은 과격한 사회의 일부 모습과 북한의 모습 등과 오버랩해서 우리를 혼돈스럽게 인식하고 있다. “허구한 날 데모나 파업 등으로 어수선한 그곳에서 어떻게 살아갈꼬.” “북한이 핵을 가지고 저렇게 안달하는 판에, 한국에서 불안해서 어떻게 살겠어….”

더 나아가 재미 한국인과 재일 한국인들도 한국은 이러저러하고 또 아직도 어쩌저쩌해서 안 된다느니, 미국(일본)은 이러이러한데 한국은 그렇지 않아서 답답하다고 말한다.

“지하철 안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아이를 왜 제지하지 않고 그냥 놔두냐. 일본인이라면….”(한 재일동포 사업가) “서울 거리에는 술 마시고 휘청거리며 주절대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은가.”(한 재미동포 학자)

나는 직접적으로 말은 하지 않지만 근거 없는 부정적 인식에 사로잡혀 있던 사람들이 ‘그들만의 한국’에서 벗어나 더 넓은 한국·한국인을 바라보고 접할 수 있도록 다양한 주위 한국인들을 소개해주거나 영상을 통한 강연회, 혹은 한국에 데려가 직접 다시 체험하게 하는 등 인식의 전환점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는 비단 그들 한 개인뿐 아니라 이들을 통해 잘못 인식될지 모르는 우리 한국·한국인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사람을 판단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균형감각을 고려한다. 일본에서도 상대의 입장에 설 수 있는 균형감각으로 다른 사람을 배려한다. 미국 사회를 좌우하는 로스쿨 출신들이 로스쿨에서 제일 먼저 가혹하리만큼 체득하는 것도 이 균형 잡힌 사고다. 균형 잡힌 시각에서 균형 잡힌 사고가 나온다. 호불호를 떠나 21세기 한국의 최대 화두로 떠오른 13억 인구의 우주 삼라만상 중국. 안다고 하지만 모르는, 모르지만 알 것 같기도 한 이 나라는 결코 몇 가지 잣대나 부분적 현상으로 과대포장돼서는 안 되며 비아냥과 천시의 대상이 돼서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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