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늘 꿈이고 낭만이었다. 한발 떨어져 그것을 구경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랬다.
〈H2〉 〈터치〉 〈크로스 게임〉으로 이어지는 아다치 미쓰루의 야구만화는 야구와 청춘에 관한 명대사의 향연을 펼치며 마침내 모든 대사에 밑줄을 긋게 만들고야 마는 우리 세대의 성경이었다. 등장인물들은 그 누구도 악역이 아니고, 귀여운 삼각관계에 빠진 사춘기 야구선수들이다. 그들에게 전국대회인 갑자원 진출의 꿈은 사랑과 우정을 융합시키는 인생의 축이었다. 아다치 미쓰루는 그가 키운 선수들로 갑자원에 가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사재를 털어 사설 유소년 야구팀 ‘비타민A’를 창단한 진짜 야구광이다.
그의 모든 야구만화의 소재는 고교야구다.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야쿠르트 스왈로스의 팬으로 알려졌지만, 자신의 만화에서는 한 번도 프로야구를 그리지 않았다. 어쩌면 야구에서 낭만을 얘기할 수 있는 것은 딱 고교야구까지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프로가 되는 순간 야구는 생존이 되고 수많은 악역이 등장하는 전쟁통이 된다. 여기에 사랑과 우정이 개입할 틈은 없다.
한국에도 아다치 미쓰루가 있다. 성공한 정보기술(IT) 기업의 젊은 최고경영자(CEO)이자 야구광이던 허민은 2011년, 사재를 털어 한국 최초의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를 창단했고 김성근을 감독으로 추대했다. 프로팀의 지명을 받지 못해 먼 길을 돌아온 선수들이 모여들었고, 김성근 감독의 조련 아래 3년간 총 22명의 선수가 프로구단과 계약했으며 황목치승(LG)·송주호(한화)·안태영(넥센) 등은 1군에서 활약하는 기적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지난 9월11일 고양 원더스가 전격 해체를 발표했다. 오직 개인의 의지와 자금에 기대어 운영되던 팀에 한국야구위원회(KBO)는 단순 연습경기(교류전) 이상의 공식 리그 진입을 허락지 않았다. KBO는 “다른 팀들과 운영의 방향성이 다르기 때문에 함께할 수 없었다. 우리는 더 많은 독립구단이 생겨 독립리그가 만들어지길 기대했다”는 천하태평 같은 이유를 늘어놓았다. 한국 야구가 가진 가장 큰 드라마를 스스로의 발로 걷어차버린 것이다. ‘열정에게 기회를’이라는 고양 원더스의 슬로건 앞에, KBO는 (한국 사회의 여느 기득권들과 다름없이) 끝내 손을 내밀지 않았다. KBO는 그들이 제공해준 드라마만 뽑아먹었고 그들의 땀과 꿈에는 관심이 없었다.
해체가 발표되던 날. 그곳에서 인생의 모든 것을 걸었던 선수단은 눈물을 쏟았다. 냉혹한 승부사 김성근 감독의 눈에도 눈물이 맺혔다. 몇몇 선수는 운동장에 주저앉아 통곡했다. 그들에게 야구는 더 이상 낭만이 아니다. 피눈물 나는 철거의 현장에 그들의 인생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공연한 희망을 얘기하기엔 상황은 녹록지 않고 세상은 잔혹하다. 구단 해체가 발표되던 그날 오후에도 그들은 눈물과 땀이 뒤섞인 훈련을 했다. 꿈을 가진 자들이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었다. 힘들겠지만 언제까지든, 어디에서든 야구를 포기하지 않길 기원하며, 〈H2〉의 그 가슴 떨리는 명대사를 고양 원더스 선수들의 꿈에 바친다. “힘내, 지지 마.”
김준 사직아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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