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우생학 연구자여 반성하는가?

등록 2003-10-24 00:00 수정 2020-05-03 04:23

<font size="2" color="663300">주류 과학계와 보수정치의 협잡… 60년대까지 불량 인종 낙인 찍어 강제 불임수술한 끔찍한 역사 </font>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큰 물신(fetish)이 무엇일까? 대다수는 ‘돈’이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사회의 이념가들이 좋아하는 것이 있다. 돈보다 훨씬 고상한 ‘과학’의 논리다. 구미 각국의 근대사 교과서들이 가장 자랑스럽게 서술하는 것은 바로 16세기부터의 서구 ‘과학 혁명’이다. 절대왕권 시대의 유럽 국가간 전쟁과 지노사이드(종족 섬멸) 사건들이 나타나는 비서구 지역에 대한 ‘개척’(점령) 역사는 되도록 완곡하게 묘사하면서 ‘과학의 진보’를 유럽인의 가장 큰 자랑이자 정체성의 기반으로 강조하는 것은 그들 교과서·대중서적의 일반적 태도다.

이광수가 지칭한 ‘우수한 자’들

이 태도의 논리를 이해하기란 어렵지 않다. 예컨대 과거 ‘영국 국민의 자랑’이던 태평천국운동(1851~64)의 탄압자이자 식민지 수단(Sudan)의 총독으로 반영(反英) 반군과 싸우다 죽은 고든 장군(Charles Gordon, 1833~85)이 요즘 영국 젊은이에게 ‘제국의 망나니’같이 보인다 해도, 다윈(Charles Darwin, 1809~1882)과 같은 동시대의 과학자들은 아직도 매력을 지니는 것은 보편성이 가시적으로 보이는 과학의 발전을 혐오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전쟁과 같은 국가의 범죄를 ’우리의 명예’로 만들기가 여의치 않을 때 자본주의 체제는 난공불락의 물신인 ‘과학’을 그 상징으로 만든다.

그러나 과학이 과연 만인의 편리와 합리성만을 추구해 자본주의의 범죄사(犯罪史)와 무관한 인류 공동의 가치를 지니는 것일까 우리의 가까운 역사만 봐도 그 답을 알 수 있다. 예컨대 악명 높은 장문의 ‘조선민족개조론’(지, 1922년 5월)에서 이광수라는 토착적 예속 자본의 이념가는 “조선인들은 근본적 성격이 좋지 못한 민족이다.… 그 중 소수나마 몇몇의 선인(善人·유전적 형질이 우수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 소수의 선인이야말로 민족부흥의 맹아다”라고 했다. 이광수가 ‘조선 민족 성격의 결함에 대한 개선책’으로 제시한 것은 ‘우수한 선인 사이의 결혼’과 그들에 의한 중추(지도) 계급 형성, 그리고 그 지도 계급에 의한 각종 계몽의 대중화 등이다. 그 ‘우수한 자’들은 바로 식민지 조선의 현실 순응적 유식자와 재산가들이었다.

그런데 만약 이광수가 자신의 사회·정치적 지향을 단순히 노골적으로 드러냈다면 이 ‘민족개조론’이 과연 상당수의 ‘문화 민족주의적 지식인’ 사이에서 명성을 얻었겠는가 천만에다. 극소수의 이기심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이 주장에 권위와 위력을 부어넣은 것은 바로, 인종 개선학 내지 우생학(優生學·eugenics)이라는 의학·생물학 담론에의 호소였다. 일본을 통해 미국·유럽에서 수입된 우생학에서 민족 형질의 개선이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과학적으로 입증’됐기에 이광수는 조선 부르주아들의 사회적 권위 획득 야욕을 ‘과학적 당위’로 그럴싸하게 포장할 수 있게 됐다. 중세 유럽에서 철학이 신학의 ‘시녀’로 기능했듯, 1920년대 식민지 조선에서는 멋져보인 수입품 우생학이 신생 조선 자본가들의 시녀가 됐다.

우생학이 지금이야 주류 학계에서 사이비 과학의 딱지가 붙었지만, 약 35년 전만 해도 우생학적 관점에서 쓰인 옌센(Arthur Jensen) 버클리대 교수의 ‘흑인의 유전적 지능 부진’에 대한 논문의 영향으로 미국 지도부가 흑인에 대한 교육 정책을 재검토했을 정도로 우생학의 위력이 만만치 않았다. 60년 전에는 나치 독일의 ‘인종위생법률’(인종간 잡혼 불인정, ‘유전적 열등분자’의 의무적 불임 수술 등)을 미국의 우생학자들이 극찬하고 일본 등지에서는 황급히 모방하는 등 우생학이 세계 자본주의 사회의 한 지배 담론으로 군림했다.

“열등분자의 번식을 억제하라”

물론 ‘서구’를 자유·평등·박애와 동일시하고 이슬람과 같은 외부적 ‘타자’들을 그 대척점에 넣으려는 오늘날 구미 지역 주류 사학은, 자유·평등·박애의 정반대인 우생학이 근대사에서 차지한 위치에 대해서 되도록 말을 아낀다. 그러나 거의 10년 전에 나온 터커(William Tucker) 교수의 (University of Illinois Press, 1994)라는 책에서는 우생학이라는 ‘가장 정치적인 과학 분야’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이용돼 왔는지 자세히 읽을 수 있다. 우생학 담론의 탄생과 성장 과정을 조금 더 살펴보자.

우생학. 이 용어를 처음 만든 골턴(Francis Galton, 1822-1911, 다윈의 사촌)이란 다재다능한 영국 학자 논리의 출발점은 인류의 철저한 유전적 불평등이었다. 인종주의가 상식으로 통하던 19세기 후반 모든 유색 인종들을 ‘유전적으로 열등한’ 것으로 치부한 것은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싫어하던 귀족 출신의 골턴에게는 백인의 95%조차 남의 지도 없이 행동도 할 줄 모르고 추상적 사고도 못하는 ‘동물적 군중’으로 보였다. 대다수 열등분자들이 극소수 ‘우등분자’에 비해 훨씬 빨리 번식하므로 전자의 번식을 막고 후자의 번식을 장려하는 것이 ‘지도자로서 중차대한 책임’으로 느껴졌다.

골턴의 ‘인종 개선책’은 간단했다. 한편으로는 ‘염치없이 번식만을 일삼는 유전적 열등분자들을 국가의 적으로 선포하고 무자비하게 다루어야’ 하고, ‘유전적으로 우등한 극소수’는 ‘국가적 지원 대상’으로 인정하여 그들의 통혼(通婚)을 장려하고 그들이 지도자로 부상하게끔 도와주는 것이다. 서재필이나 유길준 등 당대 한국 초기 개화파들이 서구 ‘문명국가’들을 만인 평등의 세상이라 선전했지만 골턴이 생각한 ‘자연적 귀족층’(natural nobility) 주도하의 이상사회는 조선시대 양반사회보다 훨씬 더 가혹한 불평등 구조를 가졌다. 배타적 통혼권이 이루어진 것은 조선 후기 실질적 사회 지도층인 경화사족(京華士族·한양이나 그 근교에서 거주하는 양반 집단)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들이 혹 노비를 열등한 종자로 생각한다 해도 노비 번식을 인위적으로 억제할 궁리까지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골턴의 우생학이 한 개인의 몽상으로 끝났으면 문제 없었겠지만, 골턴과 그 제자들은 곧 서구·미국 생물학계 주류의 한 부분을 이루어 학계와 일반 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골턴이 ‘번식 억제’와 단종(斷種)의 대상으로 삼은 ‘유전적 열등분자’들은 사회·경제·인종적으로 빈민이거나 비서구인 이민자이었기에, 골턴의 우생학은 해방적 근대 담론의 도전에 응수하려는 보수적 지배층이 호소할 수 있는 최적의 과학 담론이었다.

특히 19세기 말~20세기 초 미국의 앵글로색슨계 상류층 백인들은 남구·동구계의 이민이 폭발적으로 늘고 이민자를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노동 운동이 격화되면서 큰 위기감을 느꼈다. 이런 상황과 맞물려 보수적 정치인과 우생학 열풍에 휩쓴 학계 주류 인사들의 유착 현상이 두드러졌다. 예컨대 동양계의 이민을 거의 중단시키고 남·동구계 이민을 크게 억제시킨 1924년의 인종주의적 이민법 제정에는 인종의 잡종화가 퇴락을 가져다준다는 결론을 ‘과학적으로 입증한’ 유전학자 대번포트(Charles Davenport, 1866~1944) 이론의 역할이 컸다.

과학계 - 보수정치의 공생 청산되지 않아

이민 제한뿐 아니라 1960년대 말까지 수만명의 빈민들에게 ‘정신 박약아’ ‘유전적 불량배’의 딱지를 붙여 그들에게 생식 기능을 빼앗은 불임수술 법안 만들기에도 주류 학계의 역할이 주도적이었다. 대번포트의 영향 아래 있는 다나카 고가이(田中香涯) 등 당대 일본 우생학 연구자들의 글들을 조선에서는 새로운 ‘중추계급’을 만들려는 이광수가 열심히 탐독하고 있었던 것이다.

몇십년 전 세계를 휩쓴 우생학 열풍은 이제는 가라앉았다. 상당수 생물학자들의 반인륜적 극우정책 입안 주도의 사실이 과학계의 반성거리가 됐다. 그러나 주류 학계와 보수정치의 복잡한 공생·협력 관계가 과연 청산된 것일까 부시 정권이 ‘중동 문제의 대가’로 극진히 대접하는 베르나르 루이스(Bernard Lewis)처럼 아랍 문화의 후진성을 늘 들먹이는 유럽 중심주의적 학자들은 지금도 정학(政學) 유착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의 이데올로기가 과학을 정치 중립적인 것으로 내세우고 서구를 과학문명의 보루로 자랑스럽게 여기지만, 실제로는 보수정치의 궁극적인 합리화 도구로 언제든 쓰일 수 있는 과학 담론은 현 사회에서 정치와의 상호불가분의 관계를 갖는다. 과학 담론이 진실로 보편성을 얻으려면 지배층·금력 의존적이며 위계질서적인 세계 학계의 내부 구조가 바뀌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박노자 | 오슬로국립대 교수 · 편집위원

[참고자료]

1. 우생학에 대한 간단한 한글 소개: http://chh2kim.hihome.com/eugenice.htm

2. 대한제국·일제하의 인종주의 담론과 일제 시기의 우생학 문제를 연구한 박성진 박사(국가기록보존소)의 논문을 내려받을 수 있는 사이트:
http://wednes.netian.com/archives/arc1.html

3. 미국의 우생학 운동(이민제한법, 단종법, 강제 수술 자료 포함)에 대한 자료 모음:
http://www.eugenicsarchive.org/eugenics/

4. 우생학 운동의 인종주의적 측면을 강조한 영·미 우생학 학회 관련 비판 자료:
http://www.africa2000.com/ENDX/endx.htm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