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사냥하는 정치깡패와 경찰의 유착, 푸틴에게는 어떤 이용가치가 있길래

몇해 전 모스크바를 비롯한 러시아 대도시들에서 ‘스킨헤드’(즉 파시스트)라는 새로운 부류의 정치색 강한 불량배가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귀를 의심했다. 히틀러와의 전쟁으로 약 3천만명이 희생된 나라에서 히틀러의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외국인을 죽이는 부류가 생겼다니, 말 그대로 서산에서 해가 뜬다는 것보다 믿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마치 히로히토 천황이나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한낮에 서울에서 기리는 격이다. 한국 극우들이 박정희 등 권위주의 사회 보스들의 친일?과거를 미화해도 “천황 폐하 만세”를 공개적으로 외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러면 모스크바의 거리에서 불러지는 “하일 히틀러!”(히틀러 만세!)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왜 그들은 형식적으로 처벌받는가

그런데 몇해 동안 러시아 ‘스킨헤드’의 만행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 보니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힘없는 아시아나 아프리카 학생들을 골라 괴롭히면서 경찰의 제지를 전혀 받지 않는다는 상황까지는 이해가 간다. 옐친, 푸틴 정권의 사병이 되어 체첸 민족 말살에까지 동원되는 경찰들의 인종주의가 얼마나 심한지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임신한 인도 대사 부인을 살인적으로 때려서 유산시킨다든가, 미국 대사관의 경호병인 흑인을 불구자가 될 정도로 때린다든가 하는 등의 주요 외국 사절에 대한 만행조차 왜 겉치레적인 처벌만 받는가. 외국 외교관이 피해를 입어도 처벌받지 않는 경우가 더 많은 상황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을까.
전형적인 경찰국가인 러시아에서는 공안기관의 대내적 정보수집·수배·처벌 능력이 여전히 놀랄 만하다. 그렇다면 지난번 히틀러의 생일(4월20일)을 앞두고 주요 외국 대사관에 협박 메일을 보낸 파시스트는 왜 붙잡히기는커녕 제대로 수배되지도 않았을까? 외교관 보호마저도 못하는 국가의 위엄이 구겨질 대로 구겨져도, 그 저명한 정보망을 발동시키지 않는 까닭이 무엇일까? 나아가 스킨헤드 단체의 사무실이 공개적으로(!) 모스크바 중심부에서 운영되고, 스킨헤드 갱들이 경찰 특무부대(OMON)의 훈련기지에서 경찰로부터 무술을 배운다는 사실은 무엇을 뜻하는가. 국가의 대외적인 신인도를 저하시키는 파시스트 조직을 국가가 근절하기는커녕 오히려 ‘보호·양성’하는 까닭은 그 조직이 국가에 큰 이용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푸틴 정권이라는 ‘어미 깡패’가 ‘스킨헤드’라는 ‘새끼 깡패’를 기르는 목적은 무엇일까?
근본적인 이유는 미구에 닥칠 정치·경제·사회적 위기상황에 일종의 ‘대비’를 하는 것이다. 푸틴 정권은 “소련 붕괴 이후의 위기를 이미 극복했다”고 선전하고 있지만 그건 심한 거짓말이다. 현재처럼 연 3∼4%의 경제성장을 지속해도 과거 소련 수준의 경제력으로 복귀하는 데는 15∼20년 정도가 걸릴 것이라고 예상된다. 그러나 푸틴 정권이 과시하는 ‘성장’도 이미 둔화되어 간다. 주요 이유는 두 가지인데 첫째, 1년에 250억∼300억달러 정도의 국부가 재벌과 고급 관료의 해외 계좌로 유출되는 상황에서 시설 투자 수준이 옛소련 말년의 20∼25%에 머물러 있다. 주요 도로, 난방, 복지 등의 사회시설은 물론이거니와 기간산업 시설마저도 닳아빠진 소련 시대의 것들이다. 낡은 시설이 개조되기는커녕 제대로 보수되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지하철·비행기·난방 등의 끔찍한 대형사고들이 꼬리를 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미 ‘국제화’된 러시아 보스들은 자국에서의 ‘불안정한 투자’보다 해외에서의 ‘안정적인 소득’을 선호한다. 이렇게 가다가는 약 2010년 이후 사회·경제 생활이 거의 마비에 가까운 상황에 부딪칠 위험성이 크다.
약탈자들은 미래를 준비한다

둘째, 러시아 민중의 구매력이 매우 약해 내수 주도형 성장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한달 평균 110달러의 월급을 받고 약 50%가 가난에 허덕이는 러시아 사람들 상당수는 아직까지 소련 시절의 내구재를 그대로 쓰고, 새로운 상품을 소비할 능력이 없다. 구매력을 증강시키려면 군축, 부유층에 대한 누진세 적용 등을 통한 사회 예산 늘리기 등의 정책을 실천해야 하는데, 군벌과 재벌의 정부는 실천하지 않는다. 결국 시설투자도 소비수준도 현재 수준에 머무르거나 약간의 성장밖에 보이지 않으면, 러시아는 산업구조를 복구할 꿈을 버리고 국제 유가에 따라 웃고 우는 전형적인 제3세계 자원 수출국으로서의 현재의 위치를 굳힐 수밖에 없다. 그럴 경우 만성적인 실업과 가난, 그리고 사회복지의 완전한 부재에 시달릴 수밖에 없을 도시 노동자와 인텔리들이 과연 나라의 미래를 빼앗아간 군벌·재벌의 정권을 계속 믿고 따를 것인가? 현재의 정책이 초래할 수밖에 없는 몇년 뒤의 경제공황은 분명히 사회·정치적 공황으로 이어질 것이다.
사실 민중 불만의 불길이 이미 러시아의 곳곳에서 터지고 있다. 민중들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푸틴 정권이 지금 강행하고 있는 이른바 ‘주택관리비용 개혁’이다. ‘개혁’이라기보다 ‘가렴주구’라고 불러야 할 이 조치는 물·전기·난방에 대한 국가 지원의 점차적 감액, 즉 주택관리비용의 폭발적인(3∼4배) 인상을 뜻한다. 그렇지 않아도 당장의 식량 이외에 다른 것을 살 엄두도 못 내는 서민들에게 그 악명 높은 조치가 알려지자 도시마다 격렬한 시위가 일어났다. 남방 러시아의 대도시 보로네즈에서는 약 2만명의 남녀노소 시위자가 모여 도지사 관저를 공격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였다.
분노에 찬 시민들을 억제한 것은 시위를 주도한 러시아 연방 공산당의 ‘폭동 방지’ 방침이었다. 말로는 반(反)민중적 정권과의 투쟁을 외치면서도 실제로는 각급 의회에 다수의 의원을 보내 각종 이권을 챙길 수 있는 현실의 유지를 희망하는 공산당과 어용 노조야말로 현재 러시아 사회의 ‘완충 장치’이며 군벌·재벌 통치의 ‘보루’다. 그들이 서민 사이에서 영향력을 계속 유지하는 이상 푸틴 정부는 자신들의 해외 계좌들을 안정되게 살찌울 수 있다. 문제는 상황이 현재보다 더 악화될 경우 관제 ‘공산당’도 어용 ‘노조’도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10년 이상의 국가적 약탈에 지칠 대로 지치고 미래의 희망이 없는데다 배까지 고파진 사람들에게 ‘권력과의 건설적 긴장관계’와 같은 관제 ‘공산주의자’의 궤변은 먹혀들어가지 않는다. 그렇다면 희생자들의 대대적인 저항에 부딪치는 약탈자들이 어떻게 할 것인가?
써먹을 일 없을 땐 ‘근절작전’
현재 전개되어 가는 각종의 상황으로 봐서, 정권의 ‘어미 깡패’들이 ‘민주주의’라는 장식을 팽개치고 노골적인 극우 독재(내지 반(半)독재)를 지향할 가능성이 크다. 이미 현재에도 경찰이 시위자들을 대하는 법은 과거에 비해서 훨씬 악랄해졌다. 남성들에게 ‘곤봉 세례’나 살인적인 구타는 ‘단골 메뉴’고, 월급 체불을 규탄하는 임신부의 얼굴을 주먹으로 후려치는 몇달 전의 사건과 같은, 과거에는 상상 못한 일들이 곳곳에서 생긴다. 그러나 민중들과 정권의 본격적인 대치 상황이 도래되면, 경찰, 군대 특무부대의 힘만으로 민중으로부터 약탈한 부(富)를 지킬 수 있을까? 그들의 힘만으로 일체 좌익을 범죄자로 취급하는 러시아식 유신정권을 연출시킬 수 있을까? 역부족이다. 스킨헤드라는 새로운 ‘새끼 깡패’들을 키워 아시아나 아프리카 출신 유학생 등을 ‘사냥감’으로 이용해 본격적인 살인 훈련을 시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제도적인 폭력만으로 체제 유지를 보장할 수 없는 약탈적 정권은 비제도적 폭력을 동원해야만 한다. 그러한 목적에, 일상적인 외국인 때리기나 죽이기에 익숙해져 폭력 없이 살 수 없는 스킨헤드야말로 안성맞춤이다. 국위까지 희생해가면서도 그들을 사주·보호·육성하는 목적은 유사시에 그들을 좌익·반체제 단체들을 쳐부수는 극우 돌격대로 이용하려는 것인 셈이다. 한국 현대사에서 흡사한 일을 찾으려면 이승만 정권 초기의 ‘서북청년단’이나 말기의 ‘정치깡패’들이 가장 가까운 예가 될 것 같다. 그리고 만약 경제·사회적 상황이 예상 밖으로 좋아져 대대적인 민중 저항운동이 일어나지 않을 경우 푸틴 정권이나 그 후계자들이 스킨헤드 근절작전을 벌여 국내외적으로 높은 ‘점수’를 얻을 기회가 된다. 그러한 측면에서 그들에게 스킨헤드의 존재는 일석이조의 이득을 가져다줄 수 있다.
상당수 한국인 유학생들과 교민을 포함한 수많은 아시아·아프리카 출신들을 의도적으로 스킨헤드의 사냥감으로 전락시킨 푸틴 정권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살인마 박정희, 전두환과 같은 선상에서 볼 수밖에 없다. 인종주의적 살인 광기의 주범인 푸틴과 그 공범들은 언젠가 미구에 러시아를 비롯한 세계 민중으로부터 범죄에 어울리는 대가를 받아야 한다.
박노자 ㅣ 오슬로국립대 교수· 편집위원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윤석열, ‘사형’ 훈장으로 여길 것”…서울대 로스쿨 교수 경고
![[단독] “나경원 머리 높이지 마라” 김건희 메모장…국힘 당무 개입 정황 [단독] “나경원 머리 높이지 마라” 김건희 메모장…국힘 당무 개입 정황](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6/0112/53_17682232429106_5417682227122231.jpg)
[단독] “나경원 머리 높이지 마라” 김건희 메모장…국힘 당무 개입 정황
![[단독] 전직 동작구의원 “김병기, 총선 전 돈 요구…돈 준 구의원 여럿” [단독] 전직 동작구의원 “김병기, 총선 전 돈 요구…돈 준 구의원 여럿”](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6/0112/53_17682093766219_20260112503379.jpg)
[단독] 전직 동작구의원 “김병기, 총선 전 돈 요구…돈 준 구의원 여럿”

‘뒤늦은 반성’ 인요한 “계엄, 이유 있는 줄…밝혀진 일들 치욕”
![국민들이 이혜훈의 3번째 역전극을 봐야 하는가? [권태호 칼럼] 국민들이 이혜훈의 3번째 역전극을 봐야 하는가? [권태호 칼럼]](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6/0112/53_17682068560363_20260112503202.jpg)
국민들이 이혜훈의 3번째 역전극을 봐야 하는가? [권태호 칼럼]

이란 시위 사망자 최소 544명으로…신정체제 47년 만에 최대 위기

“뒤통수 맞은 느낌”...서보학 교수 중수처법 반발, 자문위 사퇴

트럼프 ‘그린란드 야욕’에…EU 국방수장 “미군 대체할 유럽군 만들자”

관세로 장사 망치고, 공무원들은 내쫓겨…‘일상’ 빼앗긴 1년

“임무 완수, 멋지지 않나”…김용현 변호인, 윤석열 구형 연기 자화자찬


















![[단독] 서울시가 세운3-2·3구역 용적률 올리자, 한호건설 예상수익 1600억→5200억원 [단독] 서울시가 세운3-2·3구역 용적률 올리자, 한호건설 예상수익 1600억→5200억원](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6/0109/53_17679679801823_20260108503886.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